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병과 수혜자들
비서병, 모든 모임에 일정 취합과 장소 섭외 그리고 공지를 도맡아 하는 병이다. 일종의 직업병인데, 많은 동료들이 말하길 어딜 가도 어떤 모임에서도 자신이 총무역을 하고 있으며 이제는 예약하지 않은 식당에 단체로 몰려가는 일은 있을 수도 없거니와 데이트와 가족모임에서조차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이 병의 수혜자가 되어 그 효용에 대해 만족하고 있다고 한다. 내게도 예외는 아닌 이 병은 그저 웃어 넘기기엔 그 씁쓸함이 좀 크다.
왜 그 개소릴 가만 듣고 있었을까. 그저 처음 만난 남자에게 물을 따라 준 것뿐이었다. 얼마나 현란했냐 묻는 다면 물을 와인 디캔딩 하듯 따른 것도 아니었고 그저 준비된 컵에 물을 따라 건네어 준 것뿐이다. 그렇다면 내가 과연 비서라서 비서답게 뭔가 건넨 것 아닌가 싶겠지만, 취재기자였을 때도, MD였을 때도, 심지어 학생이었을 때도 나는 같은 방식으로 컵에 물을 따라 남들에게 건네곤 했다. 그럼 이제 ‘아, 비서를 할 재능이 내게 내재되어있었던 것인가. 나는 물까지 참 잘 따르는구나. 결국 비서를 할 운명이었던 것인가. 비서의 기능이란 물을 예술적으로 따르는 것인가.’하는 생각까지 들게 된다. 딱히 비아냥거리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비서’라는 직업을 듣고 나의 가치와 기능을 한정하고 다른 직업을 가졌었던 때의 나보다 더 나를 더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던 경험은 나뿐만 아니라 이 직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나름 고충이지 않을까 한다.
물론 이 시덥지 않은 말을 한 남자와 나는 한 일 년 반은 사귀었다. 그는 자상한 남자이긴 했지만, 일면 내 직업으로서의 나를 활용하려 했다. 나는 가령 그의 고가의 패딩을 결제한 매장에 가서 결제를 취소하고 혜택이 더 좋은 카드로 재결제를 하는 과정을 혼자 처리하고 올 때도 있었고, 그의 전세계약을 위해 부동산에 가서 중개인을 마주해야 했던 기억도 있다. 나는 회사에서도 이런 일은 해본 적이 없다. 내가 단지 호구였을까 아니면, 아니면 비서이기 때문에 타인의 부탁에 저항이 적은 사람이라고 그가 나를 오해했던 것일까.
S대를 나와 종편임에도 가장 신뢰받는 방송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그는 담당하던 자사 부동산 관련 민사사건의 추이가 이상하다며, 전임자가 인수인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상황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 적이 있었다.
그의 리서치를 대신해줬던 것은 나였다. 그 사건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간단한 사건검색만으로도 그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확인할 수 있는 평이한 사건이었다. 비서라서 나는 물을 잘 따르는 것이 아니라 대법원 사건검색을 할 줄 알았던 것이다. 기본 중에 기본인 사건 검색 하나로 그의 문제를 해결해 준 이후 그는 어쩐지 미묘하게 변했는데, 전보다 흡사 의전처럼 그를 챙겨주길 바랬던 것들이 줄어들었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어떤 일들로 야근을 하고 있는지 내 직업에 대한 이해를 높여가며 초반에 자신이 어떤 실수를 했는지에 대해 새삼 깨달은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사귀는 내내 이것저것 해달란 것이 많았고, 난 결국 한 번은 난 네 비서도 엄마도 아니라며 엉엉 울었던 적이 있었다.
이런 경험이 단지 그 사람 개인의 성향 문제로 보고 내가 과민한 것 아니냐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외에도 숱한 다른 경험들이 있다. 가령 친척 한분은 항상 그 수많은 사촌들을 두고도 물은 내게만 떠오라고 한다. 물론 집안 어른에게 물 한잔 가져다주는 것이 뭐 그리 불만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밥을 먹을 때 앞에 김치나 어떤 반찬이 떨어지는 순간 허공에서 눈이 마주치면 나는 계속 주방을 왔다 갔다 하곤 한다. 주방은 꽤 멀어서 밥을 먹는 내내 식사를 하는 것인지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주 번거롭고 정신이 없다.
