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없어서 공부를 했다.

공부는 정직했다. 그래서 고마웠다.

by 차차약사

어른들이 학생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학생일 때가 좋은 거야~“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지만, 그래도 마음으로는 이해되지 않았던 말들... 33살에 대학을 다시 가면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해보면서 느낀 것은 '내 삶이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구나~'라는 당혹감이었다. 회사 일을 한다고 내가 원하는 만큼 인정받는 것이 아니고, 회사 상사도, 동료도 내 입맛대로 골라서 사귈 수 없다. 때로는 부당하게 느껴지는 것에 화가 나고 울분이 터지다가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좌절감을 느낀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현실이란 원래 이런 거구나...'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수용으로 이어져왔던 것 같다.






나는 이런 세상을 수용하는데 오래 걸렸다. 아니, 끝까지 수용하기 힘들었다. 아직은 내가 원하는 대로 세상을 살아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26살에 회사를 관두고 내가 해보고 싶은 것들을 해봤다. 자전거 전국일주도 하고 가보고 싶은 곳, 만나고 싶은 곳 다 가봤다. 살아보고, 만나보고, 읽고 싶은 책 다 읽어보고... 그랬다.


그러나 매번의 경험 끝에 도달했던 결론은, 처음과 달라진 나의 생각이었다. 내 꿈을 찾겠다고 회사까지 관둬가며 경험해 간 것들이 내가 이상적으로 그려왔던 것들과 많이 달랐다. 이상과 현실의 만남에서 늘 승자는 현실이었다. '내 생각과 다르네. 내가 생각해왔던 것과 다르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좁혀져 갔다. 좁아지는 것이 마냥 좋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상이 클 때는 확실히 좋은 것이 있었다. 이곳을 벗어나면 굉장한 유토피아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현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얻었지만, 이상과 현실 사이가 좁아지는 게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대학생 때부터의 오랜 버킷리스트였던 해외봉사활동을 위해 28살에 아프리카 짐바브웨에 갔다. 2년간의 봉사활동은 내 삶의 가치를 크게 뒤흔들어 놓았다. 결론적으로는 너무 좋았지만, 그곳에 사는 내내 이상과 현실의 갈등 사이에서 흔들렸었다. 내 도움이 필요한 열악한 곳이 있다고 상상하고 그곳에 갔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보다 훨씬 밝았다. 희망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쉽사리 만날 수 없는 에너지가 그곳에는 넘치고 있었다. 2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고, 내가 느낀 바가 사실이 아닐 수 있다. 아니, 모든 기억은 각자의 관점을 거쳐 해석되어 만들어지기 때문에 내가 느낀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사실이었다.


그곳에서의 삶이 좋았다. 에너지, 희망, 열악한 상황이 더 이상 열악하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하루하루가 소중한 그들의 삶들에서 나는 너무 큰 배움을 얻었으니까... 하지만 머릿속으로 상상만 해오던 것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에 뼈아픈 반성을 해야만 했다. 현실도 모른 채 나 혼자 철없는 그림을 그려왔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말이다. 이상주의자의 삶을 부끄럽게 고백하고, 철없음을 내려놓아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현실을 수용할 줄 아는 현실주의자가 되어야 했다. 꿈은 나를 매일 살게 하는 먹이와 같았는데, 이제는 꿈이 없어졌다. 세상사가 내 마음대로 생겨먹지 않았다는 것을 수용하면서 좌절을 느꼈다.


또 한편으로는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갔지만, 좋은 일을 한다는 것도 결국은 속한 조직의 운영에 필요한 활동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싫어하는 일을 버리고 나왔는데, 사실은 좋아하는 일 1 가지를 하기 위해 싫어하는 일 9가지를 해야 한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된 것이다. 이럴 바에는 굳이 좋아하는 그 1가지까지 실망할 가능성이 높은 조직에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돈을 벌려는 목적으로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 좋아하는 일을 취미생활로 마음껏 할 수 있는 있는 게 좋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26살에 퇴사하고 수많은 여행과 경험 끝, 서른 살이 된 내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세상은 내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없다는 것.






하지만 공부는 달랐다. 특히 오랜만에 하는 공부는 더 달랐다. 이건 내가 노력하면 원하는 것을 쟁취할 수 있는 게임과 같았다. 장애물들이 수시로 나타나는 사회생활과 달랐다. 이번 주에 내가 열심히 공부하면 다음 주에 정직하게 주간 테스트로 증명할 수 있었다. 오늘 공부하면 내일 수업 시간에 알아들을 수 있는 게 많았다. 그래서 PEET 공부를 하면서 사실은 그 시간이 절대 힘들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졸음을 이겨내야 할 때도 있었고 분명히 힘든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험기간 동안 나를 지배했던 감정은 ‘즐겁다’였다.


세상살이는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오히려 좌절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공부는 달랐다. 내가 마음먹은 대로 되었다. 그러니깐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나이 들어서 하는 공부는 이런 장점을 갖는다. 어릴 때는 해야 하니까. 대학 가야 하니깐. 부모님이 하라고 하니까. 친구들이 하니까... 그래서 그냥 했던 거다. 나이 들어서 하는 공부는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거쳐온 뒤라서 내가 하는 만큼 결과가 정직하게 나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물론 나이 들어서 하는 공부가 쉽지는 않다. 책상에 오래 앉을 수 있는 엉덩이 힘도 다시 만들어야 하고, 고등학교 때 이후로 완전히 잊어버린 기초 지식도 남들보다 더 노력해서 채워 넣어야 한다. 가족행사도 챙겨야 할 것이 많고 부모님 돈 받아가면서 마음 편하게 공부했던 것과 다르게 이제는 돈 생각도 해야 한다. 생활비도 걱정해야 하고 내가 지금 공부하는 게 기회비용이 더 클지 아닐지도 따져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 들어서 하는 공부는 즐거웠다. 그래서 약대 입학 첫 학기에 나는 그 기분을 고스란히 이어가고 싶어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 학교 오가는 지하철에서도 복습을 했고 수업시간에도 열심히 집중해서 필기를 했다. 하하하. 첫 학기에는 그랬다. 지금은 완전히 여우가 되어서 수업시간에 딴짓도 많이 하고 공부는 시험기간에만 겨우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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