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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Sep 30. 2022

사람들이 글쓰기에 간절한 이유



삼성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최인아 책방에서 책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북라이브 겸 글쓰기 강의를 했다. 신청한 사람들이 1000명이 넘어서, 삼성 내에서는 역대 최대 규모의 강연이었다고 한다. 요즘 사람들이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는 건 느끼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많은 관심이 있을 줄은 몰랐다. 수많은 사람들이 간절할 정도로 글을 쓰고 싶어하는 시대라니, 아직도 잘 믿기지는 않는다. 

기업 강연은 대개 임직원들을 강제로 앉혀놓고 하는 의무 교육 같은 것이 많지만, 이번 강의는 다들 자발적으로 신청한 모양이었다. 그러다 보니, 강의 내용도 제법 '내 멋대로' 할 수 있었다. 기업 내에서 보고서 잘쓰는 법, 비즈니스 에티켓 같은 것이 아니라 그냥 글쓰기, 그저 글쓰는 삶에 관해 이야기했다. 강의가 끝나고는 다가와 다소 어렵거나 힘겨운 개인적인 사연을 전해준 분들도 있었는데, 그때 무언가 알 것 같다고 느꼈다. 

그러니까, 이 글쓰기에 대한 열광에는 몇 가지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부업, N잡, 부캐의 관점에서 글쓰기에 관심 갖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보다 더 내밀한 이유들이 있는 것 같았다. 외로움, 소외감, 박탈감, 삶이 무언가 갑갑한 느낌, 이를테면 '해방'되고 싶은 마음, 해결되지 못함, 약간 엉망진창인 느낌, 자기 자신을 가눌 수 없다는 느낌, 잘 살고 있는지 불안하고 초조한 기분, 이런 것들이 글쓰기에 대한 관심으로 '직결'되는 면들이 있어 보였다. 

다시 말해, 글쓰기란, 우리 시대가 저질러놓은 어떤 어지러움들이 모여 찾아 들어갈 수 있는 해방구나 탈출구처럼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건 아닐까?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인물들은 모여서 '일지'를 쓴다. 왜 그런이야기가 그토록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을까?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것이다. 들을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너무 분리되었고, 각자도생하게 되었다. 사람들 만나서 나누는 이야기라고는, 누가 더 좋은 아파트에 사나, 누가 주식으로 돈 많이 벌었나, 누가 더 명품 많이 갖고 있나, 누가 더 좋은 곳에 여행 갔나 정도 밖에 없다. 진실한 대화들이 멸종해가면서, 남은 건 인스타그래머블한 자기 전시와 비교, 박탈감 밖에 없는 것이다. 그 순간, 사람들은 자기 마음을 털어놓을 백지를 찾는 것이다. 

사실, 그런 점에서 글을 읽고 쓰는 일이란, 그 누군가를 찾아나서는 여정이며, 서로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고 이야기 나누는 일이고, 내 안에 억눌러 왔거나 감춰오기만 했던 자기 자신을 드디어 안아주는 일이기도 하다. 서로의 글을 읽어주는 것으로, 그렇게 서로를 포옹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글쓰기에 진심인 시대란, 사실 진짜 마음을 찾는 시대가 아닐까 싶다. 

강의가 끝나고 나서는, 몇 십권 정도의 책에 사인을 했다. 나는 다량의 증정 도서를 사인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사인을 할 때마다 똑같은 멘트를 쓰지 않으려 애를 쓴다. 로봇처럼 똑같은 문장만 써내는 건, 어쩐지 죄책감이 드는 것이다. 그건 진심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것만 같아서, 언제나 사인을 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한다. 그 순간의 진심 한 줄만큼은 전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 마음을 주고받으며 하루 저녁을 보낼 수 있어, 참으로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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