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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킨다고 지친 것은 아니기에, 머묾이 멈춤은 아니기에

김동관, 『소나무 첼로』(목언예원, 2023)

by 정선생

기계탑 사거리에 있는 기차를 보면서 아들은 움직이는지 아닌지 궁금해했다. 나도 궁금했다. 기적 소리만 울리고 제자리에 멈춰 선 기차를 보면서, 울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생을 떠올린다. 사라진 장소와 변해버린 장소를 지나면서 끊임없이 마음에 울려 퍼지는 기적 소리는 기억이 울부짖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더 이상 그 기억을 살아 움직이게 하지는 못한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기차는 지나간 일들은 잊으라고 말한다.


기차를 움직이는 것은 맨 앞에 놓인 기관차이다. 증기였든 전기이든 띠띠뽀든 디젤이든 맨 앞 기관차가 없다면 뒤에 늘어선 차량들은 움직일 도리가 없다. 그렇다. 기관차에 매달린 차량들은 모두 기관차가 지나온 길을 따라간다. 그들은 결코 기관차를 앞질러 갈 수 없다.


울산사람들의 삶도 그렇다. 우리는 과거를 멀리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고 믿는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우리는 울산이라는 고장의 과거에 매달려 앞을 향해 나아간다. 과거는 우리 뒤에 남겨진 것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 앞을 내달리고 있다. 과거는 곧 현재이며 미래를 열어젖히는 힘찬 기관차인 셈이다.

시조 시인 김동관의 시집은 그런 것이다. 시계탑 기차의 기적 소리는 저마다의 이정표를 따라 흩어졌던 이들의 삶을 그러모은다(「시계탑 기차」). 태화강 대숲에서 자라는 대나무의 마디처럼, 우리의 인생은 적절한 간격을 두고 무심한 척, 그러나 하나의 방향으로 힘을 보태 올라간다(「침묵 바이러스」).


시조 시인으로서 그는 알고 있다. 시조는 낡은 양식이라고 말하는 것은 시조는 그 시대를 담아내는 노랫가락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데서 비롯한다는 것을(무지한 나는 그것을 신춘희 시인에게 듣고서야 알았다). 말라버린 소나무 잎의 색깔 같기도 하고, 첼로의 은은한 빛깔 같기도 한 그의 얇은 시조집은 그런 점에서 이 시대의 색깔을 담고 있다. 언제나 푸를 줄 알았던 소나무 잎이 지는 시대에(「소나무 첼로」), 그 소나무 잎의 초록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미래를 담보할 희망이라는 사실을 담담한 어조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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