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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Sep 14. 2022

나를 비판하는 사람이 없으면 끝장이다

Photo by Markus Winkler on Unsplash


나는 주변에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이 없어지면 '끝난' 것이나 다름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때의 비판이란, 당연히 인격모독 같은 비난은 아니고 나의 생각이나 행동에 합리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일이다. 인간은 신이 아닌 이상 누구도 옳기만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인간은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환상에 끊임없이 빠져든다. 


이를테면, 시험에서 우리는 처음 고른 답을 바꿀 때 강한 불안을 느낀다. 그 이유는 처음 고른 그 답이 '내가 고른 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답을 바꿀 때 그것이 정답일 확률이 더 높다고 한다. 내가 옳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더 옳은 정답 쪽에 다가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애덤 그랜트, <싱크 어게인> 참조). 


글을 쓸 때도, 내가 쓴 글이면 고치기가 어렵고 싫다. 그 이유는 그것이 내가 쓴 글이기 때문이다. 내가 쓴 글은 그것 자체로 정당하길 바라고, 누군가가 글의 옳고 그름에 관해 참견하거나 고치라고 하는 일에 기분이 나빠진다. 그러나 정작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피드백이 필요하다. 좋으면 좋다, 이상하면 이상하다고 말해줄 사람이 있을 필요가 있다. 


자존심은 나와 나의 산출물들을 분리하지 못할 때 격렬하게 강해진다. 나의 글, 나의 생각, 나의 의견이 비판당할 때, 내가 나 자신과 그것들을 분리하지 못하면, 그 모든 게 나에 대한 비난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실제로 비판은 그런 나의 산출물들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오히려 필수적이다. 자존심을 내려놓으면, 내가 더 온당하게 가야할 길이 보인다. 


나는 종종 글쓰기 수업에서도 나의 글을 평가 받는 시간을 마련한다.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도 완벽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내 글에도 반드시 보완해야 할 점이나 더 생각해봐야 될 지점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시간에는, 대개 마지막에 나도 나의 글에 대한 비판을 늘어놓는다. 이를테면, 이 표현은 다르게 바꾸면 좋겠다거나, 마무리가 조금 더 깊이 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내 글을 나로부터 분리해서 다시 바라본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함께 내 글을 다시 보게 되면, 혼자서는 보지 못했던 부분들이 들어온다. 


비슷한 맥락에서, 나는 내가 쓴 책에 대한 비판도 꽤 흥미롭게 살펴보는 편이다. 어떤 점에서는 더 이해심을 발휘해야 할지, 더 강하게 주장해야 할지, 어떤부분을 더 강조하거나 자제해야할지 등을 알게 된다. 확실히 내 글쓰기를 지속적으로 낫게 해준 것 중 하나는, 내가 쓴 글에 적절한 비판점들을 남겨준 리뷰들이다.


대화를 할 때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보면, 서로 약간 다른 의견들을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다. 대화를 하며, 내 생각도 수정해볼 수 있고, 상대에게도 영감을 줄 수 있다. 그런 안전한 상호성 속에서, 서로를 수정해나가는 즐거움이 대화의 즐거움이고, 관계의 살아있음이라 느낀다. 


자신의 절대적인 옳음 속에 갇힌 채로 숭배받고, 자기 자신을 광신하는 일이야말로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에 가깝다. 나는 내가 그런 사람으로 늙을까봐 무서워한다. 내가 주위 사람들과 정당한 비판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그런 비판들로 서로를 계속 고쳐나갈 수 있는 관계들이 내 삶을 이끌어주었으면 한다. 나는 내 삶을 채우는 사람들과 함께 매일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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