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모성 3
어머니와 아주머니, 비[非] 여성적 여성들
최초의 해외여행이자 비행기 탑승은 싱가포르로 떠난 신혼여행이었다. 싱가포르에서 모든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던 날, 창이 공항의 화장실에서 나이 많은 청소부를 보았다. 나는 그가 남자였다는 사실에 굉장히 놀랐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남자화장실을 청소하는 남자를 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화장실 청소 중'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어서 놀라는 일이 적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건물에서는 그런 표지판을 사용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지방이라 그런지 몰라도 말이다. 아무튼 다양한 연령의 아주머니들께서 "남자화장실 청소"를 하고 계신다.
사실 남자화장실과 여자화장실은 성별의 구분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예시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그것은 엄격한 구분이기도 해서, 결코 다른 이성이 들어갈 수 없어야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화장실이라는 공간이 변태적 성범죄가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장소인지도 모른다. 결코 넘나들 수 없는 금기의 장소가 일그러진 욕망을 생성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금기를 깰 수 있는 유일한 예외가 바로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 남자화장실에 들어가서 남자들의 소변과 대변의 지저분한 흔적을 치우는 경우다.
남성과 여성에 대한 여러 불평등을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다방면에서 울려 퍼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화장실을 청소할 남성 청소부를 고용해 달라는 문제에 대한 요구는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현재의 여성 청소부들의 일자리나 임금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일자리 형태가 여성 청소부를 '무성적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서 청소부의 대명사는 '청소하는 아주머니'인 것 같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는 '경비원 아저씨'를 들 수 있는데, 그나마 경비 아저씨는 "남성"이라는 성별을 엄격히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반대로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에게서 "여성"을 발견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아주머니'는 '어머니'와 같이 남성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여성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존재를 가리키기 때문인 것 같다. 특히 모성적 존재로서 어머니는 여성의 매력은 제거된 채, 보살핌의 역할만 강요당한 존재이다.
청소하는 아주머니의 모습은 놀랍게도 어린 시절부터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해 왔던 어머니의 모습과 똑같다. 우리 사회에서 어머니는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뿐만 아니라, 사회라는 공적 영역에서도 무성적 존재로서 온갖 허드렛일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아머니와 아주머니는 '여성'이 아니기에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라는 착각, 어머니는 모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가장 저열하고 지저분한 일도 기꺼이 감내할 수 있으리라는 고정관념이 우리 사회에서 남성 청소부가 남자화장실을 청소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도록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여성을 생산성을 갖춘 여성과 그렇지 못한 여성으로 나누어 사고하는 것은 과연 타당한 것인가. 물론 그것은 자연적인 법칙에 따라 살아가던 원시적 상태에서는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는 문명이다. 문명은 인공적인 구조물이며, 따라서 그것은 자연과는 철저하게 다른 법칙으로 유지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성의 모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최초의 인간들이 공유했다고 말하는 위대한 어머니 여신의 두 대극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어떻게 하면 건강한 방식으로 되살릴 수 있을까. 이 고민은 여성과 모성에 대한 고민이 나아갈 최종적인 지점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