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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리의 테이블 Jun 07. 2021

마틴부버의 나와너

영화 미나리로 배워보는 마틴부버의 나와너

출처: 다음 영화ㅇㅓㅅ

<미나리(Minari)> (2021)

각본, 감독: 정이삭 (Lee Issac Jung)  

출연: 스티브 연, 한예리, 윤여정, 앨런 S. 김, 노엘 조, 윌 패튼, 스콧 헤이즈.


영화 미나리가 골든 글로브 외국어상을 받았습니다. 

미나리가 한국 영화이냐, 아니냐 하는 논란이 있습니다. 사실 그것이 뭐가 중요한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가 우리의 모습을 세계에 보여주었으며, 그 모습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감독에 관하여

2021년 2월 28일 오후 제78회 골든글로브상 시상식에서 ‘미나리’로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재미동포 2세 정이삭 감독이 자택에서 딸을 안고 기뻐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정이삭 감독은 1978년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농장 경영을 꿈꾸며 아칸소주 링컨으로 이주해 정착했습니다. 정감독은 고등학교 졸업 후 예일대에 입학하였습니다. 생택학을 전공하며 의대 진학을 꿈꿨는데요, 4학년 때 아시아 영화에 매력을 느끼며 영화 감독의 꿈을 꾸게 되었답니다. 그는 영화를 배우기 위해 여러 영화 학교 입학시험을 보았으나 번번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유타대 대학원에 합격하게 되어 본격적으로 영화를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첫 영화는 기독교 봉사단체에서 일하던 아내와 함께 아프리카 르완다에 가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별다른 기술이 없던 그가 아프리카 현지인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것을 찾다가 영화촬영 방법을 가르쳐 주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만든 영화 '문유랑가보'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문유랑가보'는 르완다 난민 캠프의 참담한 현실을 담은 영화입니다. 제작비가 3만달러 정도에 불과한 독립영화인데요. 이 영화로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어 재능을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4편의 영화를 더 만들어 작품성은 인정받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는 "무책임하게 영화 만들기라는 꿈만 좇고 있다는 생각이 수년 동안 들었다"고 말했는데요. 마치 자신이 농사를 지으며 꿈을 좇는 제이콥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런 정감독의 모습을 보며 '꿈'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의 가능성...그것에 현실의 삶을 투자하는 일이 숭고하기도 하지만 참으로 고통스러운 과정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결국 영화를 접어야겠다고 생각했답니다. 

"마흔에 이르러 좀 더 책임감 있게 살고, 가족을 돌보기 시작해야만 할 필요가 느꼈기1) "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때마침 인천 유타대 아시아 캠퍼스에서 교수로 일할 기회가 생격 한국에 오게 되었는데, 한국에 오기 전 마음 속에 "영화 한 편을 만들 기회가 한 번은 남았다2)"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 마지막 영화가 미나리입니다.  


정이삭 감독은 비행기를 타기 전 시나리오를 에이전트에 넘겼고, 에이전트는 브래드 피트가 설립한 영화 '플랜 B' 관계자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그는 할리우드 리토터와의 인터뷰에서 "'미나리'는 내 모든 걸 표현하고 싶었고 내 뒤에 무엇도 남기지 않은 영화"라며 "내가 영화를 다시 만들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이삭 감독(위 왼쪽 세번째)이 ‘미나리’ 출연진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마틴부버의 '나와너'

마틴부버(1878 ~ 1965)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계 종교철학자입니다. 1923년 나치의 유대인 박해로 독일에서 피난하여, 여러나라에서 망명생활을 했으며, 1938년에는 히브리 대학에서 사회철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마틴 부버 / 출처: 위키피디아

그는 1923년에 '나와너'(1923)를 출판하여 우렵, 미국의 기독교 신학이나, 철학, 또한 정신의학계에까지 넓고 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마틴부버의 철학은 실존주의적이며 관계적인 철학입니다. 

데카르트로 대표되는 근대 사상은 '주체적 철학'이었습니다. 하나의 주체가 '대상'을 파악하는 것으로서 대상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가 주요 관심사였습니다. 

