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늙을 줄 알았어, 나도.
근데 아니야, 해마다 달라.
숨이 차고 힘이 들어. 그게 현실이야.
JTBC <엄마, 단 둘이 여행 갈래?> 중에서
사라져 다하는 순간, 사라질 소 다할 멸 消滅.
내 곁, 소중한 이들의 그 시간들을 덤덤하게 보냈던 탓일까.
쉽게 떠날 수 있던 설렘은, 어느새 두려움으로 덮여있었고 망설임도 길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마음을 쓰느라 영혼은 매일 바쁘고 바빠 못 쓸 정도였다.
살기 위해 손가락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그 무엇이 다가오든 나를 탓하는 게 아니라 나의 손가락에게 잘못을 묻겠다며,
어느 흔해빠진 주말 새벽녘, 제법 그럴 싸한 일을 저질렀다. 그 기분, 아주 오랜만이었다.
독일 파사우 지역에 위치한 캠핑카 업체 모습(정보는 천천히 연재글에서 나타날 예정)
결제가 주는 용기란 게 있다.
어마어마한 돈을 당기고 나면 어쨌든 수습은 해야하니,
그 방향으로 어쩔 수 없이 나아가게 되는 원동력쯤 되려나.
그게 값을 치르는 지불에서 비롯되기도 하니,
나는 그것을 '지불력'이라고 칭할까 한다.
뭇사람들은 평생 용기가 나지 않는 우리에게
이런 저런 수식어를 붙여 어깨를 토닥거리곤 한다.
하지만 어쩌나.
그저 난 다 필요없고,
돈 지르면 알아서 떠밀려지는 강력함이 제일 먹혔다.
지금껏 내 스스로에게.
이걸 무슨 자랑이라고.
결코 자주 쓸 수 없는
단순하지만 가장 위험한 그 방법을
늘 가슴 속 사표 한 장 품듯 고이 품었다고 생각했는데.
뭔가에 단단히 홀린 그날,
손가락의 한 세포가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캠핑카로 첫 주행을 한 파사우를 벗어나던 흐렸던 그날
덕분에 나는 무려 한 달 정도 되는 유럽 캠핑카,
캠퍼밴 여행을 떠나는 자가 되었다.
그것도 최성수기 7,8월에 말이다.
만만치 않은 금액이었다.
뭐, 사람에 따라 다른 거겠지만.
비행기와 캠핑카라고 하는 이동수단에만 대략 800만원(2인)이 들었다.
100만원 가량 하는 항공권을 겨우 잡았으니
나머진 고스란히 캠퍼밴 렌터카에 들어간 셈이다.
그럼 여기서 다들,
30일을 나눗셈도 해보았을 듯한데,
하루에 30만원이 안 되는 유럽 숙박과 이동수단 비용이 된다.
물론, 천정부지로 오른 기름값은 별도니 하루 30만원(2인)으로 잡아보면 되려나.
간도 컸다.
이제야 말하지만, 대충 정말 대애충.
휙 알아본 바로 캠핑카 렌탈은 사실,
거의 뭐 반년 앞서 알아보고 찾아봤다는
의지의 한국인 유전자 탑재한 분들이 꽤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 큰 금액을 무이자할부도 안 되는 터라
신용카드로 결제해도 다음달에 전액 나갈 그 돈을,
여행일 반년 앞서 낸다는 것부터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다녀오고 나서 돌이켜보면
돈도 돈이지만 가장 큰 이유인 즉슨
조건에 맞는 스펙의 차를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용했던 캠핑카 렌탈 플랫폼, freeway camper 홈페이지 모습 ⓒfreeway-camper.com
그럼에도 그 분위기를 대강 감지한 나의 AI 손가락 센서는,
'발견하면 바로 걸어놔야 하나보다' 요런 '바로 바이러스'에 걸려,
이것저것 발품팔 생각 별로 안 하고 덜컥 결제를 해버렸다.
불안한 전자상거래 업체 시대 속에서,
이를 권장해야 하나 싶긴 한데
리스크를 안고 시작해야 하는 건 현재로선 도리가 없는 것 같다.
