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

그 사람, 그 남자, 그 여자

by 정선생

'피[彼]/피녀[彼女]'라는 일본어는 영어의 he/she에 대응하는 말이다. 이 표현은 1920년대 근대소설의 주요 특징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일본으로부터 수입된 근대문학의 '형식'이 우리 문학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시기이기 때문이다. 염상섭의 소설에 등장하는 이러한 표현들은 일본 유학을 통해 접한 근대적 문학 양식을 그가 민감하게 받아들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페미니즘 이론에서 남녀불평등(성차별)의 문제는 '언어'와 관련하여 지적되어 왔다는 점과 위의 번역어의 사용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페미니즘에서는 언어를 바꾸는 일이 선행되어야만 의식을 바꿀 수 있다고 본다. 즉 여성의 권리를 위한 언어가 생산되어야 하고, 불평등을 없애기 위한 언어의 재정비도 이루어져야 한다. 최근 '시댁과 처가' '아가씨와 처제' '도련님과 처남'을 둘러싼 문제제기와 이를 위한 권고안 마련의 필요성 제기가 대표적인 예시라고 볼 수 있다.


한자에서는 사람[人], 남[男], 여[女]를 각각 다른 모양으로 만들고, 이 단어가 의미하는 바도 다르다. 그리고 한국어에서 말하는 사람과 사내, 계집(:겨집)도 성차별적 의미를 떠나 각각의 단어가 겹치지 않고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다. 그러나 영어에서는 man과 woman의 구분이 있고, 인간과 인류를 뜻하는 단어는 man, human, mankind로 모두 man을 활용한 형태를 띠고 있다. 심지어 여성을 뜻하는 단어 역시 결국은 남성을 뜻하는 단어에 접두사가 붙은 형태이다.


흔히 동양의 사회가 위계적이고, 권위적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도 그러한 관계가 만연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존 스튜어트 밀의 <여성의 종속>을 읽어보면, 근대 초창기의 유럽(영국) 여성들의 삶이라는 것은 비참하기가 그지없었다. 바꾸어 생각해 보면, 페미니즘 운동이 서양문화권에서 먼저 태동한 것은 그곳의 여성들이 동양의 여성들보다 훨씬 선구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삶이 이른바 후졌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동양은 그렇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그랬다고 말하고 싶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일만한 정서적 토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서양철학보다 동양철학이 조화와 공존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의 근대 역시 서양의 총포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근대는 곧 서구화를 의미하고, 닥치는 대로 받아들인 서양의 문화는 결국 언어의 양상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것이 '그 남자', '그 여자'가 아닌, '그'와 '그녀'라는 인칭대명사의 사용이며, 어쩌면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종업원과 여종업원, 승무원과 여승무원 따위의 불편한 언어들이 생산되었는지도 모른다. 놀랍게도 그것은 waiter/waitress, actor/actress와 같은 영어식 성별 구분의 흔적과 닮아 있다는 점이다.


형태가 달라서 느끼는 불평등보다, 어떤 것의 복제품이라는 느낌이 더 불편하게 마련이다. 영어식 표현에서는 확실히 '남성'을 뿌리에 두고, 그것을 변형함으로써 '여성'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아담의 갈비뼈로 이브를 만들었다는 성서의 내용이 그대로 대입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요즘은 "이런 말을 써도 되는 건가?"라는 식의 강박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러나 해당 언어 자체는 아무런 성차별을 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언어가 소비되는 환경이 그리고 그 언어를 둘러싼 담론이 성차별적이라면, 그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어를 바꾸어야 할까, 아니면 언어를 사용하는 인식을 바꾸어야 할까. 나는 그 답을 확실하게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초등학생에게 '바른말 고운 말' 강의를 수차례 나가면서도, 욕설을 쓰지 못하게 막는다고 해서 그들의 마음까지 올바르게 만들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은 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주어진 삶의 형식들은 여전히 그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차별을 없애기 위해서 언어를 정비하는 것은 좋은 일이고, 또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일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를 들어서 무조건 보여주기 식의 언어 정비만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우리가 수천 년 수백 년 동안 쌓아왔던 문화를 갈아엎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 수도 있다. '여선생'을 그저 '여성인 선생'으로 발화할 수 있는 의식을 심어주는 조기교육, 여성과 남성이 똑같다는 잘못된 평등보다는, "여성과 남성은 다르다. 다른 것을 같게 만들려고 할 때, 폭력이 발생한다"라는 사실을 가르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여성에게 내(우리와 사회)가 생각하는 여성과 같아지라고 강요할 때, 남성에게 내가 생각하는 남성과 같아지라고 강요할 때 폭력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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