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복없는 회사생활은 큰 축복

by 꼬르따도

금요일마다 글을 쓰는 일이 쉽지 않네요. 저는 기복없는 회사생활만큼 샐러리맨에게 축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은 제가 기복이 많은 재질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번주는 컨디션 난조로 업무 이외 다른 일을 할 엄두를 못냈어요. 가끔 생각이 너무 많아 뇌에 부하가 걸리는데 이번주가 그랬습니다. 그럴 땐 쉬어야죠 별 수 있나요.


오늘은 제 생일입니다. 아침에 달리기를 마치고 평소 가보고 싶던 비건 카페에 와서 식사를 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비건 샌드위치를 먹으려다 베이글을 시켰어요. 처음이니 친숙한 메뉴를 시켜야겠죠. 네이버 추천 메뉴를 보려다가 멈췄습니다.


이런 기복 많은 재질이 된 건 아마 30년 전 학교폭력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뜬금없는 고백입니다. 30년이나 지났지만 그 피해는 여전히 제 몸과 정신 어딘가에 깊숙이 새겨져 저를 갉아먹고 있었는 듯 합니다. 부모님께 SOS 신호를 보냈어도 큰 도움을 주시지는 않았어요. 왜케 부모님께서 제게 무심했나 모르겠어요. 20대엔 그런 부모님이 원망 스럽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니예요.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지만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이 앞뒤가 안맞는 말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하지만 가끔, 내가 살아가면서 내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움츠러드는 순간이 오면 진짜 진짜 안타까운 마음이 일어요. 한 발을 내딛고 크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복이 없어야 하고 나 뿐 아니라 남들에게 신뢰를 줘야 하는데 번번히 잘나가다가 멈추고 맙니다. 마흔네번째 생일을 맞아 뒤돌아보니 그렇습니다. 대입 입시나 대학 생활 뿐 아니라 군대생활, 청춘의 시기, 사회 생활 뭐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했어요. 제대로 못했지만 어쨌든 해냈죠. 그 부분은 자랑할 만 합니다.


학교 폭력의 시기엔, 평일 하교 이후 뿐 아니라, 토요일 밤 중고등부 교회 모임에 가면 걔가 있었습니다. 안가면 그만인데 저는 신앙심에 교회에 갔어요. 신앙심이 아니라 잘못된 신앙관이 맞는 말이겠지만. 가서 맞기도 하고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에 대한 신뢰심도 많이 져버렸어요. 저를 지켜주시는 분이 아니더라구요.


시간이 꽤 지났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저는 저의 기복많은 삶을 하나님께 의탁합니다. 그렇게 하기까지 많은 어려움과 기복이 있었지만ㅎㅎ 하나님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부족하지만 이게 제 신앙고백입니다.


이번 주에 아내가 사이코패스같은 회사 팀장 얘기를 하면서 눈물을 보였어요. 하나님은 악인을 왜 그냥 두시고 방관하시냐면서.


마침 이번 주 큐티 주제가 신정론이었습니다. 시편 기자가 아내와 똑같은 질문을 하나님께 합니다. 악인들은 하나님이 어디계시냐면서 놀리기까지 합니다. 저자는 그 말에 혹하다가다고 마음을 고쳐 먹습니다. 그리고 깨닫는 건 성전에 들어갈때 악인의 결말에 대해 보게 됩니다. 하나님 임재 가운데 있을 때 더 이상 비교하지 않고 평안을 얻습니다.


해설을 보고 묵상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악인을 방관하지 않고 유기합니다. 이 차이는 큽니다. 유기는 나쁜 일을 하는 걸 알지만 개입하지 않고 낭떠러지에 이르도록 버려둔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살면서 받은 고통이나 고난은 어쩌면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개입한 순간입니다. 그래서 엇나가지 않고 나름 바른 길에 서있는지도 모릅니다.


유기해서 낭떠러지에 서 있는 순간은 이미 늦습니다. 되돌릴 시간도 없고 뒤로 돌아갈 힘도 없습니다.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께 아뢸 때 우리는 남들에 대한 질투나 악인에 대한 판단을 멈출 수 있습니다. 그 영역은 사람의 영역이 아닙니다.


기도하고 멈춘다.

그리고 잊는다.


저는 저의 기복많은 삶을 신앙과 달리기로 단단하게 붙들어두기로 다짐합니다. 과거가 나를 옭아메고 마음 속 분주함이 나를 잡아먹지 못하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달리기를 합니다.


그리고 이제 아침 식사를 마쳤습니다. 집에 돌아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제 생일을 즐겁게 보낼 참입니다.


감사와 평안이 마음 속에 차오릅니다.


앞으로도 삶에 기복이 있겠지만 그 어려움은 바울의 고백처럼 제게 축복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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