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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녀녕 Apr 16. 2024

나 홀로 여행

혼술집

[여름: 제2부]


여행을 가야 할 때 어느샌가 누군가와 일정을 맞추고 간다는 게 피곤한 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혼자 여행을 가보기로 결정했고 그다지 서울과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속초로 여행지를 정하였다. 하지만 속초를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혼술집을 가기 위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행지 검색을 하다가 찾게 된 술집은 특히나 혼자 여행을 온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는 곳으로 조용히 술을 마시며 영화도 보고 책도 보는 낭만적인 공간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더운 날임에도 불구하고 해가 뉘엿뉘엿해지는 저녁에 숙소에서 20분이나 떨어진 술집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술집에 도착했을 때 다행히도 술집 안은 손님 한 명과 직원 분을 제외하고는 모든 자리가 비워져 있었다. 평일이기도 했고 문을 연지 얼마 안 된 시간이라 술집 안 분위기는 매우 고요했고 한산했다. 그 덕분에 내가 원하는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육회와 하이볼을 주문했다. 술상이 나올 동안 한쪽 벽면에 가득 채워진 사람들의 흔적들을 감상하였다. 각각의 사연들의 무게와 내용이 다르듯 포스티잇은 알록달록하고 크기도 제각기 달랐다.


언제 이별했을지 모르는 어떤 이의 이별 글, 일을 그만두고 새 출발을 다짐하기 위해 여행을 왔다는 글과 술집을 방문한 사람들의 행복을 기원하는 글들로 가득 차 있었다. 혼자서 천천히 술 한 모금 마시고 안주 한 입을 하며 사람들의 메모를 틈틈이 읽어 나갔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았던 두 개의 사연이 있다.

한 사연은 아픈 가족구성원의 병간호를 하고 있다는 글로 시작하였고 건강이 참 중요하다는 걸 절실하게 느꼈다는 말과 덧붙여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술집에서 이런 말을 남겨도 될지 모르겠지만 술을 너무 많이 드시지 마셔라 라는 말과 함께 건강을 챙기라는 당부의 글이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술을 마시고 있던 나는 술잔을 잠시 내려두었다가 괜스레 웃음을 짓고 그 글을 다시 한번 읽었다.

또 하나의 사연은 다른 누군가에도 말하지 못하였던 자신의 걱정거리를 적어 놓은 글이었다. 올해 회사로부터 권고사직을 받아노라며 곧 부모님의 정년 퇴임이 다가오고 있다는 걱정이 담긴 글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 가족에게 조차 말하지 못하였다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막막함을 토로하였고 메모 위로 꾹꾹 눌린 펜자국으로 그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 줄에는 지금 이 시기를 잘 이겨낼 거라는 스스로에 대한 다짐으로 글을 마무리하였다. 나는 술 한 모금을 넘기며 허공에 이 글쓴이의 안부를 물었고 언제 적었을지 모르지만 걱정이 해결되어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 적었을지 모르는 이들의 고민과 생각들을 읽으며 생각에 잠겼다. 남에게 터놓을 수 없는 이야기를 혼자 술 한 잔 하며 작은 포스트잇에 빼곡히 써 내려가는 마음은 어땠을까라고 말이다. 잠시 생각을 해보았지만 감히 가늠을 할 수 없어 고개를 저었고 자신들의 걱정거리, 힘듦을 적으면서도 다른 사람의 안부와 응원도 빼놓지 않은 글들을 보면서 위안을 얻고 마음 한켠이 따뜻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술집을 나서기 전 술과 안주를 비워내고 가방 안에 펜을 꺼내 들었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포스트잇 한 장을 가져와 어떤 메모를 남길지 고심했다. 이곳을 오기 전에 나는 나의 걱정거리를 적으려고 했다. 하지만 벽에 쓰인 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다양한 사연들을 보며 위로와 공감을 많이 얻어서였는지 나의 걱정거리를 적어내는 대신 다음에 이 술집을 방문할  다음 사람을 위한 응원과 행복을 기원하는 글을 적어 스탠드 조명 한 구석에 살포시 붙여 놓고 나왔다.

 해는 벌써 저물었고 어두운 길목을 걸으며 가로수길의 조명이 깜빡이는 걸 보았다.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졌다를 반복하는 것이 꼭 우리의 힘듦과 걱정 또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반복하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걷는 속초의 어느 여름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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