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바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본능적이고 강렬하고 아름다운 밴드다.
『멜로디 메이커Melody Maker』
너바나는 예리하고 전복적이다. 또한 유쾌함과 좌절감을 주면서도 유니크했다. 자연의 힘에 가까웠던 그들의 예술 세계를 수많은 밴드, 작가, 만화가, 영화 제작자, 레이블들이 이어받아 꽃을 피웠다.
벤자민 마이어스Benjamin Myers
정치, 성(性), 결혼, 패션 등에서 커트 코베인이 옹호했던 모든 가치는 지금 우리 세대에도 분명히 드리워져 있다고 생각한다.
에릭디오에이ericdoa
커트는 훌륭한 예술가였다. 통찰력이 있었고 창조적이었으며, 늘 강박적이었다.
크리스 노보셀릭Krist Novoselic
언젠가 큐어The Cure의 로버트 스미스Robert Smith는 말했다. “10대 시절엔 전 세계가 나를 반대하고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리고 1990년,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은 “우리 노래는 자신을 변화시키거나 스스로 좌절하는 일에 관한 것들”이라고 했다. 나는 로버트와 커트가 묘사한 정서적 긴장을 담뿍 머금었던 10대 중후반에 너바나Nirvana를 만났다. 정확히는 록을 좋아하던 친구가 권해준, “대중음악의 씨줄과 날줄을 근본적으로 파괴”했다는 평가와 “모든 것을 뒤엎을 지렛대” 같은 앨범이라는 극찬을 동시에 받은 《Nevermind》의 <Smells Like Teen Spirit>였다. 록 평론가 믹 월Mick Wall의 비유처럼 저 노래엔 기타의 탄산 같은 질감과 베이스의 스펀지 같은 탄력, 거대하고 대담한 데이브 그롤Dave Grohl의 드럼이 기적처럼 엉겨 있었다. 그것은 엑스 세대Generation X라 불린 10대들의 맹렬한 거부denial였고, “여기 우리가 왔어. 우릴 즐겁게 해 줘”라는 노래 속 구호는 그대로 해당 세대의 구호가 되었다. 홀Hole과 스매싱 펌킨스The Smashing Pumpkins를 거친 베이시스트 멜리사 아우프 데르 마우르Melissa Auf der Maur는 처음 <Smells Like Teen Spirit>를 듣고 눈물을 흘린 뒤 이런 감상평을 남겼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렇게 내 인생도 바뀌었다." 멜리사는 노래에 깊은 감동을 받은 뒤 일주일 내내 《Nevermind》만 들었다. 울지 않았을 뿐, 나도 멜리사와 다르지 않았다.
1989년 커트는 타워 레코드Tower Records에서 발행한 타블로이드 잡지 『펄스!Pulse!』와의 인터뷰에서 “단순히 흥얼거리기만 하는 앨범이 아닌, 계속 들을 수 있는 앨범을 원한다”라고 말했다. 내가 처음 만난 너바나 앨범인 《Nevermind》는 저 두 가지를 모두 지녔다. 흥얼거리며 계속 듣게 된다. 하지만 음과 양은 필연적으로 공존하는 것인지, 커트와 코트니 러브Courtney Love를 인터뷰 한 『새시Sassy』의 크리스티나 켈리Christina Kelly가 썼듯 《Nevermind》의 성공은 만든 당사자들에겐 너무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결과였다. 무릇 극과 극은 통해서, 그건 너바나의 둘도 없을 영광임과 동시에 슬픈 곤두박질의 서막이기도 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Richard Linklater가 연출한 『슬래커』, 더글러스 코플랜드Douglas Coupland가 쓴 『X 세대』와 함께 90년대 젊음을 정의 내린 《Nevermind》. 혹자는 너바나의 음악을 두고 풍자적이면서 진지하다고 했다. 농담인 듯 진지했다는 뜻일 터다. 그런데 나에게 너바나 음악의 첫인상은 풍자도 진지함도 아닌, 그냥 폭발적이었다. 뜨거운 화염 같았고 냉엄한 죽비 같았다. 1967년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가 사실상 레시피를 완성했다고 간주된 노이즈와 팝의 결합, 그 안에서 여문 “불안에 휩싸인 날카로운 보컬과 팝적인 감성”은 그대로 10대 끝자락에 이른 내 온 마음을 앗아갔다.
