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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녀녕 Apr 18. 2024

밤산책, 이어폰 없이 걷는 효과

내가 예민한 걸까 예민하게 만든 걸까

[여름: 제3부]



나는 길을 걸을 때 모르는 타인과 나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짐을 느끼면 설명하기 어려운 불쾌감을 느끼곤 했었다. 이런 감정이 드는 것에 대해 단순히 나의 예민한 성격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리곤 했었지만 어느 날 밤산책을 다녀오고 나의 예민함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계절은 여름이었고 밤 산책을 좋아하는 나는 집 근처 공원으로 밤산책을 나갔다. 공원 입구에 다다랐을 때 평소처럼 음악을 들으며 걷기 위해 주머니를 뒤적였고 외출을 나서기 전 신발장 위에 이어폰을 올려두고 나왔음을 알아차렸다. 오늘만큼은 이어폰 없이 산책을 해야겠구나 생각하며 산책 길을 걷기 시작했다. 늦은 저녁시간이라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나온 사람들만 간간이 보일 뿐 매우 고요한 산책길이었다. 그래도 걷다 보면  조그마한 연못 주변에 개구리울음소리가 개굴개굴 들렸고 나의 발걸음 소리, 앞서가는 사람들의 발걸음과 잔잔한 바람소리를 들으며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평소보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차분해지는 걸 느꼈다. 평소와 똑같은 밤 산책인데 오늘은 유난히 기분 좋음을 느끼는 이유가 뭘까 생각했고 내 주머니에 이어폰이 없었음을 알게 되었다.


외출을 할 때면 핸드폰과 이어폰을 챙겨 나오는 습관이 있었다. 음악 듣는 걸 좋아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주변 소음을 차단하고자 함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행동이 일종에 외부와 선을 긋는 행위였다. 마치 스스로에 대한 보호막을 쳐두고 ”여기는 내 바운더리야. 넘어오지 마. “ 라며 털을 치켜세우는 모습과도 같았고 외출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면 더 쉽게 피로해지고 예민해졌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확실히 이어폰을 착용하지 않고 외출을 하는 날에는 스스로 덜 예민해지는 걸 느낀다. 바깥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내 주변 보호막을 걷어내고 상황을 맞이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이전과 같은 상황임에도 불쾌감은커녕 평온한 나를 마주하게 된다. 결국은 주변 소음을 차단하여 마음을 평온하게 하려고 하였으나 스스로를 더 예민하게 만드는 꼴이었다.

사람들은 마음을 평온하게 하기 위해 조용한 공간에서 눈을 감고 명상을 한다. 하지만 조용한 공간에 가만히 있는 걸 견디지 못하는 나에게 명상은 친해지기 어려운 활동이다. 그저 일상생활에서 이어폰 없이 걸어가는 일이나 조용한 공원에서 오롯이 혼자 걷기가 나만의 명상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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