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살에 간 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내가 제일 나이 많으면 어떡하지?

by 차차약사

오랜만에 다시 신입생이 되다니... 설레면서도 동기들과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날 것 같아서 약간은 움츠러드는 날이다. 면접 날 와봤던 그 학교에 다시 찾아왔다. 이 학교에 합격생으로 다시 올 수 있다니 정말 감사한 일이다.





약간은 비좁은 듯 보이는 강의실이 오리엔테이션 장소였다. 한 강의실에 모두 들어갈 수 있는 44명의 인원이 나의 동기들이다. 교수님들이 앞에 앉아 계셨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모른 채로 책상에 앉아 설레기도 하고 긴장되는 기분으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너무 가만히 있기는 뻘쭘해서 앞자리에 앉은 사람들과 조금씩 대화를 나눠본다.


학생회 선배들의 소개가 시작됐다. 학교 소개, 학과 소개가 이어진다. 그리고 교수님들이 한 분 한 분 소개를 해주셨다. 아직은 내가 다닐 학교가 어떤 곳인지 잘 그려지지는 않는다. 교수님들의 소개가 끝나고 나니 이제는 우리들 보고 자기소개를 하라고 하신다. 아. 떨린다. 내가 제일 나이 많으면 어떡하지. 나는 교실 왼쪽의 앞쪽에 앉아 있어서 순서가 금방 찾아오는 자리였다. 내 앞의 동기들이 어떻게 발표하는지 듣고 싶은데 내 순서가 다가와서 긴장이 된다.


오리엔테이션 시작을 기다리면서 대화를 나눴던 ‘20대 동생인 줄 알았던’ 사람이 자기소개를 한다. 어라? 그런데 30대라고 한다. 어머, 얼굴은 어려 보였는데 나랑 비슷했구나. 호호호. 앞에 발표하는 사람이 몇 명 있지도 않은데 그중에 벌써 30대가 출현하다니. 득템한 기분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권세나이고 30대입니다. 저는 지금 임신 16주 차입니다. 반갑습니다. “

20대들은 나이를 정확히 얘기하는데 30대들은 그냥 30대로 퉁친다. 나이 어린 틈에 있으면 나이를 정확히 밝히는 게 꺼려진다. 어차피 들어도 모르긴 할 것이다. 나도 대학생 때 5살 위 선배부터는 그냥 나이 많은 선배로 퉁치고는 했으니까.


이제부터는 관전의 시간이다. 44명 중에 30대가 또 누가 있을지 알아내는 게 오늘 자기소개의 키포인트~ 4년 동안 나의 친구가 되어 줄 사람을 찾는 것이 오늘 주어진 중요한 임무이다. 어린 친구들의 발표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다가 나랑 비슷한 연식인 것 같은 사람이 일어나면 발표에 집중한다. 역시~ 30대 친구 한 명 더 발견! 나중에 말 걸어야겠다.

”안녕하세요. 저는 OOO입니다. 저는 30대이고 지금 임신 15주 차입니다. 반갑습니다. “

우와~~ 나와 같은 임산부라니~~ 괜한 걱정을 했나 싶을 정도로 나와 같은 연령대의 사람들, 심지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너무 반갑다. 학교 다니면서 큰 의지가 될 것 같다.

뽀샤시한 얼굴에 유행하는 모자를 쓰고 귀염귀염 눈웃음을 짓는 한 사람이 일어난다. 알고 보니 30대이고 심지어 아기 엄마라고 한다. 이럴 수가~ 애엄마인데도 저렇게 예쁘고 귀엽다니~~ 심지어 서울대를 나왔다고 한다. 똑똑하고 예쁜 엄마랑 친구가 되겠군~ 다음에는 그 앞에 앉아 있던 어린 얼굴의 사람이 자기소개를 했다. 그런데 30대라고 한다. 예쁘고 귀여웠던 아기 엄마의 대학 후배라고 한다. 얼굴이 어려 보여서 30대라는 얘기에 20대 동생들까지도 모두 놀랐다.


