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비서로 산다는 것
친구 Y는 갑작스럽게 물어왔다. 그녀는 대학원을 몇 번 옮겨 다니며 자아 찾기에 열중했던 친구다. 학예사를 목표로 석사학위 취득 후 막상 업계의 낮은 처우에 지쳐가고 있던 그녀는 지인으로부터 자신의 비서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고 했다. 마침 주변에 비서는 나 하나뿐이었는데 솔직한 의견을 말해달라고 했다.
순간 많은 고민을 했다. 어떻게든 서른 전에 비서 딱지를 떼겠다는 목표로 살고 있던 내게 비서로 사는 것이 어떻냐니. 친구 사이에도 자존심이 있는데, 지난 시간 동안 내가 어떤 어려움을 직면하며 목구멍에 풀칠을 하고 있었는지 말하고 싶진 않은데. 내가 지금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친구가 스스로 커리어에 낙인찍는 것을 방관하고야 말 것인가.
그러다 문득 직장생활 어려운 건 어딜 가나 마찬가지인데 괜한 자격지심 아닌가 하는 자기 위안까지 하게 됐다.
스스로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부끄럽지만, 비서라는 직업에서 오는 자격지심은 비단 작가만이 직면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비서가 차지하는 위상에 대해 논하자면, 아마 시작도 전에 코웃음을 날리는 사람들이 태반일 것이다. 약 7년에 걸친 작가의 경험적 근거로만 보아도 사실 비서라는 단어가 갖는 이미지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다. 이것은 흔히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비서의 이미지가 오피스룩을 풀착장 한 젊은 여성이 차를 나르는 모습(그마저도 다수가 매우 쌀쌀맞은) 혹은 남성이라면 후계자나 본부장님 옆에 함께 다니며 자주 구박을 당하거나 금전적인 이유로 상사를 배신하는 역할을 자주 그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알 수 있다.
비서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자면 '일부 중요한 직위에 있는 사람에게 직속되어 있으면서 기밀문서나 사무를 맡아보는 직위'이다.
로펌비서로서 덧붙이자면, 상기 내용과는 다르게 비서의 직무에는 명확한 경계가 없다. 법원에 제출할 서류를 다듬는 것은 기본이요, 각종 증거를 수집해야 할 때도 있고, 세미나를 개최해야 하기도 하고, 책과 팸플릿을 만들어야 할 때도 있고, 각종 프로모션의 영업관리도 해야 하며, 종종 설문조사 설계까지 해야 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비서'는 화장이나 곱게 하고 차를 나르다 퇴근하는 '꿀보직', '땡보', '월급루팡'으로 여기며, 학력이나 업무능력보다 '여성', '젊음', '외모', '상냥함'이 중요시되는 직군으로 인식하는 것이 보통이다.물론 의전 역시 비서 업무의 큰 축이지만, 의전 자체로 비서의 업무범위를 한정하여, 비서들의 사무능력이 평가절하 되고 있는 것은 아주 애석한 일이다.
약 3년 전, 팀 내 신입비서 OJT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녀는 흔히 말하는 SKY 출신이었고, 대기업에 있다가 워라벨을 찾아 로펌에 비서로 들어왔다고 했는데, 쉬는 시간에 던진 '일 해보니 어떻냐'는 질문에 위와 같은 대답을 했다. 그리곤 이내 그만두었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퇴사는 모두 예상한 일이었지만, 그녀가 던지고 간 한마디는 한동안 팀에 묘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자기 사업을 하지 않는 한 그리고 더 큰 조직에 소속되어 있을수록 근로자는 기계의 부품과도 같은, 어떤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비서'라는 단어는 유독 그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더더욱 하찮게 인식하게 하는 것 같다.
작가는 재직 중인 로펌에 비서로 입사하기 전 취재기자로도, MD로도 또 중견기업 인사부서의 일원으로서도 근무했었지만 지금에 비해 엄청난 권한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을뿐더러, 당시 주어진 업무분장은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주지도 못했었다. 허무 한 말이지만 전문직이 아니고서야 결국 최종 의사결정권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서로 급 나누기에 급급한 것 같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녀가 느꼈을 어떤 답답함에는 충분한 공감을 던진다. 다른 곳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전직에 목을 맨 작가의 이유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비서는 지시에 따라 준비하고, 확인을 득하여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콘텐츠를 생산하기보다는 서식을 다듬는 사람이다. 주체라기보다는 보조자다. 권한이 크지 않은 대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이점이 있지만 성취욕이 강한 사람에게는 적응하기 힘든 일임에 분명하다. 가끔 장래희망이 취업이었을 시절, 자소서에 쥐어짜듯 기재한 "리더십으로 일구는 팔로우쉽"이라는 문구를 떠올리며 실소한다. 급 나누기 좋아하는 한국사회에서 스스로 족쇄를 차고야 말았던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직업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른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직업이 자아실현의 장인지 혹은 단순한 경제원인지에 따라 사람들의 직업 만족도는 달라지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경제원인 내 직업은 지인들로부터도 편견을 체감하게 하고 있어 안타까울 때가 있다. 종종 만나는 대학 동기들은 유독 자기 직업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평소 알아듣기 힘든 업계 은어나 프로그래밍 용어를 써가며 자신의 고충에 대해 토로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유독 온갖 뉘앙스로 비서가 바빠봤자를 강조하는 편이었고 졸렬하지만 나는 급기야 그녀와의 교류를 점차 줄여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하필 법원에 제출할 자료 준비를 위해 통계조사를 외주를 맡길 일이 생겼다. 그래도 업계 종사자인 친구가 있기에 나는 먼저 연락을 취했었다. 하지만 그 친구의 사수가 제시한 프로그램이나 결과지 샘플이 서증으로 사용될만한 수준을 전혀 충족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법원에 제출할만한 통계분석 보고서를 전담하는 팀은 리서치 업계에서도 메이저 펌에 1군데만 있는 것을 확인했긴 하지만, 당시 나는 아무리 소규모 펌이라고 해도 그들의 마이너 한 상담에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비교견적서에서 그 회사의 이름을 삭제한 후 내부 보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
편견이 만든 안타까운 상황이야 어느 직업엔들 없을까 싶지만, 나는 돈을 받고 하는 일이 참 이 정도 수준이라니를 몸소 보여주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서라는 이유로 무시 아닌 무시를 받아왔다. 비서는 분명 그 업무보다 편견과 두꺼운 유리천장에 더 치이는 입장임에 틀림없다.
열거하지 못하는 많은 뒷이야기들을 친구 Y에게 전하며 나는 진심으로 그녀가 비서직 제의를 거절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비서가 되었고, 얼마 전 그만두었다. 나보다 늦게 비서가 되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비서가 아닌 그녀를 만나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러 고충이 있지만 전에 일 하던 화랑에 비하면 좋은 수준의 대우를 받는 것에 만족했었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조금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 힘든 상황이 많긴 하지만 이 일은 살인적인 업무에 시달리거나, 실적의 압박에 고통받는 직업이 아니니 어찌 보면 행복한 직업이기도 하다. 편함을 택했기 때문에 그런 대우를 받는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또 서글퍼지겠지만 말이다. 직업을 단지 경제수단으로 보고 더러운 순간을 참는다는 선배의 말을 듣고 나도 포기할 것은 포기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긴 한다. 하지만, 편견은 무지에서 온다는데, 이 글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앞으로 전할 글을 통해서도 우리도 똑같은 사람이라고, 우리의 입장을 조금은 이해해주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