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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리의 테이블 Apr 07. 2023

명품을 사는 이유

에릭 프롬 ‘소유냐 존재냐 ‘

사물에 부여되는 의미

인간은 사물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저에게 가장 의미 있는 물건 중 하나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기고 가신 운전면허증입니다.

그 운전면허증은 여느 면허증과 다를 바가 없지만, 저에게는 특별합니다. 그 운전면허증과 함께 하신 아버지의 삶이 그 안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가끔 운전면허증을 바라보며, 아버지를 생각하곤 합니다.

하이데거는 인간이 맺는 사물과의 관계를 ‘존재적 관계’와 ‘존재자적 관계‘로 나누었습니다.

존재자적 관계는 인간과 사물이 의미를 두지 않고 만나는 관계입니다. 내 앞에 있는 사물은 그저 물건일 뿐입니다. 특별한 의미도 차이도 없습니다. 마트에 놓여있는 수많은 물건이 바로 ‘존재자’들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존재자’들 속에서 하나를 골라 소유하게 되면, 그 존재자는 나의 삶의 일부가 됩니다.

그 물건은 나에게 의미 있는 사람, 시간, 공간 속에서 버무려지며 특별한 ‘상징성’을 갖게 됩니다.

하이데거는 반고흐의 ‘구두’라는 작품 속에 있는 신발을 ‘존재’라고 불렀습니다. 반고흐는 작품 속의 구두를 무차별적 물건(존재자)이 아니라 ‘누군가의 구두’로서 그려냈기 때문입니다. 

반고흐의 '구두'

반고흐의 ‘구두’라는 작품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그 구두가 자신이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듯합니다. 그냥 구두는 ‘존재자’이지만, 누군가의 구두는 하나의 ‘존재’입니다.


명품을 사는 이유

한 유투버의 영상을 통해서 사람들이 명품을 사는 이유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녀는 명품을 왜 사느냐는 질문에 지체 없이 ‘남들보다 더 돋보이기 위해서 산다 ‘고 말했습니다.

현대 자본주의 체계 안에서의 ‘소비’는 단순한 ’ 필요 needs’를 넘어, ‘욕망 desire’을 위한 것입니다.

과거와 같은 명확한 신분제가 사라진 지금,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 바로 ‘소비’입니다.

각각의 상품들은 각자의 위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Gucci, Fendi, Channel 은 각자의 위치를 가지고 있고, 그렇게 정해진 위치는 고스란히 이것을 소비하는 사람의 위치를 드러내줍니다.

현대 사회에서의 소비는 ‘정체성’을 드러내는 가장 적절한 수단입니다.

다시 말하면, 소비를 통해서 ‘사회적 신분상승’도 가능한 사회가 바로 오늘날의 사회입니다.


현실 소멸의 시대

프랑스 출신의 사회학자 장보들리아르(Jean Baudrillard)는 소비문화와 현대사회에 대한 이론가입니다. 그는 현대사회를 "실제(real)와 시뮬레이션(simulation)의 경계가 불분명한 사회"라고 정의합니다.

그는 현대사회에서 상품과 소비가 모든 것을 지배하며, 현실과 가상, 진실과 거짓, 현실과 시뮬레이션의 구분이 희미해졌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소비문화와 시뮬레이션의 확산으로 인해 인간은 더 이상 현실을 경험하는 존재가 아니라, 시뮬레이션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이론입니다.

따라서, 그는 현대사회를 "현실의 소멸(simulacra)의 시대"로 규정했으며, 소비문화와 시뮬레이션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명품을 사는 것은 더 이상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상징을 사는 것입니다. 이 상징은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진 상징이며, 체계화된 상징입니다. 이제 현실의 물건은 사라지고 현실을 상징이 대체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장보들리아르는 시뮬라크라(simulacra)라고 했습니다. 

이는 본래 명품은 하나의 제품이며, 브랜드이지만, 그것이 상징체계(사회적 관계망)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합니다.

Cucci는 본래 명품 제품을 말하는 것이지만, 만약 그것을 사람에게 '너는 구찌 같아'라고 사용한다면 그 사람을 높게 평가하는 의미로서 통용이 됩니다. 왜냐하면 이미 Cucci라는 브랜드는 시뮬라크라로서 독립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시뮬라크라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세계는 현실 덮어버리고 그 위에 새로운 상징세계로 우뚝 섰으며 그 세계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유냐 존재냐

에릭 프롬은 그의 책 '소유냐 존재냐'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몸담고 살고 있는 사회는 전적으로 소유지향과 이윤추구로 처방된 사회이다. 따라서 존재적 실존양식의 실례는 찾아보기 힘들고, 대다수 사람들은 소유를 겨냥하는 실존을 당연한 것으로, 그야말로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생존방식으로 여긴다." 


그는 우리가 사회가 소유로서의 존재 양식을 유일한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합니다. 

소유적 양식의 삶은 물질적인 소유와 성취에 주력하는 삶입니다. 이러한 삶은 '물질적인 소유'가 개인의 삶에 중요한 가치와 목표가 되며 성취와 경쟁, 통제, 지배 등의 개념들이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소유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인간관계를 성공을 위해 필요한 하나의 도구로 생각하며, 인생의 의미는 얼마나 많이 소유하고, 성취하였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반면에, 존재적 양식의 삶은 개인의 내적 성장과 함께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삶입니다. 이러한 삶에서는 인간의 내적 발전과 진실된 인간관계가 주요한 가치로 여겨지며, 공동체와의 상호작용,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와 존중, 진실된 자아 인식과 발전이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따라서, 에릭 프롬은 소유적 양식의 삶과 존재적 양식의 삶을 비교하면서, 존재적 양식의 삶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그는 인간의 진정한 가치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존재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이러한 삶에서는 자기 자신과 타인, 그리고 공동체와의 연결성을 중시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존재적 삶으로 전환해야 한다

자본주의적 상징체계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거짓 자아를 만들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좋은 차와 옷을 걸치고 살지만, 내 안에 있는 나의 내면은 풍성한 만남도, 깊은 깨달음도 없는 비루한 존재일 수 있습니다. 

대단해 보이는 외면과 가난한 내면의 격차는 우리에게 깊은 절망감을 주며, 그러한 절망감으로 인해 더욱더 소비하며 현실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에릭 프롬은 소유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며, 자유와 개방적인 태도, 진실된 인간관계와 연결성, 그리고 참 자아의 발견과 발전에 대한 필요성이 무시되기 쉽다고 경고합니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인간이 만들어 낸 가상의 상장체계 안에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확인하고, 확장해 나가는 것입니까? 아니면, 참으로 존재하는 나라는 존재, 홀로 있을 때 알게 되는 참 나를 풍성하게 가꾸어 가는 것입니까? 


하이데거는 인간의 죽음을 중요한 존재적 사건으로 바라보며, 죽음이 인간의 삶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합니다. 즉, 우리가 죽음을 생각해 봄으로써 우리에게 진정으로 남는 것, 우리에게 참으로 의미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일 죽는다면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이고, 그런 나에게 남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것을 위해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모든 소유가 사라진 후에도 충분히 괜찮은 그런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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