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우 Mar 04. 2024

매일 기록하는 진짜 이유

요즘 처음으로 육아에세이 출간을 준비하며, 지나간 글들을 읽어보고 있다. 글들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육아에 대한 이야기들을 글로 남겨놓기를 정말 잘했다는 것이다. 당시에만 하더라도, 너무 생생한 현재다보니 당연히 잊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보니 어느덧 낯설어진 이야기들이 적지 않다. 기록해두지 않았더라면 사라졌을 나날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얼마 전, 북토크에서 '매일 글쓰는 원동력'이 어디서 오는지 질문한 분이 있었다. 그 때 내가 가장 먼저 했던 대답도 '기억하고 싶어서'였다. 오늘의 일들은 내일이 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달만 지나도 잊힌 일들이 된다. 연말이 되면 1년이 다들 훌쩍 지나갔다고들 하지만, 가령, 1년 전 한 달 중 며칠이나 기억나는지 물어보면, 기억나는 날이 며칠이 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기억은 사라진다.


가끔 나는 아이가 아직 자그맣던, 그래서 내 품에 쏙 들어오던, 내가 양반다리를 하면 그 위에 강아지처럼 올려두고 재울 수 있던 시절을 애써 기억해보려 애쓴다. 그러나 그 때의 느낌도, 냄새도, 촉감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생각나긴 하지만, 그때의 내가 될 수는 없다. 그때의 나는 사라졌고, 그때의 아이도 떠나갔다. 그러나 묘하게도, 글 속에는 그때의 내가, 우리가 담겨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글쓰기라는 게 마음을 담는 행위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기계의 힘을 빌려 이미지를 남기는 일이 아니라, 정말 나의 눈으로 보고, 나의 코로 냄새맡고, 나의 살로 만졌던 그 감각을 마음에 온전히 담아내어 다시 언어로 옮겨두는 순간, 그것은 내 마음의 비교적 가장 온전한 박제가 된다고 느끼곤 한다. 그래서 나는 매일 글을 쓴다. 무슨 엄청난 성실함 때문이 아니라, 잊기 싫은 아쉬움과 절박함, 시간의 흐름에 대한 강박 때문에 기록을 한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나면, 몇 달 지나면 마치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디테일을 잊어버린다. 그렇기에 계속 글로 남겨두려 한다. 뉴스레터 '세상의 모든 서재'에는 그렇게 내가 좋아했던 책들의 기록을 남겨둔다. 요즘에는 다른 뉴스레터 '롱블랙'에 서평을 연재하면서 잊어버렸을지 모를 책들의 디테일을 곱씹기도 한다. 영화 리뷰를 꼬박꼬박 남기는 이유도 그래서다. 변호사 일을 하며 찾아보고 활용한 법리나 판례도 블로그에 꾸준히 스크랩하기도 한다.


잊지 않아서 무얼 할 것이냐, 죽을 때 들고 갈 것이냐, 그것도 일종의 집착이 아니냐, 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이것은 집착이 맞다. 나는 생에 묶여 있는 중생이고, 살아 있는 동안의 나의 기억, 나와 아쉬움을 나눈 사람들, 내가 사랑하고 간직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집착한다. 어차피 모든 게 허무한 걸 알지만, 그래도 그 집착이 삶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봄이 올 때, 여우에게 잡혀 먹힐지 몰라도 도토리를 모으는 다람쥐처럼, 나는 삶을 모은다. 삶의 마지막까지,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기억하고 싶어서, 오늘도 글을 쓴다.

이전 06화 내가 버린 10개의 블로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