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진, 『글, 조각』
해를 향해 소원을 빌 수 있는
눈 마주하며 진심 어린 마음 전할 수 있는 사람 있을까
해는 그런 일을 허락해 주지 않는다
온 세상 밝게 비추지만 아니 그러하기에 감히 바라볼 수 없는 존재
그러므로 해는 신이기도 했다
존재의 보잘것없음을 위로하는 글과 노래는 언제나 사랑받는다
자신이 별인 줄 알았다던 작은 벌레의 노래가 화제가 되었듯이
우리의 존재가 사실은 대단찮았다는 서글픈 발견에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겠다는 다짐은 많은 이에게 감동을 준다
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빈다는 생각은 범박하나
달을 바라보며 품었던 소원을 드러낼 용기는 대범한 것이다
많은 이가 해처럼 별처럼 빛나기를 바라지만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한 채 햇빛을 반사할 뿐인 존재로 세상은 가득 차 있다
모두가 스스로 빛을 낸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한 조각의 어둠마저 사라져 한없이 밝은 세상이 되면
오히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어둠을 살지 않을까
자신이 내뿜는 강렬한 빛은 자신의 눈을 멀게 만들기에 충분하니까
우리가 달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것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지는 빛을 불만 없이 되비추는 달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단 한 번도 한눈팔지 않았던 달
그 겸손함과 한결같음이 우리가 달에게 진심 어린 기도를 전하는 이유일 것이다
달을 닮은 작가가 작은 책을 건네주었다
신춘문예 당선시집을 읽기 전에 선물 받은 책이었다
신춘문예 당선시집에는 똑바로 마주할 수 없는 작품들
이해하기 힘든 심사평이 빛나는 이름으로 실려 있다
태양처럼 빛나는 작품들은 대중이 볼 수 없다
대중이 볼 수 없는 글은 해처럼 빛나지만 외로울 수밖에 없다
어둠을 물릴 수 없는 은은한 빛으로 자신의 면면을 전하는
달을 닮은 글이 나는 그래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