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은 하기 싫구요 그냥 이대로 살래요

by 꼬르따도

오늘은 광복절입니다. 휴일 전날이면 다음날 뭘 해야지 같은 그럴 듯한 계획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 아침에 러닝을 나갈 참이었어요. 광복절이니 기념으로 8.15km 뛰어야겠다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휴일 전날 밤엔 여유를 만끽하겠다면서, 항상 유튜브나 넷플릭스 한 편만 봐야지 하다가 종내는 새벽 2시까지 보고 맙니다. 그리고 다음날 못 일어나요.


사실 어린애 둘 있는 집이면 아침이 전쟁입니다. 얘들아 빨리 일어나라 세수해라 밥 먹어라 옷 입어라 등 등. 아내는 휴일인데도 잔뜩 약이 오릅니다. 평일 오전의 관성이 휴일에도 이어집니다. 좀 참는 듯 싶더니 금세 폭발하고 맙니다. 저도 한 몫하죠. 휴일인데 그렇게 악다구니를 쓰면 또 어떡하냐고. 여유 좀 갖자고.


전날 늦게 잔 덕에 어슬렁어슬렁 일어나 집 안일에 소극적입니다. 그럼 아내에게 대항한 댓가로 더 큰 뭇매를 맞습니다. 일찍일어나랬지? 어제 몇 시에 잔거야?


근데 그거 아시나요? 일찍 일어나 아침 운동하고 오면 더 빠릿빠릿하고 오전이 시간이 좀 더 많게 느껴집니다. 만약 전날 일찍자고 새벽에 8.15킬로 뛰고 왔으면 아이들 일어나기 전에 식사 준비라든지 집안 청소 라든지 싸악 해놨을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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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이 아프셔서 휴직에 들어갑니다. 차상위자인 제가 이제 팀장 대행이라기 보단, 결재 대행을 맡았습니다. 팀장 대행이라면 팀장 회의도 들어가야 하고 팀장 수당도 받아야 하는데 그럴 명분이 없으므로 결재 대행이라는 말이 더 정확한 듯 합니다.


결재 대행을 하려니 자질구레 머리 아픈 일들이 제법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재택 승인이나 휴가 승인을 센터장님께 결재를 받아야 하는 것들 같은. 제가 그 상황이 아니어서 이해 못하던 일들을 팀장에게만 공유되는 각종 자료들을 받고 업무 처리를 해야 할 상황에 되니, 팀장의 무게감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요새 MZ들은 굳이 힘든 팀장 역할 안하려고 하죠. 그 돈 더 받고 스트레스 받느니 안하고 만다,는 마음이겠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81년생으로 MZ의 꼬리를 잡고 있습니다. 마흔다섯 MZ라 그 용어를 쓰기 조금 민망하긴 한데, 제가 MZ 마음 잘 압니다.


어쨌든 더 마음을 다잡게 됩니다. 일 키우지 말고 딱 내가 처리 가능한 수준을 유지하자. 인원 충원하지 않고 알잘딱깔센 하자. 굳이굳이 팀장을 맡을 일 만들지 말자. 위에 사람 눈에 띄지 말고 잘 숨어 다니자.


그럼 그렇게 팀장직이나 파트장직을 피하고 업무 범위도 넓히지 않으면 나름 에너지가 남을테죠. 그 에너지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제게 숙제입니다. 가만히 누워서 시간만 죽이는 그런 것들은 싫어요. 지금까지 너무 많은 시간들을 허비했습니다.


요새 폭간트 채널 자주 보는데, 그 양반이 그렇게 말하더라구요. 회사 일은 결국 남을 위한 일이고 내게 남는 것은 없다고. 유튜브 운영이 훨씬 피곤하지만 이 건 내꺼기 때문에 더 재미있다고. 그래서 그 분은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저는 그만한 용기는 없습니다. 그만한 재능도 없구요. 그래서 나를 위해 남겨 놓을 수 있는 자산이 뭘까 고민하다 논문 쓰기, 글쓰기를 선택했습니다.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꾸준하기가 제일 힘든 일이고, 자기 검열도 힘든 일입니다만. 지금은 어느 정도 루틴이 되어서 힘이 많이 들지는 않습니다.


희대의 졸작, 직장인의 딴짓 시리즈를 엮어 전자책을 만들고 전자책 수익금으로 종이책 12권을 만들었습니다. 제주도에 있는 친구에게 책 한권을 보냈더니, 너무 잘 읽었다며 계속 쓰라는 격려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솔직하게 속내를 잘 표현한 것도 용기있다는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본인은 그렇게 못하겠다면서요.


예전에는 내 치부를 드러내는 게 부끄럽고 남사스럽고 막 그랬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일단 쓰자, 일단 해보자 생각합니다. 요새 MZ들은 솔직하게 건강하게 자기 마음을 잘 표현하더라구요. 저도 MZ라니깐요. 남들 눈치 안 볼꺼예요 이제.


왜냐면 그렇게 남들 신경쓰고 이 핑계 저 핑계 대다 시작도 못한 일들이 한 트럭이고 어영부영 떠내려간 시간이 폭우에 불어난 저 한강물입니다.



비가 와서 잠시 정자로 피했는데 이제 해가 쨍합니다.


배도 꺼졌겠다 이제 좀 뛰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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