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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Feb 17. 2021

과거를 쓴다는 것


글을 쓸 때면, 상당히 중요하다고 느껴지는 것 중 하나는 '과거의 나'를 정확하게 상상하는 일이다. 그 이유는 대개 나이가 들어가면서, 늘 자기 나이대의 삶에 적응하게 되고, 과거의 진정한 마음이나 기분이랄 것을 쉽게 잊어버리곤 하기 때문이다. 예전의 나는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대했는지, 어떻게 미래를 꿈꾸었는지, 무엇을 진정으로 욕망했거나 간절히 원했는지를 까먹거나, 왜곡하거나, 착각하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삶의 글감이라는 것은 대부분 과거로부터 온다. 글쓰기라는 것은 대개 지나간 것에 관한 것이다. 지나간 오늘, 지나간 청춘, 지나간 사랑, 지나간 여행이 늘 글쓰기의 대상이 된다. 조금 더 본질적으로 보더라도, 사람은 지나가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글을 쓸 수 없다. 이미 경험한 감정, 이미 한 걸음 지나온 생각, 이미 내 안에서 일어났던 일들만이 늘 사후적인 글쓰기의 영역에 들어온다. 그래서 글쓰는 일이란, 사실 적극적으로 과거를 상상하기, 과거를 살아내는 일에 가깝다. 


글쓰는 습관은 사람을 어느 정도 과거에 살게 하고, 매일 '뒤돌아 보게' 만든다. 글쓰기는 계속 오늘이나 어제 일어난 일, 십년 전이나 이십년 전에 일어난 일을 되새김질하게 하면서, 계속 그때의 본질이랄 것을 찾게 한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미래 지향적인 여러 일들, 특히, 사업이나 금융 업계의 일 같은 것과 크게 대비되는 것 같다. 글쓰기는 계속 우리 과거를 다져나가면서, 삶의 내부 혹은 자아의 안쪽을 채워넣으며 삶의 기반으로 삼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 이런 글쓰기 습관과 능력은 때로는 현실적으로 무용하다는 취급도 받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과거 자체는 돈이 되지 않는다. 자본은 항상 전진과 확장의 매커니즘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과거라는 것은 자본주의 안에서는 재빠르게 폐기처분되어야만 하는 것에 가깝다. 실제로 우리의 삶도 그런 자본의 흐름에 맞춰져 있다 보니, 계속하여 더 많은 능력, 내가 갖지 못한 새로운 자격증, 새로운 영역에 대한 앎, 새로운 사업에 대한 투자 같은 것을 향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나 자본주의의 프로세스와는 별개로, 인간은 결국 과거에 뿌리내리고 살 수밖에 없는 자아정체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글쓰는 능력과 태도는 사람들에게 항상 '잊은 무언가'를 환기시켜주는 느낌을 준다. 맞아, 그게 중요한 건데 잊고 있었어. 왜 그걸 모르고 있었지? 왜 잊고 살고 있었지? 사실, 나는 멈추어서 그런 것에 관해 생각할 필요가 있었어. - 글쓰기란 바로, 그런 사람의 마음에 적중하는 측면을, 구조적으로, 본질적으로 갖게 된다. 멈추거나 역행할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는 삶을, 멈추거나 역행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글쓰기가 갖게 되는 특별한 지점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글쓰기의 영역에 들어선 사람은 잠시 현실이 멈추었다고 느끼게 된다. 나를 늘 휩쓸어가던 현실로부터 살짝 벗어나고, 현실을 잠시 잊게 되고, 무언가 삶에서 누락했던 측면에 몰입하게 된다. 그런데 바로 그 영역은 인간이 결코 잃을 수도 없고 상실할 수도 없는 영역이다. 자본과 사회의 흐름은 그런 측면을 잊게 만들며 사람들을 소비자로 끌어들이지만, 사실, 잊어서는 안될 측면이 있다는 걸 잠시라도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글쓰는 일이 세상 어떠한 일보다도 특별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일이 되기도 한다. 이미 세상이 무가치하다고 여기고 있지만, 결코 무가치해질 수 없는 영역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수호하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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