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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넷맘 Dec 27. 2018

드디어 서울 발령, ‘임산부’ 직원

워킹맘에게 현실이란 차별과 서러움이 팽배한 거친 바다였다.

“바빠 죽겠는데 웬 임산부예요! 일할 사람을 줘야죠!”
한 과장급 직원은 팀장에게 나의 발령을 적극 반대했다고 한다. 그의 말은 옳았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전해들을 때마다 가슴에 날카로운 비수가 꽂히는 느낌이었다.






신혼여행을 다녀오니 드디어 서울로 발령이 났다. 보통 부산에서 근무한 신입사원은 2년 후 본사로 발령을 받았지만 나의 발령은 달랐다. 임신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겨울에 예정된 정기 발령까지 기다릴 수 없다. 인사팀은 결국 지점 내부 이동 방안을 내놓았다.




회사라는 공간은 무언가 말할 거리, 대상을 끊임없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정기 발령도 아닌 비정기 발령으로 갑작스럽게 이동한 나였기에 나에 대한 타인들의 관심은 실로 대단했다. 거기에 임신이라는 자극적인 양념까지 있지 않은가!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졌고 그렇게 나는 사내 소문의 주인공이 되었다.

저 여직원이 이번에 임신해서 중간 발령으로 온 직원이지? 부산에 혼자 지원해서 내려간 거라며? 결국 못 버티고 올라왔다더라. 만난 지 여섯 달 만에 결혼이래.”

그들은 나의 신상, 근황, 러브 스토리 등을 가십거리라도 되는 양 거침없이 떠들어 댔다.     




나는 유럽 서비스팀에 배치되었다. 지점에서 일하는 동기는 나의 부서 배치를 앞두고 팀 간에 약간의 설전이 있었다고 귀띔했다. 그 설전은 바로 나를 받지 않겠다는 팀 간의 기싸움이었다. 배가 불러오는 임산부를 팀에서 받게 되면 그 직원은 몇 달 후 출산을 하고 육아휴직을 쓰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팀 내에서는 한 명의 인원이기 때문에 그 팀은 본사에 인력을 더 요구할 수 없다. 애초에 회사의 제도는 임신을 한 여성에게 불리한 구조로 만들어졌고 임신을 하는 순간부터 회사 내에서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끔 설계되어 있었다.

출산을 장려하는 정부, 홀로 임신에 대한 사회적 무게를 견뎌야 하는 임산부, 애초부터 그 고립된 섬들을 이을 다리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그야말로 동상이몽이었다.     

바빠 죽겠는데 웬 임산부예요! 일할 사람을 줘야죠!”

한 과장급 직원은 팀장에게 나의 발령을 적극 반대했다고 한다. 그의 말은 옳았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전해들을 때마다 가슴에 날카로운 비수가 꽂히는 느낌이었다.

그들의 비판은 어쩌면 당연했다. 하지만 그들의 비판은 내가 살아온 지난 시간들에 대해서도 부정하는 것 같았다. 단 한 번도 힘들다고 투정 부린 적이 없었던 삶, 모두가 꺼려했던 일들을 도맡아 해왔던 삶,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던 나라는 존재는 하루아침에 어느 곳에도 섞일 수 없는 벌레가 되어 있었다.




개목걸이라고 불렀다. 취업 준비생 시절, 여의도를 걷다보면 열에 아홉은 회사 출입증을 목에 걸고 있었다. 나는 그 목걸이를 걸기 위해 50여 군데의 기업에 원서를 넣었다. 밤낮없이 원서를 썼고 면접 스터디를 했으며 토익, 학점, 인턴, 소위 말하는 고스펙을 만들었다. 158대 1의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공채에 합격한 그날,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 이미 성공을 이뤘다고 착각했고 이곳에서 더 큰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야망은 한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렸다. 손에 닿을 것 같아도 절대 잡히지 않는 신기루처럼.



    

지점은 듣던 대로 분주하게 돌아갔다. 여기저기서 해외 전화가 끊이지 않았고 시차를 너머 해외 직원과 연락하며 긴박하게 일을 처리해야 했다. 그렇기에 야근은 필수였다. 임신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실 임신부의 야근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사내 어떤 직원도 그 금기어를 꺼낼 수 없었다. 그림의 떡, 그야말로 개떡 같은 제도였다. 잠이 쏟아져도 잠시 눈을 붙일 곳도, 퉁퉁 붓는 다리를 올려놓을 곳도 없었다. 하루 종일 울려대는 전화에 태교를 위한 클래식은 그야말로 사치였다.




어느 날 사내 행사가 개최되었다. 본사의 인사 팀장도 참석했다. 불과 몇 달 전, 그를 사석에서 만났을 때 그는 내게 부산에서 잘 적응하고 있다며 본사 어느 팀에 오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호기롭게 몇몇 팀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상황은 몇 달 만에 180도 바뀌어 있었다. 그날 저녁, 수많은 직원들 사이에서 그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제법 가까운 거리였고 우리는 마주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나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분명 내가 옆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는데도 말이다.

나는 그저 트러블 메이커였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 회사라는 공간에서, 나는 회사라는 조직이 그토록 경멸하는 평범하지 않은 아이가 되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배를 손으로 가렸다. 배불뚝이가 된 내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내 선택이었지만,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 할 무게였지만 너무나도 버거웠다. 아직도 미래에 대한 욕심과 걱정이 많은 스물일곱에게 갑자기 갖게 된 엄마라는 이름은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다. 한 손에는 커피를, 다른 한 손에는 아기를,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를 완벽히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유토피아 같은 이야기이자 오피스에 대한 지나친 환상이었다.




워킹맘에게 현실이란 임산부이기 때문에 야근을 하면서도 야근수당은 신청할 수 없고, 육아휴직을 하면 승격 심사에서 누락되어야 하며, 회식 1차가 끝나면 팀장이 잡기 전에 잠든 아이를 향해 전력 질주해야 하는 차별과 서러움이 팽배한 거친 바다였다.




우리는 애 낳고 석 달 만에 복직이었어. 요즘 애들은 임신이 무슨 벼슬인 줄 아나봐. 임신한 거 가지고 왜 이렇게 유난이니.”




쉽지 않은 임신 과정을 함께 겪었음에도 공공의 적을 자처하는 여자 선배들, 힘들다고 티라도 내면 유난 떠는 인간으로 만들어버리는 조직 그리고 육아에 엄마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사회.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조직에서, 가정 내에서 엄마의 역할과 희생은 강요되는 반면 일하는 엄마를 위한 인식과 실질적인 제도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저출산 숫자가 여실히 보여주듯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엄마로 살아가기는 녹록지 않다.




유능한 엄마도 집에서 애만 키우는 세상, 일과 육아는 양립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애초에 선택과 집중만 가능한 것이었다. 어느 하나는 적당히 포기해야, 그게 육아든 일이든, 워킹맘의 수레가 굴러갈 수 있으니까.




나의 임신 기간은 우울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었다.

이제 겨우 엄마가 되기 위한 한 발을 내디뎠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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