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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햇살 Mar 16. 2022

윙윙윙 깔깔깔





온종일 비가 올 듯 말 듯하더니 날이 저물자 어둠과 함께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굵은 빗방울이 창문을 세게 두드렸다. 불이 꺼진 작은방. 동화책이 바닥에 이리저리 흩어져있고 창문 옆 작은 침대에는 연서가 눈을 꽉 감고 누워있다. 작은 몸을 한껏 모아 동그랗게 웅크린 채다. 자신이 이 방에 있는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느낌으로 알고 있었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주변의 존재들을 온통 느낄 수 있었다.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것들을 오직 연서만이 느꼈다.


한편 연서의 부모는 외출 준비로 바빴다. 연서의 엄마는 얇은 코트를 걸쳤다. 거울 앞에 서서 갈색 스카프와 옥색 스카프를 대보고 있었다. 누워있던 연서의 아빠가 느릿하게 일어나 게으른 걸음으로 옷장으로 향했다. 단정하게 걸린 옷 중에 손이 가는 대로 아무거나 골라 들었다. 칙칙한 회색 바람막이에 팔 한쪽을 막 넣는데 어쩐지 연서 엄마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녀가 핀잔을 주며 하얀색 경량 패딩을 건넸다. 이러나저러나 똑같은 것 같은데 까다롭게 구는 그녀가 이해가지 않았지만 여기서 한 마디 더 해봤자 싸움만 나리라 생각한 연서 아빠는 입을 다물었다. 거울에 비친 흰 패딩을 입은 스스로가 의외로 마음에 들었다. 연서 엄마가 안방에서 나와 연서의 방문을 열었다. 푸르스름하고 어두운 방 안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이 느껴지는데도 연서는 여전히 눈을 꽉 감고 있었다. 조그만 두 손은 이불을 꽉 쥔 채였다.


“연서야, 일어나.”


익숙한 엄마 목소리다. 참고 있던 숨을 뱉었다. 연서는 이불을 걷어차고 엄마에게 뛰어갔다.


오늘은 연서 아빠의 친구가 횟집을 오픈하는 날이었다. 축하할 겸 여는 친구 모임에 가야 해서 그렇게 분주했던 거다. 처음 보는 횟집에 연서의 눈이 동그래졌다. 바닷가에 줄지어 장사하는 이 동네 횟집 중 가장 크고 화려했다. 가게 앞에 늘어선 수조에는 책에서나 보던 물속 친구들이 가득했다. 연서보다 훨씬 큰 어른들이 가게 안을 꽉 채우고 있었다. 손님들이 여기저기서 부르는 통에 직원들은 정신없이 움직였다. 연서의 가족은 2층으로 안내받았는데, 한쪽이 통유리로 되어있어 밖이 훤히 내다보였다. 그중에서도 바다가 가장 잘 보이는 방에 자리를 잡았다.


아빠의 친구라는 사람이 하얀 옷을 입고 방으로 들어왔다. 연서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연서는 엄마 뒤로 숨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땅만 쳐다보자 엄마와 아빠는 얘가 이렇다며 하하 호호 웃었다. 어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연서는 발가락을 꼼지락,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처음 보는 것이 이렇게 많은데 얌전히 앉아있을 수 없었다. 그중에서도 연서는 가게 앞의 수조가 자꾸 생각났다.


“엄마, 나 저기이…”


엄마의 옷깃을 잡아당겼지만 주변이 시끄러운 탓에 연서의 말이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연서는 열린 방문을 지나 바닥에 가득 늘어져있는 신발 사이 가장 작은 노란 신발을 찾아 신었다. 어수선한 횟집 분위기 속에 연서가 자리를 뜨는 것을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1층으로 내려가는 내내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사람의 말이 아니었다. 소리도 아니었다. 연서만이 들을 수 있는 그것은 소리라고 하기엔 온 공간이 진동하는 것 같았고, 느낌이라고 하기엔 부족했다. 연서는 진동의 진원지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때였다.


‘무서워.’

‘무서워.’


가게 입구의 수조 쪽에서 소곤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야?’

‘생지옥.’


점점 더 많은 존재들이 동시에 말하기 시작하는 게 느껴졌다. 연서의 심장이 웅웅 울렸다. 수많은 목소리가 섞여 울리던 중에 누군가 크게 말했다.


‘시간 없어, 빨리!’


연서는 고개를 휙 돌렸다. 그 말을 한 존재가 누구인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연서와 은색 비닐로 덮인 생물의 눈이 마주쳤다. 눈이 희뿌연 농어였다. 수조 근처에 갈수록 그들의 이야기가 또렷하게 느껴졌다. 가까이 갈수록 더 명확하게 들렸다. 수조 앞에 선 연서는 농어와 다시 눈이 마주쳤다. 농어가 눈을 껌뻑껌뻑 하더니 연서를 똑바로 쳐다봤다.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돌더니 다른 존재들에게 가까이 가 다시 입을 뻐끔뻐끔했다.


‘정신 똑바로 차려.’

‘지금 나가야 돼.’

‘너무 무서워.’

‘비가 이렇게 오는 날이 자주 오는 줄 알아?’

‘겁쟁이들아. 멍청하게 있다가 먹히고 싶지 않으면 움직여.’


그들은 쉬지 않고 수조 안을 돌아다녔다. 한자리에서 뱅글뱅글 도는가 하면 수조 전체를 헤집으며 정신없이 움직이는 존재도 있었다. 몇몇은 수조에 계속해서 몸통을 부딪쳤다. 그중엔 눈이 희뿌연 농어도 있었다.


