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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서 C Jan 27. 2020

새해에는 부디 그만 작아져요

자존감을 잃어가는 동료들에게

 

신없는 연말을 지나, 새해를 맞이하고 이제 설 연휴가 끝나간다. 연휴가 끝나면 부서이동 지원을 받겠다는 공지가 있었기 때문인지, 연휴를 앞둔 날 조차도 동료들은 신나기보단 불안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안 하던 사담까지 나눠가며 비서로서의 그간의 고충과 쌓인 감정들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사람만 달리해서 같은 이야기를 듣는 것도 어쩐지 조금 짜증이 났기 때문에 사내 메신저를 꺼뒀지만, 평소엔 잘 울리지 않는, 비싼 시계 노릇만 하던 핸드폰이 동료들의 메시지로 한동안 꽤나 성가시게 울어댔다.




난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회사를 다니다 보면, 깜짝 놀랄 때가 있다. 같은 직급에 같은 직무를 담당하고 있지만, 어쩐지 이곳에 있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각지도 못한 능력을 가진 동료들을 볼 때가 있기 때문이다. 어떨 땐 그런 그들을 보며 이런 사람들과 나를 함께 채용해 준 회사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이런 동료들로부터 단어의 선택만 다를 뿐, 공통적인 고민을 듣고 있어 마음이 복잡하다.


그들은 말했다. ‘이 회사’를 다니기 때문에, ‘이 일’을 하고 있는 이유로 내가 너무 하찮아진 것 같다고. 또 대학 동기들이나 형제자매들이 사회에서 더 큰 역할을 하며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때마다 자신이 더욱 초라해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나 역시 비서라는 직함을 가졌다는 이유로 다짜고짜 사람을 깔보는 숱한 사람들을 접해왔고, 가끔 TV나 포털에 노출되는 대학 선후배의 모습이나 서점에서 찾아볼 수 있는 지인들의 도서를 보면서, 나도 나름 치열하게 살아온 것 같은데, 내 청춘의 결과물이 결국 남 수발이나 드는 직업을 갖게 된 것이구나 하고 자조할 때가 있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애잔한 정신승리라 할지라도 나는 해가 거듭할수록 그런 류의 생각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중이다.


이 무너진 자존감은 딱히 ‘이 회사’, ‘내 직업’ 탓만은 아니다. 그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결국 미생인 처지에 다른 직업을 가졌거나, 다른 회사에 다녔더라도 느꼈을 감정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회사 전문가 그룹을 비롯해 타 업계의 고소득 전문직에 종사하는 지인들조차도 ‘회사 때문에, 일 때문에, 클라이언트 때문에 힘들다. 죽겠다. 뒤처지는 느낌, 작아지는 느낌이 들어 힘들 때가 있다’ 라는 말을 곧잘 한다.


모든 문제를 시스템 탓으로 돌리는 것처럼 허무한 사고가  있을까 싶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론처럼 노동은 인간을 소외시키기 마련이다. 어찌 되었건 회사라는 조직에서 인간은 결국 도구에 불과하다. 그리고 기계의 부품이  쓰임과 중요성을 달리 하는 것처럼 노동에 질적 양적 차이가 존재하고, 그로 인해 개인에 대한 대우와 보상이 갈리는 것은 어쩔  없는 일인 것이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다. 결국 내가 받는  정도의 보상과, 내가 빠진 감정의 수렁은  곳을 택한  선택의 결과 것이다. 물론  동료들이 갈수록 의기소침해지는 것은 직함과 직급으로 인해 부당하고  감정적으로 서러운 일을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란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우리가 진심으로 사건의 결과를 걱정하고, 전문가를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그들을 대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회사가 나를 굽어 살피지 않는다고, 나를 서럽게 한다고 그만 슬퍼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말 참을  없다면 돌파구를 찾으려는 시도를 스스로 얼마나 했는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투정만 하기에는 나는 내가  것이 너무 없어 오히려 지금  수준으로 이렇게 경제활동을  기회를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때가 있으니 말이다.



이런 나지만, 아직도 ‘그런 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냐’며 이곳으로의 이직을 만류했던 지인들의 말이 생각날 때가 있다. 돌이켜보니 수능시험 날 1교시 언어영역을 망치고 주섬주섬 가방을 싸 시험장 밖으로 나가려던 나를 억지로 의자에 앉혀두고 감시했던 친구만큼이나 고마운 조언이었다. 그땐 온갖 정당화로 이직을 포장하며 ‘나 역시 오래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대답했었지만 이곳은 어느새 생에 가장 오랜 시간을 몸담은 조직이 되어버렸다. 게을러서, 의지가 약해서, 이제는 이런 물 경력으로 어디 갈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에 라는 말로 퇴사를 미루고 미루며, 선택은 내 몫이었으니 모두 내 탓이다를 주문처럼 외우는 지금이지만, 해가 갈수록 자존감을 잃어가는 동료들을 보며, 의기소침한 그 낯빛들을 마주하며 오히려 나는 이런 마음을 떨쳐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 처지인 주제에 나는 참 잘도 그들을 위로하며 결심을 다시 다지곤 한다. 억지 긍정 혹은 포기와 타협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소중한 내 시간을 비관으로 가득 채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른 내 쓰임을 도모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연휴를 즐기며, 간만에 옛 사진첩을 훑어보았다. 수습기간을 무사히 마치고 회사 앞에서 동기들과 찍었던 기념사진 속 우리의 얼굴은 지금보다는 더욱 생기 있고 반짝였던 것 같다. 단지 사진 속 우리가 지금보다 몇 년은 더 어리기 때문은 아닌 것 같아 또 마음이 아렸다. 부디 새해에는 내 사랑하는 동료들이 자신을 더 사랑하고 좀 덜 작아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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