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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서 C Oct 05. 2019

로펌 직원들의 송사는 또 다를까?

공과 사



나쁜 운 상반기에 다 빠져나갔네


뭘까. 신점도 아닌데 용한 것인가. 그저 이 사주 보는 아저씨가 한번 던진 미끼인가. 어릴 땐 무당이었다더니 찾아오길 잘한 것인가. 다음 리액션으로 호갱이 될지 호락호락하지 않은 손님이 될지가 정해질 찰나의 순간, 나는 결국 속내를 숨기지 못하고 감탄에 가까운 호응을 하고야 말았다. 내가 미끼를 물어버린 것일지 몰라도, 올해  상반기까지 나를 괴롭혔던 일이 끝난 것만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풀어놓고 싶지 않다. 아직도 무섭기 때문이다. 다만 아주 일상적인 공간에서 괴한의 공격을 받았었다. 다행히도 용감한 행인들 덕에 물리적으로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지만,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막아내기 힘들 정도로 과격했던 가해자의 모습이나 그가 내게 퍼부었던 이유를 알 수 없는 폭언과 협박성 발언들은 한동안 내가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운 이유가 되었었다.


나는 민사 사건을 주로 수행하는 부서의 전문가를 담당하고 있다. 몇 개의 형사 케이스도 관리하고 있다. 크게 형사건은 ‘경찰수사단계-검찰수사단계-법원단계’ 이 3단계에 거쳐 진행된다. 경찰단계에서 수사를 마친 후 사건이 검찰로 송치되면 검사가 사건 검토 후 추가 조사를 진행한 뒤 법원 단계로 넘어가는데, 경찰/검찰 단계까지는 정보 확인도 법원보다는 더 어려운 부분이 있고, 법원 단계에 가서도 형사건은 전자가 아닌 종이소송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사건 기록이나 증거목록은 보통 민사사건의 그것과는 다르게 입수 및 취급이 더 까다롭기 마련이다. 한 번은 송무팀이 애써 법원에 복사 신청을 넣고 재판부 허가를 받아 A4 박스 수십 개 분량의 기록을 등사해 온 적도 있는데, 증인신문이 예정된 때나, 증거인부서를 제출해야 할 때 등사한 자료에 누락된 것이 없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던 나로서는 당시 산더미 같은 깜지를 써야 하는 학생처럼 답답한 마음만 앞섰다. 또한 형사 쪽은 보통의 재판부보다 연락을 취하기 더 어렵고 조심스러운 인상을 받곤 했었는데 내가 업무만으로도 지치는 이런 어렵고 피곤한 사건의 당사자가 되리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더 잘 알겠네?

변호사한테 도와달라고 하면 되잖아?


내게 닥쳤던 일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 사건을 알고 있는 가까운 친구들은 하나같이 이런 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막상 내 일이 되고 보니 내 직장이라는 것이 그렇게까지 긍정적 요인이 되지는 못했다. 법률회사 직원의 입장에서 밖으로는 이런 송사에 휘말렸다는 것이 알려지는 것이 더 부담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고, 안으로는 이곳 역시 남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기 때문에 그것이 변호사든 직원이든 내 개인적인 일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처리하고 싶었다. 또한 좋은 분들과 일하고 있는 지금이라도, 결국은 그들이 나로 인해 편해야 하는 입장에서 전문가들에게 개인적인 부탁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짧지 않은 회사생활 동안 주변의 비슷한 예를 목격하면서 사적인 도움을 받게 된 비서가 업무적으로도 ‘이런 일은 비서의 일이 아닙니다’라는 선을 지킬 수 없게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사건 당일, 나는 담당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 당사자로서의 당혹스러움이 그간의 철칙을 깨게 만들었다. 시민들이 나를 구해주고 또 경찰에 신고도 해주었긴 하지만, 경찰을 만난 이후 아직 놀란 마음을 진정도 하기 전인 나는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부터 정해야 했다. 고소는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했지만 고소를 당일 관할서로 가서 바로 할 것인지 추후 할 것인지부터 정해야 했고, 고소장에 죄명은 무엇으로 할지도 정해야 했다.


