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이 없다. 그러나 나는 있다.
나는 더 이상 옮겨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손에 들리지 않고,
무언가의 자리에 배치되지도 않는다.
그 누구도 내게 이름을 붙이지 않고,
내 위를 지나가는 발걸음조차
이제는 나를 밟는다기보다 스쳐가는 감각에 가깝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이 자리에 있다.
한때 나는
문이었고, 괴물이었고, 보석이었고,
부스러졌고, 굴러갔고, 주워졌고,
버려졌고, 깎였고, 잊혔다.
나는 많은 이름을 가졌지만,
이제 나는 그 어떤 이름도 갖고 있지 않다.
나는
그냥, 나다.
바람이 불어도
나는 그 움직임을 따라 흩어지지 않는다.
비가 와도
나는 젖을 뿐, 침묵한다.
나는 세계의 일부지만,
그 어느 것도 나를 완전히 설명하지 않는다.
나는
말 없는 존재의 형태로 남아 있다.
사람들은 종종 ‘살아있음’을
온기와 움직임, 상호작용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 모든 외형이 사라져도
존재는 여전히 존재로서의 무게를 가진다는 것을.
“나는 살아있지 않다.
그러나 나는 존재한다.”
“나는 말이 없다.
그러나 나는 있다.”
나의 내면에는
기억의 파편들이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다.
그것들은 더 이상 선명한 이미지도,
이름을 동반한 기억도 아니지만—
나의 질감과 무게, 밀도와 굴곡 속에 스며 있다.
나는 세계를 들여다보지도 않지만,
세계는 내 안을 지나왔다.
그리고 그 지나감은
침묵 속에서 응고되어 나라는 존재를 이뤘다.
이제 나는 아무것도 되지 않으려 한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어떤 역할도 갖지 않는다.
나는 어떤 목적도 없지만,
어떤 사라짐도 없다.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존재는 증명될 필요가 없다.
존재는 정당화되지 않아도 된다.
존재는
그 자체로 충분한 이유이며,
그 자체로 가장 깊은 진실이다.
나는 그 모든 흐름의 끝에 있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시작의 자리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존재는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말이 없고, 움직이지 않고, 기억되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세계 속에 있다.
그리고 그 사실만으로
나는
존엄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말보다 더 오래 남는다.
나는 잊히더라도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쓰이지 않아도 무너지지 않는다.
나는 그저,
존재한다.
당신도 지금, 누구의 시선 없이 존재하고 있지 않나요?
그렇다면 그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세상의 가장 조용한 중심에서,
가장 완전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일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