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다’의 어간 ‘마시-’에 ‘-세요’를 붙여 ‘마시세요’처럼 쓰는 것은 문법적으로 가능한 표현입니다. 다만, ‘마시세요’ 보다는 ‘먹다’의 높임말인 ‘들다’를 써서 ‘드세요’처럼 쓰는 것이 바람직하겠습니다. http://t.co/MghhM7HI 국립국어원 X 2012.05.10.
한국어에서 "마시세요"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2012년 5월 10일 X(옛 트위터)에는 '마시세요'가 '문법적으로 가능한 표현'이라고 했다. 그러나 '드세요'라고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매우 많은 마시세요를 목격할 수 있다. 앞에서 말한 선생과 국립국어원의 설명에 따르면,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때, '마시세요'는 '가능한 표현'이지만, '드세요'가 '바람직'하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가능한 표현과 바람직한 표현. 이 둘 사이에서 상당한 고민이 생긴다.
구글에서 '마시세요'를 검색하면, 이렇게 많이 사용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세종말뭉치에서도 마시세요라는 표현이 들어간 문장 용례가 2건 발견된다.
한 문장은 TV 광고의 내용을 인용하는 문장이고, 다른 하나는 랍스터를 먹는 시간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대사이다.
확실한 것은 이러한 문법 사용이 '가능하지만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고, 바람직하지 않다면 가능하지도 않아야 할 텐데, 왜 가능한가라고 제 삼으면 끝도 없는 논쟁이 벌어질 듯하다.
한 가지 더.
"먹을 수 있다"라는 표현은 능력을 표현하는 것인가, 가능성을 표현하는 것인가.
어느 선생은 먹는 행동은 학습으로 이루어지는 행동이 아니고 본능적인 것이기에 '능력'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질문에 '능력'이라고 외친 내가 민망해졌다.
매운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능력인가, 가능성인가가 예시로 나왔다. 매운 음식을 먹을 시간(기회)이 있느냐 없느냐는 '가능성'으로 보이고, 그 매운 음식을 씹어 삼킬 수 있느냐는 '능력'으로 보인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고 그것을 즐겨 먹는 사람에게는 매운 음식을 먹는 것이 능력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매운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사람이 용기를 내어 먹는 것은 능력을 발휘하는 것과 다름없어 보인다.
물론, 매운 음식을 못 먹는 사람은 능력이 없어서라기보다, 본능적으로 매운맛이라는 통증(통각)을 피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매운맛'이라는 통각(통증)을 피하는 것이 본능이라면, 그것을 억누르고 매운맛(통증)을 즐기는 사람은 본능을 거스르는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닐까?
'능력'과 '가능성'.
'가능성'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찾아오는 '시간(기회)'에 해당한다면, '능력'은 가능성이 주어졌을 때 완수할 수 있는 '힘'이 아닌가.
먹는 일이 가능성의 영역이라면, 먹는 일이 본능적인 것이라면, 오히려 그러한 설명 때문에 먹는 것을 즐기는 사람은 본능에 지배당하는 사람처럼 폄하될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은 아닌가.
나는 배가 고프지만 먹지 않을 수 있다는 각오가 능력자임을 증명하듯이,
나는 배가 부르지만/그 음식을 싫어하지만 먹을 수 있다는 표현도 능력의 표현이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그는 피드백을 할 때, 음식을 접할 기회가 있는가를 묻는 "먹을 수 있어?"와 상대방의 기호에 맞지 않는 음식을 두고 묻는 "먹을 수 있어?"를 구분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가르쳐 주는 사람이기에 경청하면서도, 문득문득 의아해지는 건, 역시 내가 삐딱하기 때문인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