하지만 웃기게도 나는 회사에서 밥을 먹을 때 그 정도로 누굴 챙기지 않는다. 위암 수술을 받았던 한 전문가의 회식 메뉴를 호텔 측에 ‘코스를 저염식으로, 재료 일부를 식감이 부드러운 것으로 대체하여 준비’등을 요청해두거나, 굳이 제일 상석에 앉지 않는 습관을 가진 상사부터 음식을 받을 수 있도록 서버분께 미리 순서를 말씀드리는 정도이다. 내가 실제로 식사시간에 남을 그렇게까지 챙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평소에 차를 나르지도 않는다. 물론 손님이 찾아오는 경우에는 그럴 수 있지만, 법인 방침 상 자기 음료는 탕비실에서 각자 가져다 먹는 것으로 하자는 어떤 규칙 같은 것들이 있고, 회의실을 담당하시는 직원분들도 손님들께 각자 냉장고에서 꺼내 드시라는 안내를 하고 있다.
많은 딸들이 그렇듯 나는 엄마에게도 화가 날 때가 많다. 어쩐지 엄마는 학원 강사를 잠시 했던 언니의 연말정산까지 내게 처리하게 시키려 했다. 뭐 물론 속사정이 있었겠지만, 나는 내 연말정산도 회사 프로그램에 간단한 수치만 입력할 뿐 담당 부서에서 처리해준다. 내 연말정산에 대한 이해도는 일반 직장인 정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마침 당시 건강이 좋지 못해 바짝 날이 서있던 나는 내가 큰 수술을 두 번 받는 동안 가족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문자나 연락이 다였는데, 그렇게 몸과 마음이 지쳐 도피하듯 휴가를 내고 떠났던 강릉 한복판에서 급기야 언니 연말정산이나 해줘야 한다는 이 상황에 질려버렸다. 그런 건 누구나 국세청에 물어가며 할 수 있어 라고 엄마에게 화를 내고 전화를 끊고 말았는데, 내 직업에 대한 오해는 내 휴식까지 망치고 있는 것인가라고 생각하며 호텔 방 안에서 뜬눈으로 그 겨울밤을 지새우고 말았다.
자격지심이랄 게 없다면 솔직히 거짓말이다. 나는 꼭 직업적인 부분이 아니라도 자격지심이 많은 성격인데, 이 직업을 선택한 이후 어쩐지 사람들이 나를 하대하거나 쉽게 보는 듯한 인상이 들면 더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한동안 앓기도 한다. 하지만 이게 정말 나를 그렇게 대한 사람들 개인의 인성문제라거나, 내 자격지심 탓이기만 할까. 많은 사람들이 지인들로부터 종사하는 분야와 관련한 많은 부탁이나 질문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비서는 하대와 부림의 대상이 되기 유독 쉬운 것 같다는 게 곧 7년을 비서로 산 내 경험적 근거에 입각한 사실이다.
막내 삼촌은 우리 법인의 의뢰인이었다. 아끼는 후배가 시니어 변호사로 재직하고 있어 이 근방 왕래가 잦았던 삼촌은 입사 초기 교육받고 있던 내 자리에 찾아와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둘러보고 간 적도 있었다. 두 해 전, 아주 오랜만에 삼촌과 산책을 하던 길이었다. 삼촌은 어떤 부동산 계약에 관해 처리할 일이 있었고, 그 부분을 숙모와 이야기하다가 옆을 따라 걷고 있던 내게 ‘이런 부분은 네가 서류를 만지는 일을 하니 알아두면 좋을 것’이라 말씀해주셨다. 당시의 나는 별 것 아닌 그 한 마디에도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한국인에게는 뿌리 깊은 모성신화만큼이나 일상 곳곳에 선민의식과 각 직업에 대한 갖가지 편견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나 역시 그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스스로를 어떤 틀에 가두고 있는 것도 맞다. 하지만 벗어던져버리고 싶은 이 직업에 종사하는 많은 분들이, 또 다른 비슷한 편견에 사로잡혀 하루하루를 스트레스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단순 무뎌지는 것으로 그 상황을 견디는 것은 너무 슬플 것 같다. 서비스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요즘 감정노동자로 불리며, 사측은 의무적으로 그들을 고객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각종 장치들을 마련하고 있다. 이런 장치가 굳이 필요할 만큼 어떤 직업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나를 사회가 분류하는 약자의 카테고리에 강제로 집어넣는다는 것이 매우 찜찜하지만, 부디 많은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자존감을 놓지 않고 건강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들을 찾아갔으면 좋겠다. 물론 나부터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