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살 약대 신입생의 목표는 여름방학 출산

학교생활은 태교에 최적이었다

by 차차약사

2014년 9월, 피트 점수 결과가 발표되었다. 약대 합격권 점수를 받은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어느 학교에 합격하냐의 문제이지 약대에 합격은 할 수 있는 점수였다. 약대 원서 접수를 위해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준비해야 했다. 하지만 내가 가장 공을 들인 것은 임신이었다. 학교에 입학하면 33살, 그대로 바로 졸업해도 37살이다. 졸업하고 아이를 낳는 것보다 학교를 다니면서 낳는 것이 시기적으로 좋을 것 같았다. 그러려면 학업 스케줄에 최대한 맞추는 게 필요했다. 출산하고는 반드시 얼마간은 나의 몸과 아이를 돌봐야 하는데 학기 중에 출산을 하면 시간이 붕 떠버릴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나는 신입생이 되는 해의 여름방학에 아이를 낳기로 계획했다. 그리고 임신에 성공했다.


임신해서인지, 피트 공부에 너무 기력을 뺏겨서 집중력이 떨어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준비하는데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한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나마 면접 준비를 위해 학원 등록을 해놓아서 다행이었다. 학원에는 어떻게든 가면 강의도 듣게 됐고 스터디 사람들끼리 하는 숙제도 해야 했고, 자기소개서도 써야 했다. 하지만 집에만 오면 자꾸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필살기로 동네에 있는 독서실을 등록했다. 하지만 며칠 가지도 않은데도, 그나마 간 날은 졸다 오기가 일쑤였다. 블로그를 통해 토익점수를 피트 시험 전에 만들어놔야 하는지, 시험 후에 만들어도 되는지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피트 시험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무조건 피트 시험에 올인한 후에 토익점수를 만들라고 조언하는 편이다. 하지만 정작 나는 피트 시험 보고 나서는 완전히 힘이 풀려서 그때 토익 점수를 만들라고 했다면 못 만들었을 수도 있다.


나는 두 군데 학교에 원서를 썼다. 한 군데는 집에서 가까운 곳이었고, 다른 한 군데는 집에서 1시간 반 이상 걸리는 지금의 학교이다. 가까운 곳에 합격하기를 바란 이유 중의 하나는 내가 임신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은 먼 거리에 있는 지금의 학교에 합격을 했다. 거리가 멀어서 걱정하기보다 두 군데 모두 불합격했다가 추가합격을 한 것이라서 뛸 뜻이 기쁜 마음이 처음에는 더 컸다.


막상 먼 거리를 임신한 몸으로 통학해야 하니 시부모님은 걱정이 되셨던 것 같다. 하루는 학교에 기숙사가 있는지 물어보셨다. 임신했는데 먼 거리를 어떻게 통학하냐고 기숙사에 살면 어떻냐고 물어보셨다. 결혼하자마자 피트 공부한다고 남편이랑 신혼을 제대로 보내지 못했다. 그런데 학교 다닌다고 기숙사에 살면서 남편과 떨어져 사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어릴 때부터 집이 멀어서 친구들 만나러 서울 가려면 2시간 거리도 자주 왔다 갔다 해봤다. 그리고 머나먼 아프리카까지 다녀와서인지 나에게는 물리적 거리가 그렇게 부담이 되지는 않았다. 피트 공부할 때도 집에서 학원까지 1시간 반 넘는 거리를 지옥철에서 공부해가며 잘 다녔다. 비록 임신한 몸이긴 했지만 나는 항상 체력이 좋은 편이라서 걱정되지 않았다.



태교는 저절로 되겠네~


임신해서 학교에 다닌다고 하면 사람들이 “태교는 절로 되겠네~”라는 말을 많이 했다. 실제로 나는 학교 생활하느라 별다른 태교는 하지 않았다. 사실 태교보다도 33살에 다시 다니는 학교생활이 더 재밌었다. 엄마가 공부하면 덩달아 태교까지 된다고 하니 즐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수업시간에는 수업을 열심히 듣고 수업이 마치면 뒤도 안 돌아보고 집으로 향했다. 예전 대학의 동아리 활동처럼 수업 끝나고 학교 생활이 진짜였던 나에게는 새로운 방식의 학교 생활이었다. 하지만 퇴근 시간에는 지옥철이 되기 때문에 친구들과 놀지 않고 바로 집으로 갔다. 친구들 대부분이 결혼했거나 아이들이 있어서 학교 끝나고 다들 집에 가는 분위기이기도 했다. 집에 일찍 도착하면 집에 들어가지 않고 동네 카페에서 공부를 하다가 남편 퇴근 시간에 맞춰서 집에 들어갔다. 그 시간들이 좋았다.


원래 나는 친구들도 좋아하고 노는 것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예전 대학에서는 매일 동아리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놀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아프리카에서 그런 습관이 생긴 것 같다. 저녁에 전기가 나가면 사방이 고요한 나만의 공간에서 나의 시간을 가졌다. 촛불을 켜놓고 책을 읽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했었다. 그 시간들이 정말 좋았다. 그래서인지 긴 등하교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집에 일찍 도착해서 혼자 카페에 있는 시간은 천국처럼 좋았다. 공부도 하고 저절로 태교도 하는 시간이었다.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첫 학기에는 수업도 열심히 듣고 카페에서 복습도 열심히 한 덕분에 시험기간에 공부할 양이 많지 않았다. 시험기간에는 임신한 몸으로 무리하지 않아도 될 만큼만 공부하고 편하게 시험을 볼 수 있었다. 첫 학기에는 심지어 3등을 하고 반액 장학금도 받았다. 시험기간에 밤새워 바짝 공부하고 중간 이상의 성적에 만족했던 예전 대학생활과 다른 또 다른 학교생활이었다. 임신해서 학교를 다닌 덕분에 규칙적인 학교생활을 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요가를 하면서 건강도 챙겼다. 퇴근한 남편과 동네 한 바퀴를 산책하고 남편과 아이에게 말을 걸면서 잠드는 평화로운 날들이었다.


사실 나는 자연유산을 한 적이 있다. 결혼하자마자 임신한 것을 알았는데 9주 차에 자연유산이 되었다. 항상 체력이 좋다고 자신했던 나였지만, 유산하면서 이전에 없던 알레르기 반응이 생길 정도로 면역력이 떨어졌다. 아이를 잃은 상실감과 슬픔,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그리고 변화되는 나의 몸을 보며 마음이 많이 약해져 있다가 그것을 극복하고 두 번째 피트 시험에 도전했던 것이었다.


학교 다닐 때의 임신은 그래서 두 번째였다. 첫 번째와는 다르게 나의 아이를 소중하게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오히려 학교 다니는 것이 좋았다. 학교 생활은 직장 생활과 다르게 힘들지 않다. 공부도 내가 하고 싶은 만큼 하면 된다. 성과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지만 시험이라는 적당한 긴장감은 있다. 가까운 거리가 아니지만 오히려 그렇게 왔다 갔다 등하교하면서 자연스럽게 운동도 된다. 오랜만의 학교 생활에 적응하고 30대 동지들과 새로운 교우관계를 맺는 시간들이 임신기간을 수월하게 보내게 해 줬다.


"태교는 저절로 되겠네~~ "라는 주위 사람들의 말씀이 맞았다. 임신한 채로 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임신 기간을 즐겁고 수월하게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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