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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해, 『나무늘보의 독보』(서정시학, 2024)

by 정선생

언젠가 「고래에게는 터미널이 없다」라는 시를 소개한 바 있다(https://brunch.co.kr/@mrdrjr/565). 울산문인협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권영해 시인이 2024년 겨울 『나무늘보의 독보』라는 시집을 냈다. 게으름으로 찾아서 읽지 못했는데, 놀랍게도 사무실 우편함에 와 있어서 읽을 수 있었다.


나무늘보.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동물이다 싶다가도, 빠른 속도에 지친 이들이 갈망하는 존재가 아닌가도 싶었다. 공교롭게도 나무늘보를 마스코트로 내세우는 I.O.B라는 레스토랑이 떠올라, 바쁘게 달려가고 있는 울산이 나무늘보의 걸음을 배우는 도시가 되기를 바라본다.


권영해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 나무늘보와 함께 포착한 존재들은 민달팽이와 무당거미, 뱀, 연어, 낙타 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1부를 채우고 있는 나무늘보와 민달팽이는 이 시집의 주연이라고 볼 만하다.


어찌 보면 그들은 위태롭게 자신만의 속도로 이 세상에 자취를 남기는 존재들이다. 홀로 걷는 걸음은 위태롭다고 말하며 연대를 강조하는 시대이지만, 그럼에도 결국, 우리는 이 세상을 홀로 걸어갈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다. 무조건 곁에 있는 이에게 기댈 수만은 없는 일. 나 자신을 오롯이 견딜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함께 걷는 걸음(연대)도 가능한 것일 테니 말이다.


시인은 분명 '독주獨走'가 아닌 '독보獨步'를 말하고 있다. 우리는 독주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나 혼자 산다고 말하던 시대에서 나 혼자 잘 살면 되는 시대로. 나 혼자 잘 산다는 의미가 유유자적보다는 무혈이든 유혈이든 경쟁 우위에 서는 것임을 부정하기가 쉽지 않다. 무해한 존재들을 향한 긍정은 결국 내가 가는 길에 방해되지 않는 존재를 갈망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시인은 느린 속도로 자신의 길을 가는 독보적인 존재들을 긍정한다.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바로 스펙이 된다"(「독보적」, 13)는 나무늘보처럼, 내가 가는 길에 관해 "늘 확고한 소신이 있"(40)어서 "속도를 버리고 방향 하나로 우주의 모든 것과 내통"(41)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세상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려 안간힘을 썼지만"(「길 위의 자서전」, 17) 결국 압사하고 만 민달팽이가 사실은 "스스로 길이 되었다"(17)는 사실을 깨닫는 경지를 추구하고 있다.


이제는 원로라고 부를 수도 있을 권영해 시인의 작품은 젊은이들에게는 여유롭게 관망할 수 있는 자리에 선 자의 공허한 가르침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깨달아야 할 것 같다. 우리가 아무리 빨리 달려도 나무늘보의 걸음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오히려 아무리 느리게 걸어도 나무늘보는 이미 우리를 지나쳤다는 사실을. 나무늘보는 전혀 다른 '깊이'(39)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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