예를들면, '세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나'라는 주체가 '세계'라는 대상을 파악하기 위한 질문입니다. 이러한 세계관에서는 주체가 주인이 되고, 대상은 종속물이 됩니다. 왜냐하면 주체의 시각을 통해서 대상은 파악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주체, 대상'의 사고방식은 주체와 종속의 관계를 낳게 되었고, 이는 근대 제국주의와 세계 1, 2차 대전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포스트모던 사상의 주요 인식입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니체가 나오고 이성중심에서 감성으로, 일자중심에서 다자중심으로의 급격한 철학적 전회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후기 근대주의(post-modernism) 사상은 근대의 중심주의 철학을 해체하기 시작하고, 어떠한 것도 중심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투쟁을 벌이게 됩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마틴부버는 '중심 또는 반중심 주의' 철학을 극복하는 대안을 제시합니다. 

'반중심 주의' 철학도 사실은 '중심 주의'의 반동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는 '중심 주의'철학에 종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틴부버는 '관계적 철학'을 정초합니다. 


그는 '나'라고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무슨 말일까요? '나'라는 것은 여기 엄연히 존재하는데 말이죠.^^ 

마틴 부버는 '나'의 존재는 '너'의 존재를 통해서만 인식된다고 합니다. 


예를들어 볼까요? 누구나 눈을 가지고있습니다. 하지만, 눈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인식하나요? 눈이 볼 수 있는 대상이 없다면 우리는 눈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요? 눈이 볼 수 있는 아무런 대상이 없다면 과연 눈은 그 존재를 보장받을 수 있을까요? 


'나'라는 존재는 반드시 '너'라는 대상이 있어야만 그 존재가 증명되는 것이라고 마틴 부버는 말하고 있습니다. 


마틴 부버는 또 하나의 개념을 말합니다. '나'는 반드시 대상을 통해서만 존재하게 되는데, 그 존재 방식은 두 가지라고 합니다. '나-너'의 존재 방식과 '나-그것'의 존재방식입니다. 

'나'라는 주체는 대상과 어떠한 관계 맺음을 하느냐에 따라 '나-너'가 되기도 하고, '나-그것'이 되기도 합니다. '나-너'는 대상을 하나의 살아있는 존재로서 대하는 '나'의 존재입니다. 이를 '나-너'라고 합니다. 

'나-그것'은 대상을 살아있는 존재가 아닌, 나에 의해 수단회 되거나 사물화 되는 대상과 관계 맺는 존재입니다. 이를 '나-그것'이라고 합니다. '나-그것'의 관계는 대상을 나의 소유물로 여기거나 나의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여깁니다. 

출처: https://www.nexteconomy.co.kr/news/photo/202006/13529_21643_4549.jpg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대상을 하나의 대상으로 여길 때, 그 대상이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되는 것이 아니라, '나'가 대상을 수단화하는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어떤 사람을 존엄하게 여기는 사람은 그 자체로서 존귀한 내가 되지만, 타인을 존엄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그 행위로 인해 타락한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개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의 존재는 내가 어떠한 생각, 행위를 통해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 어떠한 방식으로 관계 맺음을 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에 깊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또한 내가 누군가를 무시하거나, 이용하려고 할때 타자가 그런 존재로 전락하지 않고, 나의 가치가 전락한다는 깨달음이 왔을 때 깊은 돌이킴이 있었습니다. 


영화 미나리에서의 '나-너, 나-그것'의 관계

영화 미나리가 이토록 주목받는 이유는 그 안에 진정한 관계가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이콥(스티브 연)의 가족은 캘리포니아를 떠나 알칸소 시골로 이사오게 됩니다. 

제이콥은 한국에서는 시골출신이라는 주변인으로, 미국 사회에서는 이민자라는 주변인으로 살다가 이제는 시골이라는 주변의 공간으로 밀려 들어온 인물입니다. 