순식간에 자기소개가 지나갔다. 많은 학생들의 소개를 들어서인지 머리에 남는 게 없다. 하지만 오늘 친해져야 할 얼굴들은 파악해서 다행이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뒤풀이 장소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중에 한 30대 친구가 먼저 말을 걸어준다. 서로 소개를 하는데 글쎄! 나와 같은 학교, 같은 학번 출신이다. 심지어 재수를 한 것도 같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나는 도시공학과이고 그 친구는 전자전기공학과를 졸업했지만 학부제였기 때문에 분명히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친구들일 것이다. 여기 와서 전적대 동기를 만나다니... 갑자기 마음이 편해지고 긴장이 풀린다. 임산부라서 뒤풀이에 끝까지 자리하지는 못하고 중간에 집에 돌아왔지만 괜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인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44명 동기 중에서 30대는 7명이나 되었다. 나이는 거의 비슷했다. 34살이 2명, 33살이 4명, 31살이 1명이었다. 그런데 이 중에 족보 파괴자가 있었다. 34살 언니는 학교를 일찍 들어가서 00학번이었다. 그리고 다른 34살은 01학번이었다. 그런데 나와 같은 학교를 졸업한 친구 A와 나는 재수를 해서 02학번인데, 둘 다 생일이 빨라서 원래 02학번들이랑 나이가 같다. 그래서 고등학교 친구들은 34살이고 대학 친구들은 33살이다. 심지어 같은 학번에 생일이 빠르거나, 생일이 빠른데 거기에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해서 온 친구가 있어서 말 놓는 친구 중에는 31살까지도 있다.


성인이 되어서는 학생 때처럼 학번이 중요한 나이가 아니므로 나의 빠른 생일은 무시하고 33살이라고 소개하고 33살이랑 친구하고 34살에게는 언니라고 한다. 이제는 쉴 새 없이 나이를 먹어가고 있어서 오히려 그렇게 말하니깐 나이도 천천히 먹는 것 같아서 좋다.

그런데 이렇게 대학생이 되고 가니 다시 한번 족보 파괴자가 되었다. 34살끼리는 전적대 학번은 다르지만 서로 친구 하기로 했고, 34살 중에서도 01학번인 애랑 나와 A는 33살이지만 말을 놓기로 했다. 그리고 A와 나는 다른 33살 두 명이랑도 나이가 같아서 친구 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른 33살 두 명은 우리가 말 놓는 34살인 애한테 언니라고 부른다. 이렇게 나이 많은 언니들의 모임이 결성되었다. 나와 A 같은 족보 파괴자가 있어서 언니면서, 친구이기도 하면서, 서로 이상할 때가 있지만 우리는 학교 다니는 동안 서로에게 너무나 든든한 조력자였다.


아이 엄마가 둘 있었고, 임산부가 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20대 동생들과는 교감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나누고 공유하면서 서로에게 의지했다. 시험기간에 함께 카톡 하면서 아기 재우고 이제 공부 시작한다~라는 얘기도 서로 받아줄 수 있는 사이. 나는 입학한 그 해 여름방학에 출산을 했기 때문에 동기들과 1학기만 같이 다니고 휴학을 했다. 그래서 나는 졸업이 2년 늦어졌고 동기들은 이미 약사로서 일하고 있다. 함께 공부한 시간은 짧았지만 지금까지도 서로 만나고 있다. 학교에서 더 이상 만날 일은 없지만 이제 약사로서의 새로운 시작들을 하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우리는 '나이 많은 신입' 약사로서의 많은 것들을 나누며 의지할 것이다.

블로그나 유튜브를 통해 약대에 30대가 얼마나 있는지 물어보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도 약대에 가려고 마음먹었을 때 그 부분이 가장 궁금했었다. 내가 나이 제일 많은 거 아닐까? 나이 때문에 차별받는 것은 아닐까?

30대 합격자들은 공부하느라 인터넷에 글 올릴 시간도 없었나 보다. 막상 입학하고 보니 30대 언니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래서 나는 30대 많으니깐 걱정하지 마시라고 답변을 한다. 내가 지금 함께 수업 듣는 학년에는 40대 언니도 두 명 있다. 진짜 30대가 있을까? 나이 때문에 차별받는 것은 아닐까?라고 걱정하는 30대 PEET 준비생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눈으로 보기 전에는 계속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이해가 된다. 공부하면서도 성적이 내 생각만큼 잘 나오지 않을 때 그 불안함이 나를 집어삼키기도 한다.

모든 약대를 전수 조사하진 못했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다니는 학교에는 30대가 정말 꽤 많다. 전체 인원의 20%는 되는 것 같다. 게다가 학교를 다니는 중에 30대에 새롭게 진입하는 29살, 28살들도 많다. 걱정할 것은 없다. 결혼, 출산, 육아 등 30대만이 통할 수 있는 대화 주제 때문에 20대 동생들보다는 서로 비슷한 나이끼리 어울리는 게 편하다. 20대 동생들이 너무 귀엽고 좋지만 결국은 30대 친구들과 서로 많이 의지하게 되더라.


분명히 30대는 많다. 나도 오리엔테이션에 가서야 그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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