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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Rio May 08. 2023

그래도 괜찮아.

불안 아줌마의 불안증 투병기 17

어린이날부터 삼 일간 연휴 동안, 우리 가족은 좀 쉬기로 했다. 4월 중순부터 매 주말마다 여러 가지로 바빴기 때문이다. 계속 비가 내리고 바람 불고 하늘도 찌뿌둥해서 집에서 쉬기로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얼마 전부터 수영하고 싶다는 딸아이의 성화에 어린이날에 여는 동네 수영장을 찾아서, 한 시간 정도 오랜만에 수영을 하고 오기도 했고 아이가 좋아하는 조개찜을 먹으러 가기도 했다. 그렇게 몸이 편한 삼일을 보냈지만, 5월 8일 새벽, 아이가 "엄마 아파...." 하며 깨웠다.



놀라서 열을 재어보니 38.9도.... 아이는 열감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있었다. 물을 좀 먹이고 약을 먹게 하고 수건을 이마에 대어주고 거즈에 물을 묻혀 입술과 얼굴을 닦아주었다. 목과 코가 심하게 부었는지 얼굴에는 열이 펄펄하지만 몸은 차가웠다. 이불로 몸은 따듯하게 해 주고 얼굴은 수건을 갈아 닦아 주면서 열이 내리기를 기다렸다. 

"아무래도 오늘 학교는 못 가겠다. 아침에 병원 가자."

"... 응..."

아이는 힘든 지 겨우 답을 하고 눈을 감았고, 안정되는 것을 보고 방을 나왔다.



하늘은 조금씩 밝아지고 있지만, 졸려서 침대에 누웠다. 그리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지? 내일 할 일이 있는데...'

전형적인 J인 나는 매일, 매주, 매달의 계획이 있다. 하지만 그간 '조금은 천천히 해도 괜찮아..'라는 심정으로 템포를 조절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5월엔 쉬는 날이 워낙 많고(프리랜서에게는 빨간 날이 없지만, 가족들은 쉬니 까만 날에는 조금 더 긴장해서 일을 해내야 한다..), 더 일정이 늦어지면 일이 너무 밀릴 거 같았다. 그래서 이번주부터는 차근히 일을 해 내가 보려 했는데, 아이가 아프다.


예전 같으면, 불안하다가 짜증으로 치밀어 오르고 미리 해두지 않은 죄책감에 사로잡혔다가 화가 났을 거다. 그렇다고 아픈 아이에게 화를 낼 수는 없으니, 그거 참느라도 더 에너지를 쓰곤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깜박 잠들었다.



쪼르르륵...


멀리서 물을 따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깬 거다. 순간 생각할 겨를 도 없이 걱정스러운 마음에 벌떡 일어나서 "괜찮아?"하고 물으며 아이에게 서둘러갔다.

"아파... 근데 잠이 안 와..."


아이의 머리를 짚으니 새벽보다는 열이 내렸지만 아직 열감이 있다. 그리고 시계를 보니 겨우 한 시간이 지났다. 순간 졸렸지만, 아이가 먼저다. 체온계로 열을 재고 아직 시간이 얼마 안 되어서 약은 먹을 수 없다고 말해줬다. 그리고 따듯한 코코아를 끓어줬다. (꿀물은 절대 안 먹는 신기한 아이인 지라, 코코아가 그나마 마시는 유일한 따듯한 음료다.) 한 결 나아진 표정으로 코코아를 들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유튜브를 튼다. 그리곤 미안했는지, "엄마 가서 더 자..."라고 말해준다.


그래, 어차피 내 책상은 거실에 있고 거실 한가운데 앉아서 유튜브를 보는 아픈 딸냄을 무시할 수도 없으니 조금 더 누워있자는 생각에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오늘 하루 어떻게 할지 생각했다.

 


우선 아이 아침밥과 약을 챙겨줬다. 그리고 아프면 이불로 온몸을 둘둘 말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견디는 아이이니, 내가 거실에 있지 않으면 될 거 같다. 다행히 이제는 많이 커서 아프다고 징징대며 엄마를 찾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대문에 깬 엄마에게 미안해하기도 할 만큼 이해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거실에 놓여있던 컴퓨터와 모니터 등등을 모두 남편 방으로 옮겼다. 그러고 보니 생각보다 꽤 괜찮은 자리가 만들어졌다. 내가 계획한 대로 되지는 못하더라도, 이렇게 차선책으로 일을 하면 될 거 같다.

이렇게 스스로를 다독이고 문제를 풀어내면서 아이의 담임 선생님께 문자를 보내고 아이와 병원 갈 시간도 정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대견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아프기도 하고 일이 생긴다. 그래서 나의 상황이 너무 답답하고 이런 감정이 드는 나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그리고 그 감정에 압도되어서 현실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은 아이가 많이 큰 덕분이기도 하지만, 계획이 틀어지면서 갖게 되는 그 감정에 매몰되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씩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하나씩 해결했다. 물론 오늘이 지나 봐야 내가 잘 해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은 뿌듯하다. 그리고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풀어내고자 한 내가 자랑스럽다.


SNS에 며칠전 딸이 학교에서 만들어온 카네이션 꽃 바구니 사진과 함께 이렇게 썼다.


"어버이날이라고 엄마랑 하루종일 같이 있고 싶구나!"


그래 어버이날에 딸과 하루종일 함께 있는 것도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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