그 와중에도 돈 좀 아껴보겠다고
갑자기 해외 수수료 무료인 신용카드를 긴급하게 발급받아 지불한 건,
그간의 여행 에디터 짬이 만들어낸 인생 절약 노하우라
거창하게 방점을 찍고싶은 관종의 씨앗임이 틀림없다.
참고로 이 영역은 따로 연재를 하려 한다.
Campervan 600 - VW Grand California for 2
오늘은 캠핑카 렌트를 할 때 고려했던
나만의 기준을 간단하게 알아보려고 한다.
먼저 1. 수동 또는 자동기어 여부가 가장 컸다.
남편은 수동 운전면허가 있지만 거의 경험이 없고
나 또한 자동만 가능한 상황이기에
첫 유럽 캠퍼밴 여행 시 모험을 하고싶진 않았다.
그런데, 유럽 자동기어 캠퍼밴을 찾는 건 쉽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여러 사이트를 전전했으나 그 안에서도
불안하지 않을 만한 회사를 검토하는 것도 어려웠다.
유럽 캠핑카 여행 시 고려하게 될 렌탈 업체 리스트는
천천히 풀어볼 예정이다.
다음으로, 2. 캠핑카 내 화장실 여부도 중요했다.
캠핑장에서 묵을 수 없을 때 이용할 화장실은
유료 화장실이 많은 유럽에서 더욱 필요했다.
우리 둘은 상당히 예민한 스타일이며,
반드시 씻고 자야만 하는 데다가
장트러블도 종종 있는 일인 사람들이니 더욱 그랬다.
끝으로, 3. 나름 최신 모델 캠핑카를 고르고 싶었다.
너무 오래된 기종을 만나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관리가 잘 되는 업체를 만나고 싶었다.
freeway camper 같은 경우는
한 개인이 하나의 캠핑카를 업체에 의탁해 공유하기보단,
우리가 흔히 주변에서 보는 중고차 판매하는 회사가
자신의 차량을 올리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수령하는 장소가 그 회사 주소로 나오는데,
이를 구글에서 검색하면 어떤 업체인지 리뷰를 통해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 분위기를 살펴볼 수 있었다.
지불력이 일으킨 바람을 어떻게든 정리하려다보니
첫 이야기의 속도가 빨라지긴 했지만,
사실 내가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건
느리고 게을러터졌던 나의 감정에 대한 속내였다.
내가 가진 유일한 장점이라 여겼던 게 있었다.
언제든 가볍게 떠날 줄 알았던 대차고 꿋꿋한 여행의 걸음이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 하나둘 생의 운명을 받아들이며 사라지다보니,
적어도 그 순간에 함께하지 못하는 일은 만들어선 안 되겠다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그렇게 나는 현실에 얌전히 발을 대고 있었고 잠시라도 숨을 트이러 떠난 곳들도
어느 정도는 빠르게 돌아올 수 있는 나라들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 장소들은 나름 어렵지 않았고 수월했으며 잠깐의 재미를 주었다.
하지만 뭔가 그리워지는 모습은 분명 여전히 내 앞에 존재했고
어렴풋했지만 그 그림 안에는,
고되지만 정면으로 맞서며 싱긋거리는 내가 있었다.
다만, 그 조건에는 오로지 나만을 위한 긴 시간이 있어야만 했다.
주변이라는 곳에 나라는 인간이 너무 스며 들어가고 있던 건 아닐까.
너무 온순하게 세월이라는 걸 한껏 섭취하다보니
내가 너무 무거워져버린 건 아닐까.
무엇이든 물 흐르듯 공기가 스치듯 떠나보낼 줄 알아야 하는데,
그 모든 것들을 잘 흘려보내지 못한 나는
어느새 고민의 늪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서 지불력에게 기댄 이 간 큰 짓을
무엇이라도 되는 것마냥 이곳에 남기기로 했다.
이래도 정말 유럽 캠핑카 여행을 해도 되는 것인지,
차츰 하나씩 풀어내는 이곳의 기록을 함께하면서
함께 공유하고 속닥거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