다만 그때 난 커트가 “격려가 되지 않는 부모들에게 감사한다. 당신들에게 반박할 수 있는 의지를 자녀에게 준 것에 대해서도”라는 말을 《Nevermind》 소개 글로서 자신의 일기장Journals에 썼다는 사실을 몰랐다. 물론 데이비드 리 로스David Lee Roth가 “더 이상 재미가 없는” 록의 시대를 열었다며 커트를 비꼰 사실도 나중에 알았다. 내가 너바나를 알았을 때 너바나는 사라진 뒤였다. 너바나가 나의 세상에 왔을 무렵, 커트 코베인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거의 실시간으로 커트를 처음 접한 건 그의 경직된 팔과 다리 일부를 비춘 『시애틀 타임스Seattle Times』의 톰 리스Tom Reese가 찍은 사진을 통해서였다. 밴드가 남긴 정규 앨범은 고작 세 장이었고, 커트의 사후 앨범인 《MTV Unplugged in New York》은 비정규 명반으로 회자되고 있었다.
커트의 딸 프랜시스 빈 코베인Francis Bean Cobain은 아빠가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죽었음에도 아빠를 둘러싼 신화와 낭만이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는 그가 “영원한 27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커트는 절대 나이를 먹지 않기 때문에 아이콘의 지위에 올랐다는 얘기였다. 이는 커트도 생전에 알고 있었던 듯 보인다. “10년 후에도 너바나 노래를 연주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지 않아요. 그럴 리가 없죠. 난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처럼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를 깎아내리는 게 아니라, 그저 나이에 따라 곡을 바꾸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너바나의 중요한 미발표 음원들을 한데 모은 컴필레이션 앨범 《With the Lights Out》 일본반 라이너 노트를 쓴 오타카 슌이치Shunichi Otaka도 프랜시스, 커트와 비슷한 말을 했다.
그로부터 10년(2004년)이 지났음에도 너바나가 남긴 음악은 조금도 현실성을 잃지 않는다. 실질적인 활동이 고작 6년에, 오리지널 앨범은 세 장뿐인 그룹이 아직도 이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음악, 아티스트의 소비 속도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아진 지금을 생각해 보면 경이로운 일이다. 어쩌면 이런 아티스트는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같은 맥락에서 1995년에 태어난 싱어송라이터 겸 프로듀서 조니Jawny가 너바나를 비롯해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 등을 섭렵하지 않았다면 메이저 아티스트가 될 수 없었을 거란 사실은 많은 걸 시사한다. 평론가 데이브 톰슨Dave Thompson이 모던 러버스The Modern Lovers의 <Roadrunner>를 언급하며 썼듯, 너바나는 그렇게 <Smells Like Teen Spirit> 단 한 곡으로 "불멸을 부여받았다." 비록 커트 자신은 ‘너바나가 앞으로도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고 보느냐’는 전기 작가 마이클 아제라드Michael Azerrad의 질문에 “절대 아니”라고 답했지만 말이다. 인간은 자기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법이다.
아제라드 만큼 중요한 너바나 전기를 쓴 평론가 에버렛 트루Everett True는 “커트의 상처받고 멍든 목소리는 자신과 같은 불만을 품은 수만 명 아이들에게 다가갔고 불안과 외로움, 학대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인 그의 노래는 저들 내면의 심금을 울렸다”라고 했다. 저명한 음악 평론가 데이비드 프리크David Fricke는 그런 커트가 남긴 가장 거대한 흔적인 <Smells Like Teen Spirit>가 “스탠딩 파티 비디오로 록 사운드와 미래를 순식간에 바꿔놓으며 한 세대의 억눌린 에너지를 발산했고 헤어 메탈, 신스팝, 레이건과 부시가 이끈 80년대 보수 세력의 지배를 단숨에 끊어버렸다”고 평가했다. 고로 90년대의 너바나는 평론가 사이먼 레이놀즈Simon Reynolds가 지적했듯 “시대정신에 딱 맞는 그룹”이었다. 나는 그 시대의 한복판은 아니었더라도, 적어도 그 시대의 공기가 유효했던 시절에 너바나를 처음 만났다.
생전에 커트가 가장 존경했던 밴드인 알이엠R.E.M.의 마이클 스타이프Michael Stipe는 2014년 너바나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 스피치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뮤지션’이라는 단어 대신 ‘아티스트’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밴드 너바나가 모든 의미에서 예술가였기 때문입니다. 한 순간을 포착하고 시대정신을 발견하며, 우리의 투쟁과 열망 또는 욕망을 드러내는 것은 아티스트로서 가장 큰 소명이자 특권입니다. 한 시대를 포용하고 정의하는 것.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예술가의 정의입니다.
아직 커트가 언더그라운드에서 전전하고 있을 때 그의 곁에서 그를 돌봤던 트레이시 머랜더Tracy Marander는 마이클의 정의에 이런 말을 보탠다. “가끔 커트가(음악가를 넘어) 훌륭한 예술가였다는 사실이 잊히는 듯 해 아쉬워요. 그가 많이 웃었다는 것도요.”
