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들은 관성으로 일합니다만

by 꼬르따도

팀 구성원은 40대 세 명, 30대 한 명, 20대 두 명으로 이뤄졌습니다. 이 중 20대 애들 역량이 제일 뛰어난 듯 해요. 머리가 빠릿빠릿. 개발실력도 뛰어나고.


일단 나이들면 개발 속도가 어린 애들에 못 미칩니다. 저는 30대 초반에 진즉에 개발에 손을 놨지만, 적어도 나는 새로운 개발 속도와 일하는 방법을 못따라 가는 것만큼은 틀림 없어요. 10년 전에 그걸 깨달았죠.


코드가 흐릿하게 보여서 안경을 벗고 화면에 얼굴을 바짝 붙여야 할 나이가 되면, 보통 PM을 합니다. 아니면 나와 함께 늙어가는 레거시 시스템을 맡거나. ERP 요런 시스템은 복잡하고 무거워서 변화가 느려요. 나이든 시스템은 역시나 나이든 사람들이 담당합니다. 이를테면, 관성으로 유지되는 시스템들입니다.


젊은 애들은 레퍼런스를 빠르게 찾고 신속하게 적용하며, 새로운 개발 언어를 배우는데 거리낌도 없습니다. 나이가 들면 노련하긴 해요. 개발 요구사항을 굉장히 보수적으로 분석합니다.


- 아 이건 반영 못합니다. 기술적으로 안됩니다.


사실 기술적으로 안되는게 어디 있을까요?SI는 일단 다 되는 영역이라고 뭐든 구현 가능한 영역이라고 선배님들께 배웠습니다만.


근데 협상을 유리하게 가져 가기 위해서는, 일단 안된다고 못을 박고 시작 해야 합니다. 아시나요? 못된 선생님의 한번의 친절이 얼마나 기억에 남는지. 저는 이를 평나한친 으로 부릅니다. 평소엔 나쁘지만 한 번 친절한,의 약어입니다.


고등학교때 수학 선생님이 굉장히 무서웠어요. 당구대를 가지고 다니시며 깜지 숙제를 다 안해오거나 나와서 풀라고 한 문제를 못 풀면 사정없이 발다닥을 때리셨죠. 별다른 말이 필요없습니다. '발바닥' 외마디 외침이면 학생들은 자동으로 의자에 앉아서 무방비의 발바닥을 선생님께 내어드렸습니다. 매타작이 시작되면 교실안은 쥐죽은 듯 고요합니다. 다음 차례의 친구들이 긴장해서 마른 침을 꿀꺽 넘기는 소리만 들립니다.


수능이 끝나고 당구대 선생님은 우리 반 친구들 한명 한명 수고했다고 악수를 하셨습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던 세상 다정하고 인자한 미소로 말이예요. 시간이 25년 이상 흘렀지만 동창회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그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모두에게 긍정적입니다. 참 교육자라면서.


이 예화는 삶을 관통하는 진리입니다. 개발 회의에서도 안된다 못한다 배째를 시전하다가 난이도가 낮거나 공수 소요가 작은 요건이 있으면 이건 됩니다, 라고 슬며시 얘기를 해보세요. 안돼-안돼-안돼-돼 이 정도의 리듬이 좋습니다. 25프로 비율로 가능성을 타진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좋은 사람, 능력자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참 쉽죠? 고등학교때 진짜 인자하신 중국어 선생님이 계셨어요. 살짝 살집이 있으시고 웃을 때 눈이 반달눈이 되었습니다. 나 착하다,고 얼굴에 그대로 써 있었어요. 그러다 언젠가 야간자율학습 감독을 하시다가 선생님이 폭발하셔서 창틀에 놓아둔 사전이나 책가지들을 학생들을 향해 던졌습니다. 가벼운 욕설도 포함해서요. 그 이후 그 선생님은 감정을 제어 못하고 폭력적이고 의중을 알 수 없는 나쁜 사람이 되었습니다. 늘 친절하다가 한 번의 일탈이 그분의 이미지를 만들었어요.


저는 그래서 회사에서 딱 중간을 지키려고 합니다. 여러번의 이직과 숱한 실패를 통해 지금은 나름 그 중간을 잘 지키고 있습니다. 이는 경험을 통해 몸에 체득한 거라 과거의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그래서 흔히들 지금 아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면서 후회하는 거겠죠.


아. 20대 친구들 얘기를 왜 꺼냈냐면 그들은 능력도 뛰어나고 남들보다 성과를 내지만 몸 값이 시니어보다 낮습니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늘 그 부분을 얘기해요.


대게 그런 이야기의 서두는, 솔직히로 시작합니다. 솔직히 책임님 아시잖아요? 제가 이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근데 회사는 나한테 왜 그래요? 내가 받는 대우는 왜 이렇죠? 저기 저 책임님보다 솔직히 제가 더 많이 일하고 제가 더 잘하잖아요. 맞잖아요? 저 기회만 있으면 이 회사 뜹니다. 내 일만 하고 남한테 피해 안주는 선에서만 일하고 빨리 퇴근할 꺼예요.


그러면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의 시간축을 오른쪽으로 쭈욱 당겨보자. 그러니까 15년 후를 생각해 볼 때, 내가 받는 연봉보다 네 연봉이 훨씬 높을꺼야. 지금 모아둔 돈이 얼마라며? 내 시간축을 반대로 왼쪽으로 땡겨서 니 나잇대에 나는 꼴랑 얼마 있었어. 그니까 지금의 기준으로 서로 비교하면 의미가 없지. 너의 미래는 훨씬 찬란할 거니까.


마지막 문장은 낯 부끄러워서 속으로만 삼켰습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요. 저는 회사생활에 우여곡절도 많았고 시행착오도 많았고 지금 뭐 그렇다할 직함도 없고 그렇다고 남 부러울 만한 재산도 없고. 딱 내 친구들처럼 삽니다. 누구랑 비교하면 모자라지만 누구랑 비교하면 더 나을 수도 있어요. 돈으로만 판단한다면 말이죠.


비교해서 불행했습니다. 근데 20대 애들에게 이 꼰대 같은 말을 하는 순간, 깨달았습니다. 비교의 기준이 잘못됐다는 걸. 나는 10년 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했어야 해요.


김보성이 의리 외치면서 했을 법한 말입니다.


나는 어제의 나와 싸운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만큼 흔들리지 않습니다. 시니어들은 관성으로 일하거든요. 이건 개발 뿐 아니라 삶의 태도에서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근데 중요한 건 어렸을땐 몰라요. 사실 저도 아직 모릅니다. 저는 이제 마흔다섯 꼬꼬마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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