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몰랐던...
약대 준비하는 사람들이 자주 가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있다. 나도 처음에는 피트 시험에 대해 막연하고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30대 수험생' 카테고리에 자주 들어갔다. 나와 같은 나이인 사람들의 글이 보이면 동지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30대의 글은 20대 수험생의 글과는 많이 달랐다. 나이 때문에 망설여지고 설사 공부한다 하더라도 합격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는 글이 많았다.
특히 '기회비용'에 대해 정리해주신 분의 글이 인상적이었다. 약대에 가면 발생할 ‘기회비용’에 대해 구체적인 금액까지 정리해주신 분의 글이었다. 직장을 관두고 피트 시험을 준비하는 비용, 약대 등록금과 그 기간 동안 직장을 다니지 못함으로써 발생하는 기회비용을 정리해 준 글이었다. 약사가 되어 그 돈을 회수하는 데 걸리는 기간을 계산하셨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들고, 회수하는 데는 훨씬 긴 기간이 필요했다.
그때 나는 직장을 다니고 있지 않을 때라서 기회비용이 와 닿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런 걸 다 따지면 대체 어떻게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하물며 100세 시대인데 그런 돈 계산이 맞아떨어질까라는 의문도 있었다. 나의 생각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다. 돈을 생각하면 새로운 도전을 하기가 힘든 것은 일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돈의 가치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나는 틀렸다.
돈에 초연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해왔다. 돈에 얽매이지 않는 나를 자랑스럽게도 생각했다. 그래서 26살에 퇴사할 수 있었다. 나는 돈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니까… 회사를 다니지 않아도 사는 데는 큰 지장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돈이 정 없으면 산에 들어가 살면 되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아프리카에서 2년 동안 살면서 활동비를 받았기에 돈을 모으진 못했지만 사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아프리카에서의 2년 활동을 마쳤을 때 한국 적응을 위해 200만 원인가 300만 원인가를 받았다. 나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기에 그 돈으로 결혼 준비를 하면 되겠다고 얘기했었다. 하지만 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대체 그 돈으로 무슨 결혼 준비를 하겠다는 건지. 결혼 준비는커녕 한국에 와서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면서 밥 사 먹고 커피 사 마시고 왔다 갔다 하면서 그 돈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피트 시험을 준비할 때도, 결혼할 때도 나는 돈이 없었다. 결혼 전에는 부모님 돈으로 공부했고 결혼 후에는 남편 월급으로 공부했다. 결혼할 때 돈이 없어서 남편이 모아둔 돈으로 집을 구했고 나는 부모님 도움을 받아 혼수를 마련했다. 공수래공수거라면서 돈은 없다가도 있고, 있다가도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나는 가족의 돈을 귀하게 여길 줄 몰랐고 그 돈을 벌기 위해 희생한 가족의 노동에 감사할 줄 몰랐다.
나는 낭비를 하거나 돈을 흥청망청 쓰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족의 도움과 희생 덕분에 결혼도 하고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몰랐다. 어떻게 보면, 그래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올 수 있었던 것 같다. 회사도 관둘 수 있었고 아프리카도 다녀올 수 있었다. 서른이 넘어서 다시 학교에 가겠다고 공부를 시작할 수도 있었다.
내 블로그에 몇 년이 걸리더라도 합격할 때까지 피트 시험을 보겠다는 사연이 올라오기도 하고, 실제로 몇 년째 공부하는 사람들의 사연도 올라온다. 공부가 어렵고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서 마음이 힘들다는 사람들의 사연도 자주 올라온다. 나는 그분들에게 이제는 기회비용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때 나는 몰랐지만 이제 나는 조금 알게 된 그런 '기회비용' 말이다.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는 것 자체가 가족의 도움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조금 더 마음을 독하게 먹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공부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너무 감사한 일이에요.'
"우리 가족은 제게 아무런 도움도 안 주고 있어요. 돈도 제가 다 벌어서 하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시간 내어 공부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가족이 건강하게 잘 살아가고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실제로 가족이 아파서 가족의 병간호를 하다 보니 수험기간에 공부할 수 없었다는 사연도 있었다.
나도 정말 몰랐다. 특히 어릴 때는 몰랐다.
결혼하고 나서 직접 생활비를 쓰다 보니 돈의 무서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내가 아무리 아껴보려 해도 매달 지출되는 공과금과 식비, 그리고 툭하면 발생하는 병원비까지… 돈은 쉴 새 없이 새 나갔다. 그동안 나는 혼자서 잘 큰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내가 밥 먹고 편히 쉴 수 있었던 잠자리조차 부모님의 노동이 만들어주신 환경이라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안다.
남편은 내가 피트 시험을 준비하고 싶다고 했을 때 하고 싶은 걸 하라고 응원해줬다. 37살인 내가 아무 걱정 없이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것은 남편이 15년간 매일같이 회사를 다니며 월급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친정아빠가 2017년에 암 판정을 받으셨다. 아빠가 아프고 나서야 부모님이 그동안 건강하셨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잘나서 약대에 온 줄 알았다. 내가 공부를 잘해서 합격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특히 나이 들어서 하는 공부는 그렇지 않다. 한창 돈을 벌어 가족에게 보탬은 되지 못할지언정 성인으로서 내 한 몸은 내가 건사해야 하는데 오히려 가족의 희생 덕분에 나는 지금 이렇게 공부할 수 있다. 사실은 이 모든 것들을 한 번에 깨달은 것은 아니다. 남편의 희망퇴직, 두 아이 육아, 친정아빠의 암 판정... 조금씩 철이 들 일들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