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혼잣말 01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당산팔육 Nov 19. 2019

나이 듦에 대하여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자연의 순리이나, 자연을 모르고 사는 것처럼 나이가 드는 것도 모르고 살았다. 나는 이제 산술적으로 서른다섯 살의 중년이 되었다. 다만 그 숫자는 언제 들어도 별다른 감흥을 주지 않는다. 스물아홉이 되었을 때도, 결국 서른이 되었을 때도 그랬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졌지만 나는 아직도 나이를 실감하지 못하겠다. 내가 유일하게 그 실체를 깨닫게 되는 것은 지금 19학번에게 나는, 내게는 89학번에 해당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대학에 들어왔을 때 상상하던 89학번은 머리가 희끗하고 남이 구워주는 고기를 먹으며 사춘기 아들을 걱정하는 아저씨였다.


그러나 이를 제외하고는 나이가 드는 것의 정체를 아직은 잘 모르겠다. 수능이 끝난 직후 이사를 하며 빈 집을 친구들과의 아지트로 만든 적이 있었다. 추운 겨울 전기장판과 빗자루를 싸매고 문현동으로 향하던 그날의 나는 여전히 지금의 나를 형성하고 있다. 그 아이가 결혼을 했고 그 아이가 아이를 가졌다. 마치 그 아이가 양복을 빌려 입고 89학번이 된 것처럼 어른 놀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최대의 지식이 2008년 군대에서 배운 한글 97이라는 점에서 지식의 축적으로도 나이를 실감하기 쉽지 않다.


그러다가 내가 중년이 되었음을 깨닫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예전에는 인턴이 회사에 오면 오래전 신림동이 생각났다. 종점으로 복귀하는 버스들처럼 잠을 자기 위해 하숙집으로 향하던 그 비루한 언덕이며 쓸쓸한 표정이 인턴과 함께 내게 인사했다. 불확실한 미래와 다투고 있을 그 친구들의 수줍은 인사가 그날의 신림동처럼 측은했다. 그런데 이번에 인턴이 왔을 때는 서하가 내게 인사를 했다. 아빠 이만큼 컸다고. 아빠처럼 멀리 돌지 않고 한 번에 왔다고. 그 명랑하고 슬픔이 없는 인사가 기특하여 나도 모르는 새 중년의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나는 서하를 키우면서 많이 변하게 될 것 같다. 아빠 엄마가 이름을 잃었듯이 지금까지의 나를 조금씩 잃어가게 될 것 같다. 늘 아무렇지 않은 문현동 친구들과의 만남도 특별해지는 때가 올 것이다. 아빠가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했을 때처럼. 그것이 슬픔이 되지는 않는다. 다만 그리움이 될 수는 있다. 문현동과 신림동의 나는 더 이상 나의 옛날을 형성하지 못할테니까. 그래서 기록하기로 한다. 나의 현재이면서 나의 옛날을. 그래서 빈집의 아이는 양복을 입고 한글 97로 쓰기로 한다. 나이 듦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