당시 나는 내 결정들이 앞으로 어떤 영향을 줄지도 모르는 그 시간이 매우 불안하고 혼란스러울 뿐인 한 명의 피해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도 야근이었던 내 퇴근 직전에서야 잠시 물을 마시겠다고 집무실 바깥으로 나온 담당 전문가 K가 떠올랐다. 영입된 지 얼마 안 되어 밀려드는 업무에 하루하루가 버거웠을 K는 ‘오늘은 늦게까지 회사에 있을 것 같다’며 인사를 했었다. 사실 좀 말하기 민망한 부분들도 있어 더 오래 일한 여성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출산에 임박한 상황이었고, 나는 만삭의 몸으로도 많은 재판을 소화하던 그녀를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사건 현장에서 변호사 K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가 갈까요?


연락이 올 시간이 아닌 때에 비서가 연락을 한 것도 의아할 일이건만, 떨리는 목소리의 내가 K 역시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나를 대신해 경찰을 통하여 상황을 전해 들은 K는 아주 침착한 목소리로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고 나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본인이 가겠다며 어딘지 물어왔다. 하지만 나는 그가 나와 통화하고 경찰과 통화하는 동안 잡아먹은 많은 시간들에 벌써 충분히 미안해지고 있는 상황이었고, 더 폐를 끼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충분히 감사하다며 통화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나는 그 밤 관할서에 이동했다가 또 바로 현장조사를 갔다가 형사들의 보호를 받아 야밤에 집에 도착했고 8평 남짓의 자취방에서 오들오들 떨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어김없이 해는 밝았고 나는 출근을 해야 했다. 하루아침에 피해자, 고소인의 신분이 된 것도 무섭고 스트레스였지만, K를 마주할 생각에 복잡한 감정들이 일어 몹시 출근하기 싫었다. 물론 그 복잡한 감정 중 낯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가장 컸다.


K가 갓 입사했을 때, 입사 전 사건들에 대해 사임 처리가 완료되지 않았었다. 통상 직전 회사가 해줬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아 우리 회사에서 처리해야 했는데, 법인 내부에서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송무팀은 법인 내 사건이 아니니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변호사가 선임 혹은 사임된 사건의 내역을 변호사회에 신고하지 않으면 벌금을 물게 된다. 번거로울 뿐이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나는 영입 전 K가 수행한 사건들에 대해 지정서가 제출되었던 시기를 일일이 확인하고 아직 사임하지 않은 사건에 지정 철회서를 제출하는 등 후속 처리를 했었다.


꽤나 쌀쌀맞았던 당시의 내가 참 치사하게 느껴졌다. 비서팀에는 불문율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업무 영역이 아닌 일을 입사 초 처리해주다가는 후임 비서에게도 폐를 끼치게 되니 자를 건 잘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입장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간 K에게 ‘그런 건 안됩니다’를 복창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당시엔 합당한 일들이었지만 내로남불도 아니고 어느새 ‘나만 되’라는 억지를 부린 사람이 돼버렸다는 수치심은 이불킥 정도로는 해결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막상 출근 후 만난 전문가 K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출근해도 괜찮냐며 필요하면 또 알려 달라고 했다. ‘과연 이런 것이 대인배인가.’ ‘은혜 갚은 까치라도 되겠다.’ 싶었던 그 순간 그래도 다시는 개인적인 부탁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다졌다.


당시 마스크를 쓴 남자만 보아도 경기를 일으키던 나는 갖가지 악재가 겹쳐 결국 휴직 절차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관리자 E에게 일련의 상황을 알리게 되었다.


