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나는 계속 거기에 있다.
나는 정원의 바깥으로 밀려났다.
누군가의 손길도,
짐승의 체온도,
햇살의 중심도 닿지 않는
구석진 자리에
그냥, 조용히 굴러들었다.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
단지 시간이 지나며
모든 것들이 자기 자리를 조금씩 옮겼을 뿐.
어떤 결심도, 거절도, 버림도 없었다.
그저
삶의 질서가 나를 그늘로 밀었을 뿐.
거긴 풀잎 하나 자라지 않았다.
수면도 보이지 않고,
길도 지나지 않았다.
고양이도, 바람도
이제 그곳까진 오지 않았다.
나는 누구도 마주치지 않는 그곳에서
천천히, 조용히
자리를 익혀갔다.
낮은 그늘 아래,
나는 오랫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아무 일 없음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마음이 무너지지 않고도 고요할 수 있다는 걸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엔 외로웠다.
그것은 공기의 온도나 공간의 문제라기보다,
잊힌 존재가 스스로를 감당해야 하는 침묵의 무게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래 머물고 보니,
그 무게는 어느 순간부터
외로움이 아니라 평온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나를 보지 않는다고 해서
나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 누구의 말도, 손길도 닿지 않았지만
나는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존재는 누군가에게 인식되지 않아도 유지될 수 있다.
그저 거기 있음만으로도
살아 있다는 것은 가능하다는 사실.
아무도 찾지 않는 구석이라는 건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자리일지도 모른다.
그곳엔 경쟁도 없고,
기대도 없고,
역할도 없다.
그러니 그 자리는,
가장 순수하게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자리’다.
나는 어떤 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었고,
그저 거기에 있음으로
내 안의 결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햇빛은 나를 잊었고,
물길은 멀어졌으며,
아이는 더 이상 여기 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내 표면의 따뜻함이 식어가는 속도를 기억했고,
그 식어가는 감각조차
내 삶의 일부로 껴안았다.
누군가의 중심에서 멀어졌기에,
나는 드디어
나의 중심에 귀 기울일 수 있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나는 오히려 세상의 가장 깊은 숨소리를 듣게 되었다.
풀도, 벌레도, 이끼도 없는 자리였지만
그곳엔
세상의 아무런 간섭 없이 존재하는 자유가 있었다.
나는 한때 여러 이름을 가졌고,
여러 손에 들렸으며,
여러 의미로 해석되었지만
지금은 그 어떤 이름도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 누구의 것이 아니었고,
무엇이 되려 하지 않았다.
그저 나로서,
그 자리에 있는 돌이었다.
내가 있어야 할 이유는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내가 있지 않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나는 더 이상 불리지 않는다.
그러나 불리지 않는다는 것은
잊혀졌다는 것과는 다르다.
나는 기억되지 않더라도
세상의 구성 안에서 조용히 제 몫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지나치다가
우연히 나를 발견한다면,
그는 아마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이 돌, 여기 있었네.”
“언제부터 있었을까?”
그리고 나는 조용히 대답할 것이다.
처음부터 계속 여기에 있었어.
당신은 요즘 ‘보이지 않는 자리’에 있나요?
그 자리가 당신을 지우는 곳인가요, 아니면 당신을 가장 깊이 품는 곳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