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倒置也道致.

최영순 글·김희진 그림,『도치야』

by 정선생

너무 많은 ‘다툼’이 우리 주변에서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 다툼은 대체로 신 앞에 평등한 존재임을 망각한 채, 자기 힘으로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만들어가려는 오만한 폭력에서 비롯한다.


‘다름’을 인정하는 일.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면서, 가장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다름’을 인정한다면 ‘다툼’도 사라질 것임은 자명한 일. 어린이에게 ‘다름’의 가치를 계속해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어른의 세상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일에 서툴기만 하고, 때로는 그것이 무가치한 듯이 보인다.


최영순 글, 김희진 그림의 『도치야』는 ‘다름’을 인정하는 일에 ‘용기’라는 키워드를 내놓는다. 자신이 상처받았음을 인정하는 용기, 자신의 다름을 인정하는 용기, 다른 사람의 용기를 받아주는 용기. 그런 용기들이 모여 ‘다름’은 서로를 향한 ‘다다름’으로 탈바꿈한다.


물론, 그러한 ‘용기’를 끌어내는 데에는 상처받더라도 포기하지 않을 용기, ‘사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신은 보통의 존재가 아니라며 상처받은 이의 반항과 방황을 끝까지 지켜줄 수 있는 변함없는 사랑이 있을 때, 그를 믿어주는 단 한 사람이 있을 때, 그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용기, 다른 사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용기, 서로를 향한 오해를 풀고 다가설 용기를 가질 수 있다.


글과 그림이라는 각각의 표현이 조화를 이루면서 그림책은 하나의 가치를 실어나른다. 한때 그림책은 ‘그림’ 때문이었는지 아이들을 위한 책처럼 여겨졌지만, 아이들을 위한 책을 고르는 주체로서 어른들은 그림책의 적극적인 독자가 된다. 어른들의 마음을 먼저 움직이는 그림책이야말로 진정으로 어린이를 위한 매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듯하다.


아니, 어른의 마음을 먼저 치유하는 그림책이라면, 아이에게까지 읽힐 필요가 있을까? 아이는 이미 어른을 보며 아름다운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을 텐데. 그림책이 필요 없는 세상, 온 세상이 그림책처럼 아름다운 순간이, 어쩌면 그림책이 꿈꾸는 역설적인 운명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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