그녀는 다른 일로 과거 난감했던 때가 있었으며, 도움을 청했던 당시 담당 전문가가 보였던 시큰둥한 반응에 멋쩍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우리는 서운함보다는 충분히 이해하는 쪽에 가까웠다. 시간당 요율에 기반하여 의뢰인에게 보수를 받는 그들에게는 시간이 곧 금이며, 안 그래도 쪽잠을 자며 책상 앞을 지키고 있는 그들에게 개인적인 부탁이야말로 무리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이미 엎질러진 물인 내 난처한 상황에 E는 충분한 공감을 해주었다. 그리고 직원들의 법률문제를 상담해주는 담당자가 있으니 찾아가 보라고 했다.


추가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서에 가야 했던 날, 직접 찾아가는 것은 보는 눈 때문에라도 부담스러웠던 나는 경찰서 앞에서 담당자 G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비전문가 그룹이지만, 송무직원들의 대표 격으로 이 분야 경험이 많은 사람이었다. 나는 그에게 내가 절차상 내가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물었다. 사건 당일 경찰들끼리 “왜 이걸 이렇게 처리했냐”라는 내용의 대화를 눈앞에서 다 들었을 정도로 내내 의뭉스러운 점이 많았고, 앞선 진술에서 피해자인 내게 피의자의 신분증을 노출시키는 결코 신뢰할 수 없는 경찰들을 만났었기 때문이다.





G는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의 답변과 법인의 직원으로서 당당하게 조사에 임하라는 ‘고맙지만 알맹이는 없는 류’의 조언을 해주었다. 또한 필요에 따라 변호인을 선임하라고도 했다. 물론 당시의 내게는 그런 조언들도 무척 감사했다. 하지만 결국 내 사적 영역을 노출시킨 각오에 비해 너무 교과서적인 답변을 들어 의기소침해지긴 했다.


일을 하다 보면 변호사들이 보내온  “지인이 ~~일이 있는데 **지역의, 혹은 **분야의 전문가를 추천해달라”라는 전체 메일을 종종 목격한다. 본인들도 변호사이지만, 지인의 일에 대해서 더 적합한 전문가를 소개해주는 것으로 도리를 다할 때도 있고, 지인의 사건을 저가로 수임하여 혼자서 서면을 쓰고 혼자서 관련 업무를 다 봐주는 변호사도 있다.  그런 경우들을 보면 시간적 여유가 없음에도 직업적인 이유로 이런저런 부탁을 받고 있을 그들이 안타깝기도 하다. 하지만 큰 일을 겪고 나니 어른들이 왜 그렇게 집안에 ‘사’자가 많을수록 좋다고 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아마 차원이 다른 든든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공부를 잘했으면 좋았을걸.




이후 나는 회사 밖에서 도움을 구해 관련 절차들에 대응했다. 그리고 모든 일이 마무리된 지금 생각해보면 G는 아마 내가 회사 사람들에게 더 오픈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것을 알고 있어 그 정도 선의 상담을 했던 것 아닐까 한다. 아마 내가 더 회사를 믿었거나 덜 예민하게 굴었다면 회사에서 대리를 해주는 것까지는 아니라도 도움을 더 받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실제로 고충처리부서(?)는 법률 회사의 직원들이 법률적인 문제로 난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윗선의 제안으로 설치했다는데, 그곳에 다녀가는 직원들이 꽤 된다고 한다.


사건 종국 결과에 대한 통지를 받았던 최근, 나는 K에게 감사의 인사와 작은 선물을 전했다. 몇 번의 선물을 보냈었지만 또 인사를 할 정도로 그때의 고마움은 쉬이 잊히진 않을 것 같다. 일하는 곳이 로펌이라는 것도, 그래도 절차에 대한 어떤 개괄은 알고 있다는 것도, 내가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이유는 되지 못했다. 나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K의 아량과 인정에 기댔을 뿐이다.


물론, 다시는 또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지만. 만약 또 어떠한 이유로든 조사기관에 출석할 일이 생긴다면 그때처럼 어리숙한 대응을 하지는 않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것은 물론 내가 한번의 경험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좋은 기억은 아니지만 이 또한 내게 자산이 될 경험이 되길 바라며 한 주의 마지막 밤을 흘려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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