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살에 대학생활 즐기는 노하우
내 생에 이런 점수는 처음이야~~
첫 번째 대학생 때 나는 얼마나 공부를 했었나?
돌이켜보면 수업시간은 즐거웠다. 특히 교양수업은 내가 듣고 싶은 걸 신청하니깐 그야말로 교양을 쌓듯이 즐겁게 들었다. 한 학기에 체육 수업을 1개 이상씩 꼭 신청해서 매 학기마다 수영, 태권도, 택견, 펜싱, 댄스를 배웠다. 와인에 관심이 많을 때는 프랑스 교양 수업을 들으면서 와인의 역사에 대해 배워보기도 했고, 성과 관련된 수업시간에는 내 몸을 진지하게 탐구하며 숙제를 하기도 했었다. 전공수업도 나름 재미가 있었다. 공과대학 내에서도 사회과학적 요소가 많은 학과여서 공부하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학교 생활의 꽃은 뭐니뭐니해도 동아리 활동이었다. 공강 시간만 생기면 동아리 방에 가서 동아리 사람들이랑 수다 떨기, 동아리 사람들이랑 수업 째고 영화 보러 가기, 학교 마치고 동아리 사람들이랑 저녁 먹으러 가기, 저녁 먹고 나면 동아리 사람들이랑 술 먹기… 가 나의 하루 일상이었다. 물론 시험기간에도 동아리 사람들이랑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하기, 그러다 공부하기 싫다고 또 술 먹으러 가기 등등. 동아리 사람들과 늘 함께였다. 동아리에서 지금의 남편도 만났으니 동아리의 의미는 내게 언제나 그 이상이었다.
33살에 다시 약대에 오면서 나는 예전 내 대학생활의 즐거움을 많이 떠올렸다. 얼마나 즐거웠던가, 얼마나 행복했던가. 내 청춘을 고스란히 바쳤던 소중한 나의 첫 대학생활…
33살에 대학에 가도 다시 그런 걸 느낄 수 있을까?
음… 결론적으로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하하하. 여대라서 인지, 약대라서 인지, 아니면 내가 나이가 많아서인지. 생각해보면 저게 전부 이유인 것 같기는 하다.
예전 대학에서는 학교 안에서 모든 게 가능했다. 수업도 듣고 연애도 하고 술도 마실 수 있어서 집에 가지를 않았다. 그런데 여대는 연애를 하려면 학교 밖을 나가야 되니깐 학교에 남아 있지를 않는다. 약대라서 공부할 게 많아서 이유도 생각해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학교에서 연애를 할 수 없는 게 가장 크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가장 재밌는 것이 학교 바깥에 있으니 학교에 남을 이유가 없지 않을까? 게다가 나는 첫 학기에는 임신해서 다녔기 때문에 복잡한 퇴근길을 피하려고 수업만 마치면 뒤도 안 돌아보고 집에 갔다. 물론 약대 안에도 동아리들이 있어서 첫 학기에는 봉사활동 동아리도 가입하고 오케스트라 동아리에도 가입했었다. 그런데 나는 학교에서 집까지 1시간 반 거리를 통학해야 했기 때문에 일찍 집에 가는 걸 선택했다.
두 번째 다니는 대학은 내가 스스로 선택해서 왔으니깐 공부를 열심히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수업시간에도 맨 앞자리에서 수업을 듣고 집에 오가는 길에 그 날 배운 것을 복습하기도 했다. 첫 학기는 오랜만의 대학생활이라 설레었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단순한 매일매일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지냈던 첫 학기였다.
그렇지만 그해 여름방학에 출산을 하면서 휴학을 했고 모든 게 변했다. 공부의지가 조금씩 소멸되어 갔다. 그리고 또다시 둘째를 임신하게 되면서 첫째 임신 때보다 훨씬 힘든 몸 때문에 완전히 무기력해졌다. 그리고 둘째를 낳고는 1년 반을 휴학했는데 그 사이에도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갑자기 19개월 차 남매를 키우는 엄마가 됐고, 친정아버지가 암 판정을 받으시면서 내 삶의 무게중심이 많이 바뀌어갔다.
결국은 첫 학기만 좀 열심히 하다가 그다음 학기부터는 공부에 대한 마음을 많이 내려놓게 되었다. 예전 대학에서는 많이 열심히 하진 않아도 중간 이상은 갈 수 있었다. 고등학생 때 누리지 못한 자유를 누리고 싶어 공부를 하지 않는 애들도 있었고 막 복학해서 어리바리한 복학생 오빠들도 있었다. 하지만 약대는, 그리고 여대는 그런 게 없더라. 약대는 기본적으로 교양 수업 없이 전부 전공수업으로만 있으니깐 편하게 넘어갈 수 있는 수업이 없고 공부해야 할 내용이 많다. 그리고 어리바리한 복학생도 없다. 그렇다 보니 열심히 하지 않으면 못 따라갈 것 같은 마음에 다들 열심히 공부를 한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는데 나중에는 마음을 편하게 먹고 F만 피하자는 생각으로 학교를 다니니깐 마음이 정말 편해졌다.
나이 들어서 다시 하는 학교 생활에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나이 어린 동생들이랑 어울리는 문제도 그렇고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될 것이다. 약대에 온 사람들은 어릴 때도 공부를 잘했던 사람들이 많아서 공부를 내려놓는 게 마음처럼 되지 않기도 하다. 내 생애 이런 점수는 처음이야~~ 라며 실망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내려놓으면 30대에 하는 학교 생활도 매우 할 만하다. 특히 나는 학교 다닌다고 시부모님이 아이 둘의 등하원을 도와주셨다. 그래서 학교 가는 날은 내게 자유의 날과 다름 아니었다. 어릴 때는 1교시 수업이 항상 곤욕이었다면 지금은 새벽같이 집을 나서며 만나는 새벽의 공기가 너무 상쾌하다. 등학교길의 버스 안에서, 지하철 안에서 갖는 나만의 시간이 너무 달콤하고 소중하다. 책도 읽고 유튜브도 듣고, 수업시간에는 책상에는 앉아있지만 머릿속으로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공강 시간에는 과제도 하지만 학교 헬스장에서 운동도 한다.
약대 입학도 쉽지 않지만 입학해서도 따라가기 힘들까 봐 걱정하는 분들의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런데 마음을 내려놓으면 학교 생활이 여유롭고 즐거워진다. 나는 내려놓을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첫 번째 휴학하고 복학했을 때 지난 학기 수업을 듣지 못해서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복학하자마자 지난 학기 수업에 대한 퀴즈를 보는데, 지난 학기 내용을 혼자서 독학해야 했다. 따라가려고 노력해봤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고 거의 백지로 시험지를 내고 나와야 했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백지를 내고 나온 시험이었다.
두 번째 내려놓음은 둘째 임신하면서 몸이 너무 힘들어졌을 때 찾아왔다. 가끔은 수업시간에 앉아있는 것도 힘들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공부에 대해서는 자연스레 또 마음을 내려놓게 됐다. 둘째 출산하고 1년 반을 휴학한 후에 복학했을 때는 첫 번째 복학했을 때보다 더 머릿속에 남아있는 게 없었다. 그래서 내가 따라가려고 노력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걸 아니깐 또 마음을 내려놓게 되고… 이렇게 몇 단계에 걸쳐 마음을 내려놓다 보니 학교 생활이 오히려 즐거워졌다. 절대 F만 안 받으면 된다는 마음으로 다니게 되니 37살인 지금 학교 다니는 것이 너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