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스무살 때부터 썼던 10개쯤 되는 블로그들이 있다. 네이버에만 몇 개가 있고, 티스토리, 이글루스, 브런치 등 계속해서 계정을 바꿔가며 글을 썼는데, 대부분은 폐쇄되어 있다. 그랬던 이유는 어느 순간이면 내가 너무 많은 이야기를 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내 안에 있는 솔직한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토해내다 보니, 나의 온갖 감정이나 자아, 욕망에 대해 너무 많이 털어놓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그런 일이 필요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기준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디까지가 나의 진짜 욕망인지, 어디부터가 허위의식이나 허영인지, 매번 치열하게 탐구하며 내 안을 헤집어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지금보면 쓰지 않을 이야기들이 가감없이 담겨 있기도 했다. 그런 글들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블로그를 닫아 버리고 새 계정을 만들곤 했던 것이다.
그렇게 일종의 자아 탐구 과정, 내 안의 나를 파헤치고 견뎌내던 방식, 무엇을 쓰고 쓰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기준과 선, 같은 것들을 십여년쯤 고민하며 거친 뒤에야 나는 그 모든 걸 '닫아'버리고, 조금은 안정된 자아를 만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 이전까지 사실상 익명으로 살아왔다면, 대략 서른쯤부터는 이제 안정된 자아를 구축하면서, 나름대로의 글쓰기를 실현하게 된 셈이다.
그러니까 어찌 보면, 내게는 10개쯤 되는 실패한 자아가 있었던 셈이기도 하다. 너무 우울이나 상처를 쏟아내거나, 너무 거친 내면이나 욕망들을 풀어내고, 너무 혼란스러운 생각들을 거쳐오면서 내가 '나 자신'으로 택하고 싶지 않은 자아들이 그만큼 있었던 셈이다. 어쩌면 청춘에는 그 정도의 혼란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나름의, 그 정도의 시행착오를 거쳐서, 이제는 웬만해서는 폐기하지 않는 '나'로서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글쓰기 강의나 수업을 할 때면, 어느 정도까지 솔직한 글을 써야하는지, 어디까지 이야기해도 되는지, 얼마나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지 같은 고민을 자주 듣게 된다. 그럴 때면, 나는 내가 폐기한 10여개의 글쓰는 자아에 관해 이야기한다. 필명으로 블로그를 만들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몽땅 풀어내보는 것도 좋다. 그러고 나서, 너무 부끄럽거나 너무 많은 이야기를 했다고 느끼면, 블로그를 닫으면 된다. 그리고 새로운 블로그에서는 조금 더 절제하거나, 조금 더 적당한 선을 찾아가면 된다.
아마도 삶에서 무언가를 하게 되고, 무언가를 만들어가고, 무언가를 이어간다는 것은 다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시행착오 없이 제대로 만들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부부가 안정적인 관계를 구축하려면 그 전에 사사건건 다투면서 서로의 선을 찾아야 한다. 아이를 키울 때도, 셀 수 없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조금씩 부모의 일이라는 걸 알게 된다. 운전을 잘하려면 문짝 하나 날려봐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나만의 글을 쓰는, 비교적 단단한 글쓰는 자아를 만들어가려면, 역시 필연적인 시행착오가 필요한 것이다.
요즘에도 나는 내가 거치는 시행착오들이 무엇이 있나 생각해보곤 한다. 지금 무언가에 시행착오를 거치고 있다는 건, 언젠가 그것들이 극복되고, 안정된 단계가 오리라는 예견과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단지 시행착오가 너무 큰 실패나 상처가 되지 않도록 다스리면서, 꾸준히 시행착오 자체를 이어갈 필요가 있다. 적어도 나는 그래야만, 무엇이든 얻게 되고 하게 될 수 있는 인간이라고 믿고 있다. 나는 시행착오가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