너바나의 이야기는 타이타닉과 비슷하다. 침몰은 예정돼 있다. 커트 코베인이 부모의 이혼과 마약이라는 빙산을 만나 파멸로 치닫는 과정은 그 침몰의 서글픈 빌드업이다. 잭 도슨Jack Dawson만큼이나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커트는 펑크 록이라는 로즈Rose DeWitt Bukater를 만나 한때나마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 하나 그의 화려했던 삶은 말 그대로 ‘한때’였고, 커트는 자괴와 우울을 부여잡은 채 수직으로 선 뱃고물에서 홀로 괴로워하다 배와 함께 거짓말처럼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바다의 물거품이 되어서도 그 존재감이 너무도 강렬했던 탓에, 커트는 떠나고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추억되고 회자된다. “아무리 노력해도 망각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라고 커트는 일기에 썼지만, 수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계 대중음악계는 그를 망각하지 않고 있다.
너바나의 모든 곡을 리뷰한 책 『Nirvana On Track: Every Album, Every Song』을 쓴 윌리엄 E. 스페백William E. Spevack이 표현한 대로 커트가 이끈 밴드는 한 시대를 뒤흔든 “문화적 지진”이었다. 다만 너바나 이후 장르가 아닌 청년 문화의 추동력으로서 록 음악은 필연적으로 종착역에 다다른 게 사실이다. 너바나의 음악이 지닌 모순의 미학이 세상을 지배하면서 이데올로기로서 록 음악은 지배권을 잃은 것이다.척 클로스터만Chuck Klosterman, 《90년대》 P.76 이제부터 써나갈 나의 글은 커트와 너바나가 일으킨 저 문화적 지진의 진원과, 지배권을 잃고 종착역에 다다랐던 90년대 록 음악의 운명을 따라 걸어가 볼 것이다. 제법 긴 여정이 되리라 본다. 함께 해주시길.
지난 메탈리카 전기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너바나 평전도 참고한 책들이 많다. 특히 마이클 아제라드가 1993년 9월에 출간한 너바나 전기 『Come as You Are: The Story of Nirvana』는 커트 코베인이 살아서 읽은 유일한 너바나 평전이었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마이클은 같은 해 11월 초, 커트의 호텔방에서 새벽 4시 커트가 잠들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을 만큼 고인과 돈독한 관계였다. 당시 언론에 시달릴 대로 시달려온 커트는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면 저들언론 때문에 피해 보는 일을 막을 수 있으리라는 매니지먼트사의 제안으로 전기 집필을 허락했다. 커트와 코트니 부부는 마이클의 취재를 위해 가족, 친구, 밴드 멤버들을 두루 만날 수 있게 해 주었고 커트는 그 책이 자신들에게 이롭게 재해석된 역사라고 생각했다. 코베인은 며칠 동안 아제라드를 곁에 두고 그가 쓴 책을 정독한 뒤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읽은 것들 중 최고의 록 책이에요.” 커트는 마이클을 껴안은 뒤 그의 눈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고마워요.”
그 외 나의 글은 앞서 언급한 에버렛 트루의 『Nirvana: The True Story』와 국내에도 번역된 찰스 R. 크로스Charles R. Cross의 커트 전기 『평전 커트 코베인Heavier Than Heaven』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찰스는 훗날 짐 버켄스타트Jim Berkenstadt와 『Nevermind: Classic Rock Albums』도 함께 썼는데, 또 한 명의 ‘너바나 전문가’로 알려진 질리언 G. 가르Gillian G. Gaar의 『Nirvana’s in Utero (33 1/3)』와 더불어 해당 책은 내가 너바나를 대표하는 두 앨범의 디테일을 챙길 수 있게 해주었다. 또한 그렉 프라토Greg Prato의 『Grunge Is Dead: The Oral History of Seattle Rock Music』과 마크 얌Mark Yarm의 『Everybody Loves Our Town: An Oral History of Grunge』는 90년대 시애틀 록 신과 그런지 역사를 따라가는데 탐조등이 돼주었고, 제이콥 맥머레이Jacob McMurray의 훌륭한 책 『Taking Punk to the Masses: From Nowhere To Nevermind』 역시 풍부한 시각 자료 및 인터뷰 자료들로 무명의 너바나와 유명해진 너바나의 주위 역사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여기에 이안 핼퍼린Ian Halperin과 맥스 월레스Max Wallace가 함께 쓴 『커트 코베인 지워지지 않는 너바나의 전설Who Killed Kurt Cobain?』은 추리 소설급 긴장감으로 커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을 환기시켰으며, 믹 월의 『Foo Fighters』와 데이브 그롤의 자서전 『데이브 그롤 스토리텔러 삶과 음악 이야기The Storyteller: Tales of Life and Music』는 너바나 음악에 완전히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드러머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들려주었다. 이 외에도 다 적지 못할 만큼 많은 책, 영상, 앨범, 인터넷 자료들을 참고했다. 참고자료 풀 리스트는 이 연재의 마지막에 걸어두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