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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서 C Feb 26. 2020

코로나 시대의 출근

출근이 감사한 이유


2월의 마지막 화요일, 계절의 변화를 알리듯 오전 내내 장대비가 내렸다. 평소보다 출근길이 사나웠지만 차라리 이 비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쓸려가 버렸으면 좋겠다는 다소 억지스러운 바람으로 출근도장을 찍고 모니터를 켰다. 이맘때 봄비엔 이유 없이 설레곤 했는데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출근길이라니. 언제쯤 이 답답한 마스크를 벗어던질 수 있을까.


코로나19 사태가 갈수록 그 심각성을 더해간다. 확진자가 늘어간다는 보도에도 그러려니 하며 마스크가 무기인양 안일하게 일상을 지내던 나는, 지난주 대구지법에서 기일변경 통지가 날아오기 시작한 것을 기점으로 어쩐지 사태의 심각성을 더 크게 체감했다. 그리고 이번 주 들어 송달되는 전국 각 법원의 기일변경 통지를 보며 조금은 유난도 떨고 있다.


법원 정기 인사이동으로 재판부가 변경되고 있는 시기와 맞물려 기일 변경이 이루어지고 있는 탓에 의뢰인들은 짐짓 알만한 상황에도 그 사유를 다시금 확인하길 요청했다. 덕분에 최근 재판부와 더 많은 통화를 하게 되었다. 피곤한 기색의 실무관들로부터  예외 없이 ‘코로나 확산으로 인한 기일 변경이며, 우선 2주간 기일에 대해 변경을 하고 있지만, 이후 상황은 또 모른다’는 답변을 받아 보고를 올리며 2주 뒤엔 사태가 더 심각해져 있을 것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과연, 나는 이주 뒤에 모니터 앞에 앉아 있을 수 있을까.


전국 법원을 돌아다니며 재판에 출석하는 변호사들 그리고 법원에 문건을 제출하고 등사를 하러 다니는 송무팀만 할까 싶지만, 그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업무를 하는 다수의 법인 직원들은 몇 주간 너나 할 것 없이 불안함 속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체온 확인 후 출입할 수 있다는 법인이 세 들어 사는 건물 관리소 측 통보를 받고 의뢰인에게 내방 회의와 관련해 미리 출입이 불가할 수 있다는 양해를 구하고, 힘들게 준비한 세미나를 웹으로 대체하고 급기야 온갖 회의들을 잠정 보류하며 법인은 매우 조용하고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얼른 끝내버리고 싶은 사옥 이전마저 연기돼버린 상황에 곳곳에서 서로 다른 의미의 탄식이 들려오기도 했다.


하루는 출근길 바로 앞에서 체온이 높아 건물 출입이 제한된 사람을 목격했다. 사무실에 들어와 바로 손을 씻고 가글을 했다. 체온계를 직접 귀에 꽂아 체온을 측정하는 관리소 사정으로 더욱 불안했다. 하루 종일 귀에 신경이 몰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던 중 재택근무로 서류 발송이 지체되었다는 의뢰인 측 메일을 보고 내심 부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도 최소인원만 남기고 모두 재택근무를 했으면 좋으련만. 하지만 법인이 가장 바쁘다면 바쁠 시즌인 지금, 그리고 이사가 예정된 시기이기에 그것이 헛된 희망인 것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일부 매체에서는 재택근무와 유연근무제를 코로나로 인한 의외의 발견이라며 사태가 종결되더라도 이 대안적 근무형태가 유지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그리고 이 와중에 나는 어쩌다 보니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물론 법인 모두가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예비 차원의 권고였다. 해마다 편도염을 자주 앓아왔고, 급기야 부분절제까지 했건만 올해도 역시 이 계절엔 인후통이 찾아왔다. 한 한 달은 습관처럼 병원에서 약을 받아먹고 있었는데, 꽤 오랜 기간 열이 잡히지 않아 회사에 보고를 해둔 것이 이유가 되었다. 분명 코로나는 아닌 것 같은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자는 회사 방침에 한편으로 감사하기도 했다.


간혹 집에서 서면을 쓰고 업무를 보는 사람들을 보고 부럽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상상 속 그들이 여유 있는 아침을 맞이하고 회사 사람과 굳이 대면하지 않고도 원하는 시간에 자유롭게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엄청난 장점으로 보였으니 말이다. 때문에 나름 처음 경험해보는 재택근무에 철없이 전날 밤 조금 설레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당일은 어쩐지 집에서도 감시를 받는 느낌이라 썩 좋았다고는 못하겠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노트북을 점검하고 전산팀이 제공하는 외부용 업무 프로그램이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며 부산을 떨었다. 아침 뉴스를 켜 두고 노트북을 바라보며 창 밖을 바라보는데 집에 있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평소보다 더 딴짓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엉치뼈가 아프도록 소파에 앉아 노트북에 새로운 메일이 들어오는지만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 내가 영화채널이라도 틀어두면 연차를 삭감하겠다고 압박할 것만 같아 마냥 정말 지루하게 보냈다. 주말이면 내 맘대로 먹던 밥도 유난 떨며 12시 정각에 먹었으니 말 다한 것이다.


불안정하고 느린 시스템 탓에 몇 번이나 노트북을 끄고 다시 켜면서, 익숙하게 하던 일들을 하며 조금씩 제약을 느끼면서 오후엔 차라리 ‘출근하는 것이 낫겠다. 회사에 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왜 일과 생활의 공간 분리가 필요하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렇게 적응하느라 하루를 다 보내고 외부 업무용  프로그램을 끄고 나니 평소 퇴근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시스템이 더 안정적인 상황이 되기 전이라면 그냥 연차를 쓰고 푹 쉬는 게

나았겠다 싶었다.


그래도 이 시점에 급히 휴가를 써 이중으로 주목을 받고 싶지도 팀원들에게 더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정상출근이 목표가 되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정확한 체온 측정을 위해) 줄곧 먹었던 해열제도 재택근무 당일은 먹지 않았다. 다행히도 체온은 정상범위 안에 들었고 그렇게 인사팀에 상황을 보고하며 몇 년 만에 출근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하루를 마감했다. 예비적 조치였지만 재택근무까지 하게 되니 오히려 겁이 났던 것은 비밀 아닌 비밀이다. 누군가의 부재가 생사가 걸린 문제가 돼버릴 수 있다는 현실이, 그래도 출근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들게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쓰고 있는 것이 오히려 더 체온을 높이는 듯한 두꺼운 마스크로 중무장하고 내일도 또 일터로 향해야 한다. 잔뜩 날이 서 서로를 경계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대중교통을 타고, 유독 지치는 일상 탓에 더 건조하고 까칠한 동료들과 또 부대낄 것이다. 그래도 좋으니 모두 무사히 살아서, 부디 어서 상황이 진정되어 맨얼굴로 따뜻한 봄을 맞이할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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