‘그만! 다들 그만 돌고 잘 들어. 동시에 부딪쳐야 돼! 수조가 깨지면 바로 뛰어내려. 망설이면 안 돼. 내가 앞에서 바다로 가는 길을 찾을게. 뒤따라 오는 무리는 다른 수조에 갇힌 존재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탈출했는지 전해줘.’


연서는 농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비 오는 날이면 말하는 생물들을 수도 없이 봐왔지만 그렇게 또렷하게 말하는 존재는 처음이었다. 연서는 농어를 따라 움직였다. 수조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두 번을 왔다 갔다 한 농어는 연서 앞에서 멈췄다.


‘너, 내 말이 들려?’


연서의 심장이 또 웅웅하고 울렸다. 심장은 크게 부풀었다가 작아지고 다시 크게 부풀기를 반복했다. 연서는 인간이 아닌 존재가 말하는 방식으로 답하는 법을 아직 몰랐다. 대신 만지면 말이 전달될까 싶어 까치발을 높이 들고 손을 위로 쭉 뻗었다. 수조의 끄트머리에 손이 닿았다가 미끄러졌다.


“연서야!”


아빠 친구가 연서를 보고 다가왔다.


“물고기가 먹고 싶었으면 말을 하지. 위험하니까 아저씨가 꺼내줄게.”


연서는 고개를 힘껏 저었으나 말릴 새도 없이 그의 손이 수조 안에 풍덩 침입하여 유리벽을 두고 연서 앞에 있던 농어를 끄집어냈다. 그는 온몸을 필사적으로 파닥이고 있었다.


“펄떡거리는 걸 보니까 제일 싱싱한 놈인가 보다. 아저씨가 잘 골랐지?”


아빠 친구가 자랑스레 농어를 들어 보이며 연서를 쳐다봤다. 그러나 연서는 대답할 수 없었다. 농어의 비명이 들렸기 때문이다. 그가 펄떡이는 건 싱싱해서가 아니라 극도의 공포 때문이었다. 수조 속 생물들이 아우성치는 소리도 들렸다. 연서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그들의 두려움과 혼돈을 연서는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손이 떨리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몸이 굳어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도와줘.’


연서가 농어를 쳐다봤다. 물속에서는 천천히 춤추던 아가미가 지금은 빠른 속도로 헐떡이고 있었다. 그의 눈이 연서를 똑바로 쳐다봤다.


“아저씨!”


겁에 질린 공포가 그대로 묻어나는 비명 같은 목소리였다. 아저씨는 깜짝 놀라 들고 있던 농어를 놓쳤고 그는 그대로 바닥에 철퍽하고 떨어지고 말았다. 그의 피가 아저씨의 하얀 옷에 튀어 아주 새빨간 자국을 남겼다. 수조 안이 온통 웅웅하는 진동으로 가득 찼다. 땅에 던져진 그의 숨이 가빠질수록 수조 속 생물들이 만들어내는 진동은 거세졌고, 연서 주변의 모든 공기를 일렁이게 했다. 일순간 굉음과 함께 수조가 터지며 안에 있던 생물들이 물과 함께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가게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밖을 쳐다봤다. 물 생물들은 하늘을 날으고 땅으로 떨어졌다. 깔깔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한 번도 수조 안 존재들에게 표정이 있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존재들이 헤엄치며 지느러미로 물을 탁탁탁 치는 소리가 사람들에게는 마치 깔깔대는 웃음소리처럼 들렸다. 바닥은 금세 물 생물로 가득 찼고 수조에서 터져 나온 물과 소낙비가 모여 물길을 만들었다. 농어도 물길에 섞여 들었다. 존재들은 힘차게 몸을 움직여 한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꼬리를 무는 행렬이 거대한 고래처럼 보였다. 농어는 빠르게 움직여 어느새 선두에서 이들을 이끌었다. 뒤따르는 존재들은 아직 터지지 않은 수조를 향해 저마다 큰 소리로 말했다.


‘뛰어들어! 수조를 확 부수고 나와!’


비가 거세졌다. 얕은 물에서 몸의 힘으로만 움직이던 존재들을 비가 감싸자 그들은 물의 흐름을 타고 더 빠르고 부드럽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연서는 멀어져 가는 존재들을 쫓아 뛰다가 빨라지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제자리에 섰다. 그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지만 웅웅 거리는 그들의 소리를 심장으로 들을 수 있었다.


‘바다로, 가자.’


점점 더 많은 존재들이 웅웅거렸다. 사람의 발걸음으로 빼곡했던 골목이 물로 가득 차고 물살이 점점 거세졌다.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난 어른들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봤다.




“연서야!”


엄마의 목소리였다. 온 공간을 가득 채운 채 웅웅 거리던 진동이 사그라들고 심장은 조용하게 뛰고 있었다. 엄마가 연서의 어깨를 잡고 자리에 앉혔다. 여전히 열려있는 문을 등진 채 식탁의 맨 끝에 앉은 아빠 친구가 보였다. 빨간 피는 온데간데없이 여전히 새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바다의 기술자이자 물고기들의 왕이라고 소개했다. 자리에 앉아있던 어른들은 깔깔 웃으며 좋아라 했다. 연서는 식탁 위에 누워있는 눈이 희뿌연 농어를 발견했다. 아직 졸음이 가시지 않은 채 반쯤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소리 없이 말하는 법을 몰랐기에 무작정 손을 뻗어 반가움을 표현하려 하는 순간, 연서의 팔목을 엄마가 붙잡았다. 눈이 희뿌연 농어의 몸통은 흰옷을 입은 아저씨에게 붙잡혔다. 끝이 뾰족한 칼이 농어의 머리를 댕강 자르자 모두가 깔깔깔 손뼉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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