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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무직일기 02화

취준은 끝없는 자기반성의 과정

반성하다가 지구 내핵 들어갈 지경

by 우연우

아. 오늘은 에너지가 상당히 고갈된 느낌입니다.

실은, 제 나름대로 데드라인을 정했어요. 이번달까지만 하고, 재취업이 더 이상 안 된다면, 백업플랜을 가동하기로 말이죠.

근데 뭐, 백업플랜대로 가야할 것 같은 진한 느낌이 들어서 좀 피로하고, 그런 기분입니다.


오늘도 면접이 있어요. 언제는 없었나 싶지만 늘 그래요.

그 회사에 대해 알아보고, 또 내 답변을 검토하고, 다시 작성했던 이력서도 살펴봅니다.

심지어 오늘은 영어 면접이라 더 긴장되네요. 지금까지 여러번 면접을 봤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면접은 처음이에요. 글로벌 회사이고, HR이 국외에 있어서, 화상으로 면접을 볼거예요.


예전에 그런 적이 있어요. 재취업 준비 시작 후 처음으로 참석했던 면접이었죠.

나름대로 모든 준비를 다 해서 갔다고 생각했는데, 터무니없이 부족했어요.

엉뚱한 답변을 하기도 하고, 또 모기만한 목소리로 웅얼거렸죠.


화룡점정은 그래요. 그 질문이었어요.

"영어 실력이 어느 정도 된다고 생각하세요?"

라는 말에, "중급 정도 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어요.

곧이어 "본인이 했던 업무를 영어로 설명해보세요." 라고 물어보더군요.


아....

저는 거기서 한 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거기서 그 질문이 들어올 거라고는 상상치도 못했으니까요.

전혀 준비하지 않았으니까요.

면접이 끝난 후, 회사를 나와서 아무데나 걸터앉아 멍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봤어요.

그때 솔직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어요.

그냥 멘탈이 터졌다는 게 솔직한 심경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다리가 너무 아파서, 근처 카페에 갔어요. 면접을 마치고도 이른 오전이었거든요.

근처 카페에 앉아서 또 지나가는, 혹은 커피를 주문해서 마시는 근처 오피스의 회사원들을 바라보았죠.


저 사람들은 직업이 있는데, 나는 왜 없을까?

나는 왜 거기서 그랬을까?

끝없는 자기 반성을 하게 되더라고요.


내가 아까 거기서 그 답변을 하지 말고, 다르게 답했다면.

좀 더 자신감있게 말했다면.

이미 끝난 일인데 끝없이 곱씹게 되더라고요.


제가 멍하니 앉아있다가 보니, 점심시간이 된 듯 했어요. 점심을 먹고 근처 직장인들이 들어와서 이야기를 나누며 카페에 앉아 있더군요. 그 사람들과 저 사이에 아주 두꺼운 벽이 쳐진 것 같았어요.

물론 저도 그런 시절이 있었거든요.

카페에 직원들과 같이 둘러 앉아서 이런 저런 얘기를 했던 시절이요.


근데, 그날은, 그날따라 더욱 그게 눈에 박히더라고요.


아.

제가 지금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요. 별 거 없어요.


그냥 영어면접 준비하기가 너무 귀찮다. 이 뜻입니다.

매번 그렇지만, 시험 앞두고 그러잖아요. 중요한 시험 앞두고 하는 딴짓이 세상 가장 재미있는 거.


뭐. 그랬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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