알칸소로 이사간 제이콥은 아내와 함께 부화장에서 일합니다. 부화장은 미국 사회의 변두리에 사는 사람들의 일터로서 그들의 사회적 위치를 대변되는 곳입니다. 부부가 함께 일하기에 아이들을 돌봐 줄 사람이 없고, 그래서 아이들도 부화장에 함께 머무르게 됩니다. 잠깐 쉬는 시간을 내서 아들과 놀아주던 제이콥은 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출처: 다음 영화

"수컷들은 쓸모가 없어. 쓸모가 있어야 살 수 있어. 그러니까 데이빗 너도 쓸모가 있어야 돼. 알았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든 것에 가격을 매기고 있습니다. 삶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시작했던 가격 매김의 행위가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것에 까지 가격을 매김으로 가치를 타락시키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노동시장에 살아가는 우리 역시도 하나의 '가격'으로 매겨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열심히 일하고 그 대가를 받는 일은 당연한 것이고, 정당한 것이지만, 그 가격으로서 사람의 가치가 매겨지는 현상은 '나-그것'의 관계가 지배해 버린 사회의 한 단편일 것입니다. 


제이콥의 가족은 '나-그것'의 사회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합니다. 

생산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지만, 점점 더 척박해지기만 합니다. 


급기야, 제이콥은 "모든 것을 다 잃더라도 내가 시작한 것을 끝내야겠어."라고 부르짖습니다. 

그 잃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에는 '끝내야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지만, 어쩐지 제이콥은 길을 잃은 듯 합니다 . 

아내 모니카는 이 말에 큰 충격을 받습니다. 아내는 여전히 '우리가 함께 있는 것'이 더 소중하다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제이콥과 모니카가 다투고 있던 사이, 중풍에 걸린 순자(모니카의 친정 엄마)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집밖의 쓰레기를 모아 불에 태우고 있습니다. 이제는 가족의 짐이 되어 버린 그녀가 가족을 위해서 무언가라도 하려던 것이었을까요? 그녀가 일으킨 불은 옆으로 번져 제이콥이 가장 소중히 여기던 농작물을 모두 태워버립니다. 


오랜 갈등 끝에 이혼이라는 파멸로 달려가던 제이콥과 모니카는 불 붙은 농막 속의 농작물을 구해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리고 급기야 목숨까지 위태로운 순간. 제이콥은 모니카를 애타게 부릅니다. 그 생명만이라도 온전하기를 바라면서 말이죠. 그리고 둘은 타오르는 불빛 앞에서 서로를 끌어 안으며 고통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나-그것'의 관계로 치닫던 둘은 절대적 절망이라는 불길 앞에서 오히려 '나-너'의 관계로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거대한 불은 그들의 모든 소유를 태워버렸습니다. 오히려 그 소유가 문제라는 듯이 말이죠. 

이 모습을 지켜보던 순자는 자신의 무가치함을 절감하며 어딘지 알 수 없는 죽음의 장소를 향해 불편한 발걸음을 옮깁니다. 자식에게 도움이 되려 한국에서 미국으로 왔지만, 결국 모두를 파멸로 몰아 넣었다는 죄책감이 그녀를 지배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잃어 버렸다고 절망한 그 순간이 모든 것을 다시 찾은 순간이 되어 돌아옵니다.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걸어가는 할머니(순자) 앞을 막아서 데이빗. 

"할머니, 할머니 어디가요? 이쪽 아니에요. 우리 집은 저쪽이에요. 

할머니 가지 마세요. 우리랑 같이 집으로 가요." 


그토록 소중한 소유를 모두 잃어버렸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가족 간의 사랑과 관계함이 살아나는 시간.  

모든 것에 가격을 매겨 사고 파는 우리 사회 안에서 너무나 가치 없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그것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소중한 관계. 오히려 소유를 다 잃고 나니 보이는 그 소중함이 얼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 

"알아서 잘 자라네. 데이빗 할머니가 좋은 자리를 찾으셨어." 


제이콥은 자신의 노력이 아닌, 그냥 주어진 미나리를 수확하며 새로운 소망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영화 미나리는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성취인지, 우리의 소유인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그냥 주어진 것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것들과 '나-너'의 관계를 맺어간다면 우리를 주변으로 밀어내려는 거대한 절망에 맞설 수 있을 것이라고 영화 '미나리'는 말해주고 있는 듯 합니다. 

 




[미주] 

1), 2) 한국일보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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