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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휸 Aug 01. 2023

나의 첫사랑은 생활한복을 입었다 (1)

마음을 앓는 어린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저년차로서의 주된 당직 업무는 밤새 병동 콜을 받으며 응급실 환자들을 진료하는 것이었다. 환아와 보호자가 내원하면 인턴이 초진을 하고 필요시에 소아청소년과 당직의사에게 연락을 하는데, 사실 인턴의 초진 내용은 대부분 아주 기본적인 내용만 포함되는 경우가 많았다. [4세 남아, 복통으로 내원. 구토, 설사, 발열은 없음.] 약간의 긴장감과 함께 많은 경우의 수를 상상하며 응급실에 내려감과 동시에 아이의 병색을 확인하게 되는데,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다거나 뛰어다니면서 놀고 있을 경우 멈칫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들곤 했었다. 주호소와 관련하여 추가 문진이나 진찰에서 병적인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이 들면 ‘빠른’ 퇴원 및 수일 후 외래 내원으로 모두가 행복한 결론이 내려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일 후 교수님 외래에 다시 방문한 환아의 차트에는, 내가 처음 들은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주 보호자였던 환아 어머니가 최근 복직을 하면서 환아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함. 어린이집 적응을 하고 있는 중으로 등원할 때마다 배가 아프다고 하기 시작했고 어린이집을 가지 않는 휴일에는 증상 호소한 적 없음.] 나에게는 한마디 하지 않고 교수님 앞에서만 말씀해 주시다니……. 내가 부족했을 따름인데 묘한 섭섭함(?)과 함께 억울함마저 느껴졌더랬다. 하지만 다음부터 아이들의 변화와 그에 따른 심인성 원인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갓난아기가 배밀이를 하다 걸음마를 떼고 우유를 먹다 밥을 먹게 되고 첫 단체 생활을 하거나 동생을 맞아들이는 등 아이들이란 어떻게 보면 어른보다 더 커다란 생의 변화를 겪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초등학교 입학 직전 나 또한 큰 변화를 겪었는데 그중 하나가 ‘섬으로의 이사’였다. 1998년, 중학교 선생님이셨던 부모님은 함께 섬으로 발령을 받으셨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한 개씩만 있는 작은 섬의 초등학교 1학년 17명 중의 한 명으로 나는 첫 입학을 하게 되었다. 등원할 때마다 배가 아프다고 했던 그 어린이처럼, 나는 한동안 섬 생활에 적응을 못했었다. 이전에 살던 아파트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관사는 작고 아주 오래되었는데 오빠와 내가 자는 방에는 큰 냉장고가 윙윙거리고 있어 밤마다 잠을 설쳤으며, 건물 밖에 있는 무서운 푸세식 화장실을 써야 해서 잘 가던 화장실도 가기 힘들어했다. 무엇보다도 이전 동네에서의 단짝 친구가 너무 보고 싶어서 엄마 모르게 그 비싼 시외전화를 걸어 사실 나 다시 동네로 돌아왔다는, 이상한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지금 같으면 병원 진료감이지만, 그 작은 섬에 병원은 귀했고 나는 다행히 병원행을 면할 수 있었다.


또 한 번 다행스럽게도 나는 그 시기에 첫사랑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 가족과 같은 날 섬으로 이사를 온 초등학교 5학년 선생님 자녀였고, 나와 키가 비슷하고 아주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던 남자아이는 첫 만남에 무려 생활한복을 입은 채 내게 악수를 청했다. 아마 나는 그때부터 그 아이를 좋아했으리라 추측한다. 그리고 그 아이를 더 많이 좋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 역시 모든 면에서 점차 좋아지기 시작했다.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혀진다고 했던가, 더 이상 이전 동네 친구에게 시외 전화를 거는 일은 없었고 3년 뒤 우리는 미래를 약속하는 (?)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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