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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서 C Sep 16. 2020

블라인드에 내 글이 올라왔다

연재 1년, 인간 개복치의 SNS 적응기

언니,

나 말고 누가 또 알아?


점심시간이 끝난 어느 오후, 동기가 카톡을 보내왔다. 직장생활을 하며 내게 켕기는 일은 하늘을 우러러 하나뿐이었다.


바로, 브런치.


드디어 때가 온 것인가. 순간 입 안이 바싹 말랐다.






 연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세이브 원고가 꽤 될 정도로 한때 나는 브런치에 글을 올리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었다. 탈고의 목적이 비속어나 과격한 표현을 삭제하는 데 있었을 만큼 원고에는 퇴사를 결심해야만 쓸 수 있는 에피소드를 많이 담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 익명성은 아주 중요했다.


당시 나는 브런치라는 매체의 파급력을 얕잡아보고 있었다. 배설의 장으로 브런치를 택했던 것도 그 이유에서다. 아무리 독기가 바짝 오른 나라도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실업자가 되고 싶진 않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다지 유명해 보이지도 않고, 요즘 말로 ‘노잼’으로 보이던 이곳을 내 스트레스 해소의 장으로 삼았던 것이다. 명확한 근거도 없이, 나는 이곳이 머지않아 카카오의 실패한 기획 중 하나가 되어버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연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그것이 오산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연재 초기 브런치팀이 좋게 봐주신 덕분에 내 글은 다음 메인에 걸리기도 했고, 카카오톡에도 몇 번 내 글이 노출되었었다. 철없이 으스댔던 순간도 있었지만, 더 이상 브런치에서 미니홈피 다이어리에 글을 올리며 느꼈던 류의 감정을 느낄 순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다 법인 소속인 누군가가 내 글을 보게 될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그날은 연재 이후 가장 많은 조회수가 올라간 날이었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았던 날로 기억된다. 동기의 연락은 ‘차라리 회사에서 잘려 실업급여를 받으며 한동안 쉬고 싶다’는 내 철없던 발언을 철회하고 싶을 만큼 순간 극도의 스트레스가 되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회사 사람들이 내 글에 대해 이야기하더라는 동기의 메시지는 사람들이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으며, 그 대화가 대체 어떤 반응을 담고 있는지를 설명하기에도 부족했으니 말이다.



블라인드에 누가 올렸다나 봐


블라인드는 직장인들의 커뮤니티이다. 회사 계정으로 특정 회사의 소속(혹은 특정 직군)임을 인증받고 가입하게 되며, 소속회사 및 동종업계 라운지에서 익명으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 근 몇 년간 화제였던 이 커뮤니티의 존재를 나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굳이 회사 계정으로 어떤 인증을 받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던 나는 단 한 번도 그 앱을 설치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날은 불안한 마음에 급히 앱을 깔고, 회사 계정으로 인증을 받아 가입을 하고, 회사 게시판에 들어가 문제가 되는 글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 글에는 내가 발행한 브런치북의 링크가 걸려 있었다. 우리 회사 이야기 같은데 라며 무심하게 올려진 그 링크 아래로 달린 여러 댓글들은 다행히도 긍정적인 의견이 대다수라 한시름 놓았지만, 나는 불쾌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극도로 보수적인 이 조직은 아주 작은 것도 큰 문제가 되기 마련인데 그걸 모를 리 없는 사람들이 익명을 무기로 남 밥줄이야 어떻게 되건 말건 타인의 사생활을 까발린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곳에서 회사 이야기뿐 아니라 내 개인적인 상황이나 경험들을 털어놓았는데, 애초에 회사 사람들과 사적 교류를 반기지 않는 성향인 내게는 더 반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다행인 것은 내가 받은 인상은 나만 느낀 것은 아니었는지, 이런 글이 문제가 되느냐는, 타인 취미활동을 마음대로 공개해도 되냐는 몇몇 댓글을 보면서 조금 위안을 받기도 했다는 것이다.



너도 남들이 봐줬으면 하고 쓴 글 아냐?


이 섬뜩한 경험을 전하자 한 지인이 말했다. 주목받기 위해 쓴 글 아니냐고. 부정은 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나는 익명인 상황에서 회사 밖의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고 싶었다. 나는 회사 사람들이 친구 신청(?)을 하는 것이 불편해서 모든 SNS 계정을 없앤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내가 그다지 호감을 갖고 있지 않은 회사 사람들이 더군다나 ‘익명’으로 활동하는 커뮤니티에서 주목을 받고 싶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물론 공론장이라고 할 만한 곳이 딱히 없던 법인에서 블라인드라는 커뮤니티는 나름 순기능을 하고 있었다. 직급/직책/직종을 떠나 모두가 익명의 힘을 빌어 평등하게 발언할 권리가 있는 그 공간의 힘은 컸다. 어떤 사람들은 회사에 대한 건설적인 비판을 했고, 그 의견이 받아들여져 제도가 바뀌는 일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내가 걱정한 것은 이 커뮤니티가 동시에 법인의 좋지 못한 특성을 고스란히 닮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조직이 그렇듯 이곳에도 호사가가 아주 많다. 사람들은 핸드폰 뒤에 숨어 타인에 대해 더 쉽게 말을 하고, 특정인을 공개적으로 저격하고, 비방했으며 가끔 동료들을 통해 받는 캡처된 블라인드 글들은 정말 이런 글을 쓴 사람이 회사에서 점잖은 척 우리와 함께 일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원색적이기도 했다. 남초 사이트 여초 사이트의 천박함을 그대로 가져온 듯한 인상을 받는 다수의 글들과 그들의 태도를 보면서 눈살을 찌푸린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내 링크를 게시한 누군가의 무신경한 태도가 유감스럽기도 했고, 한동안 어디 불려 가지 않을까 마음을 졸이며 회사를 다녔다.





 

당시엔 연재를 그만두고, 글을 모두 비공개로 전환할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렇듯 꾸역꾸역 1년을 버텼다. 어느덧 구독을 해주시는 분들이 300명을 넘었고, 총 조회 수가 24만을 넘었다. 하루에 10만 명 조회를 기록한 날에는 ‘이러다 인기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닌지’를 걱정하며 행복한 상상과 망상을 하기도 했지만, 나는 아직도 처음 연재를 시작한 1년 전과 같이 스트레스를 한껏 받은 상태의, 그것을 건강하게 해소할 방법을 찾고 있는 일개 로펌 비서에 지나지 않는다.


인생의 큰 변화를 이끌지 못했지만, 가끔은 취업을 위해 정보가 필요한 분들에게 도움이 되면서, 이제는 전보다 가족과 친구들의 공감을 더 얻으면서, 내 직업이 아닌 가끔 작가님으로 불리면서 사회에 나와 더는 접하기 힘들었던 공모전 등 여러 기회를 마주하게 되면서 더 넓은 세상과 더 넓은 사람을 만난 것에 감사하고 있다. 그런 마음이기 때문에 한순간 불쾌했던 어떤 경험에 매몰되지 않은 당시의 나에게 대견하다 칭찬해 주고 싶다.


회사 생각이 싫어 연재를 게을리하는 지금이지만, 갈수록 더 좋은 생각과 글로 찾아 뵐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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