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트가 80년대 후반에 헤로인을 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게 사실일지언정 나는 전혀 몰랐다. 징후나 증상이 없었으니까.
트레이시 머랜더
올림피아는 주류 사회 부적응자들을 환영하는 동시에,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지역이기도 했다. 공동체 중심 행동이 너무 많아 그 집단에서 벗어난 개인이 되는 게 숨 막힐 정도로 답답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는 얘기다. 올림피아는 시애틀의 아웃사이더 마을이었다.
저스틴 트러스퍼Justin Trosper, 언운드Unwound와 자이언트 헨리Giant Henry의 기타/보컬
얼룩말 줄무늬 코트를 즐겨입고 머리는 “소방차 색”으로 염색한 채 올림피아에 살던 트레이시 머랜더는 커트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이름이다. 커트와 트레이시는 1986년 시애틀 차이나타운에 있던 펑크 클럽인 고릴라 가든스Gorilla Gardens 앞에서 처음 만났다. 트레이시가 팬을 자처한 멜빈스의 버즈 오스본이 커트를 소개해주었다는 얘기도 있고, 트레이시가 페컬 매터 공연을 보고 커트의 깊고 푸른 눈동자와 과묵함에 반했다는 얘기도 있는데 어쨌거나 두 사람은 애완용 쥐를 통해 유대감을 형성했다. 커트와 달리 외향적인 트레이시는 파티를 좋아하고 엉뚱한 면도 많았지만, 기본적으로 온순하고 자상한 사람이었다. 나중 커트와 교제하는 토비 베일에 따르면 트레이시는 음악도 많이 알았다. 가령 토비는 프라이트위그Frightwig 같은 밴드를 트레이시를 통해 안 것이다. 한동안 미국 북서쪽 펑크 록 공연들을 책 한 권 분량 사진으로 남기기도 한 트레이시. 토비는 감각과 배짱이 있던 그런 트레이시를 한때 우러러봤다고 했다. 몇 주 뒤 트레이시는 커트의 ‘진지한’ 첫 번째 여자 친구가 된다.
87년 3월 초. 커트와 크리스의 밴드엔 아직 제대로 된 이름도 없었다. 그럼에도 커트는 열정이 넘쳤고, 한 세트 합주가 끝나면 곧바로 한 세트를 다시 시작했다. 공연이 고팠던 커트는 멤버들이 틀리면 화를 냈다. 그 시기, 라이언 아이그너Ryan Aigner가 짧게나마 밴드의 매니저를 맡았다. 같은 달 3월 3일. 커트의 밴드가 레이먼드Raymond 하우스 파티에서 첫 공연을 치른다. 세트리스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관중들에게 <Breaking the Law>라고 소개한 <Spank Thru> 등 오리지널 곡들(<Beeswax>, <Floyd the Barber>, <Downer>, <Aero Zeppelin>, <If You Must>, <Mexican Seafood>, <Pen Cap Chew>, <Hairspray Queen>)과 너바나의 첫 공식 싱글이 될 <Love Buzz> 같은 커버 곡들(레드 제플린의 <Heartbreaker/How Many More Times>, 선더 앤 로지스Thunder and Roses의 <White Lace & Strange>, 플리퍼의 <Sex Bomb>, 셰어Cher의 <Gypsies, Tramps, and Thieves>)을 포함했다. 부침을 겪을 드럼 자리는 아직 버카드가 지키고 있었다. “우린 제대로 록을 하고 있었다”고 자부한 커트와 크리스에게 장소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둘은 건방진 10대였고, 그날 온 방을 날뛰었다. 비록 크리스가 밴 위에서 소변을 보고 셸리가 끊어진 목걸이 때문에 한 여성과 주먹다짐을 벌이긴 했어도, 그 정도면 무난한 첫 공연이었다.
겨우 첫 비공식 공연을 끝낸 커트의 현실은 여전히 팍팍했다. 몇 달 동안 집세를 내지 못해 살던 곳에서도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구원의 손길은 트레이시로부터 왔다. 87년 봄, 터코마에서 올림피아 노스 피어 거리North Pear Street 114번지에 있는 새 아파트로 이사한 트레이시는 남자친구에게 자신의 집으로 들어올 생각이 있는지 물었고, 커트는 흔쾌히 응했다. 시애틀 음악가 제임스 버디쇼James Burdyshaw의 지적대로 커트에게 그건 철학적 선택이 아니었다.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마침 크리스와 셸리도 가까운 터코마로 이사를 결정한 터라 커트의 올림피아 행은 밴드 유지 차원에서도 알맞았다. 그해 5월, 커트는 트레이시의 차에 짐을 싣고 105킬로미터를 달려 올림피아로 갔다. 그는 태어나 20년을 보낸 애버딘을 그렇게 떠났다. 같은 해 여름, 약 한 달 동안 크리스와 셸리는 트레이시의 아파트에 함께 머물렀다. 네 사람은 파티를 열거나 TV를 보거나 여행을 떠났다. 셸리에 따르면 세상 누구보다 잘 맞았던 넷은 인생에서 손꼽을 만한 한때를 보냈다고 한다. 하나 커트의 현실은 딱히 바뀐 게 없었기에 트레이시는 셸리와 함께 보잉 구내식당에서 야간 근무를 하며 당분간 남자친구를 먹여 살려야 했다.
트레이시의 아파트는 어둡고 강렬한 화가 고야Francisco Goya와 베이컨Francis Bacon의 그로테스크함을 좋아했던 커트의 그림 및 인형, 『위클리 월드 뉴스Weekly World News』와 『내셔널 인콰이어러National Enquirer』에서 오려낸 기사, 훼손된 폴 매카트니 포스터와 대형 에어로스미스 포스터, 중고 플라스틱 해부학 모형, 기괴한 종교 사진 등으로 장식됐다. 천장에는 파리 끈끈이가 매달려 있었고, 냉장고 문은 고기 사진과 감염된 질(膣) 사진이 뒤섞인 끔찍한 몽타주가 차지했다. 또 핏빛으로 칠한 화장실 벽엔 거꾸로 읽으면 ‘살인MURDER’이 되는 ‘레드럼REDRUM’을 써두었다. 스티븐 킹Stephen King이 쓴 원작을 각색한 큐브릭의 『샤이닝The Shining』에서 가져온 것이다. “커트는 징그러운 것에 매료돼 있었어요.” 한 기자에게 설명한 트레이시는 남자친구와 함께 고양이, 쥐, 앵무새, 토끼, 거북이 등을 키웠다. 이 동물들의 친구는 커트가 가장 아꼈던, 훗날 《Nevermind》 뒤표지에도 등장하는 플라스틱 원숭이 침침Chim-Chim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하루 12시간씩 기타를 치거나 텔레비전, 그림, 콜라주, 조각을 즐긴 커트는 기본적으로 은둔형 외톨이였다. 그는 올림피아에 머문 4년 동안 거의 모든 시간을 그렇게 보냈다.
그런 커트에게 트레이시는 일자리를 구해보라곤 했다. 그러면 소심한 커트는 자기 차에서 살겠다며 아이같이 굴었다. 정말이지 트레이시는 데뷔작 《Blaech》를 발매하는 1989년까지 커트를 엄마처럼 보살폈다. 앨범만 냈을 뿐, 그에겐 변변한 수입이 없던 때였다. 트레이시는 셸리와 함께 매니저와 영업사원 일까지 도맡아 하며 너바나의 미래를 밝혔는데, 커트는 그런 트레이시를 친구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여자 친구”로 소개했다. 여기서 잠깐. 셸리와 트레이시처럼 남자 친구 밴드를 위해 헌신한 시애틀 인근 여자 친구들의 생활과 관련해 그래픽 디자이너 아트 챈트리Art Chantry가 한 말을 듣고 가자.
시애틀 록 신의 많은 여자 친구들은 뉴 아트 박물관New Art Museum 건너편에 있던 스트립 클럽 러스티 레이디Lusty Lady에서 춤을 추며 남자 친구 밴드를 후원했습니다. 매춘이 시애틀 그런지 신을 지원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셈이죠. 실제 초기 시애틀 록 밴드 상당수는 악명 높은 포주들이 관리하기도 했는데, 이는 록의 지저분한 비밀 중 하나였어요.
챈트리가 얘기한 러스티 레이디에선 동그란 얼굴 이미지를 새긴 단추를 길거리에서 나눠주곤 했는데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해롱거리며” 행복해 하는 그 얼굴 로고는 나중 밴드 너바나를 상징하게 된다.
트레이시와 함께 산 올림피아에서 커트는 멜빈스 공연을 보러 다니다 친구 한 명을 사귀게 되니, 에버그린 주립대학 라디오 방송국 KAOS의 디제이였다. 커트는 이 친구를 통해 4월 17일 라디오에서 연주할 기회를 얻는다. 세트리스트는 <Anorexorcist>, <Help Me, I’m Hungry> 정도와 커트조차 제목을 기억 못한 세 곡만 다르고 나머지는 레이먼드 하우스 파티 때와 같았다. 모두 풀 버전으로 불렀음에도 녹음만 하고 방송은 되지 않은 이 자정 라이브 쇼 음원은 결국 밴드의 첫 번째 데모로 남는다.
87년 가을. ‘KAOS 데모’에 만족할 수 없었던 커트는 제대로 된 데모 테이프 녹음할 돈을 마련하려 시급 4달러를 받고 가족이 운영하는 청소업체에서 일 했다. 그러나 커트는 여기서도 비행을 저질렀다. 고객 중 치과의사들을 통해 ‘웃음 기체’라 불린 아산화질소 마시는 법을 배워 “비길 데 없는 황홀감”을 맛보았고, 직장 동료들에게선 아편에서 추출한 진통제인 코데인Codeine과 바이코딘Vicodin 훔치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대마초를 피우며 헤로인에 몇 번 더 손을 댄 커트는 코카인과 스피드필로폰도 시도했지만 그리 즐기지는 않았다. 트레이시에 따르면 이 시기 커트는 많을 땐 일주일에 다섯 번씩 LSD를 했다고도 한다. 끝내 일은 하는 둥 마는 둥, 여덟 달 뒤 커트는 직장에서 해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