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非難)은 '어렵지 않다'
멘토링과 컨설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의 일이다. 세대융합 창업지원사업이라는 것이 있다. 신중년 전문퇴직자와 청년 창업자를 매칭하여 서로의 장점을 활용하는 제도이다. 시니어에겐 전문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주고 청년 창업자에겐 사업화에 대한 조언을 구할 수 있으니까 어찌 보면 아주 좋은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지금도 일부 기관에서 실시하고 있다.
주관 기관에 등록을 하고 매칭이 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창업한 지 2년 된 30대 청년 사업가였고 마케팅 홍보 분야에서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근무 첫날, 회사 상황을 파악하고 그동안 진행했던 작업과 계획에 대해서 토론했다. 아무래도 스타트업이다 보니까 보완해야할 점이 많아 보였다. 그래서 평소대로, 아주 자연스럽게 지적질을 해댔다. 이제 창업한지 얼마 되지 않아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이 당연한데도 말이다.
그 다음날 매칭을 취소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순간 매우 당황했다. 아니 이럴 수가? 나의 도움이 많이 필요할 터인데 그렇게 한다고? 이렇게 해서 첫 번째 매칭은 실패로 끝났다. 지적질의 즐거움(?)을 누리다 낭패를 본 것이다. 청년 창업자의 경우 지적 받으려고 멘토링을 받는 것이 아니다. 사업화에 도움을 받으려고 했는데 지적을 해니까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이 일이 내게 실패를 안겨줬지만 한편으론 나에게 큰 경험이 됐다. 이후엔 단점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장점을 발견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제일 원칙으로 삼고 있다.
창업 멘토 교육에 참여하면 자주 강조되는 것이 ‘나 때는’과 ‘지적질’에 대한 경고이다. 그리고 퇴임 후에 바로 멘토링에 참여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대기업에서 근무한 사람일수록 스타트업을 보면 지적을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 퇴직하고 어깨 힘 빼는 데 2년이 걸린다는 말까지 있다. 충분히 공감한다고 생각했는데 현장에선 잘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회의를 할 때, 내 의견을 미리 말하지 않으려 혀를 깨물었다." 전문가로 꾸려진 국책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분의 소감이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아는 것을 꾹 참고 말을 안 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스마트하고 성공적인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나 제안을 바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세상을 향해 자신이 얼마나 스마트한지 말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비난(非難), 한자 뜻풀이를 하면 '어렵지 않다'는 뜻이다. 여기엔 깊은 뜻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어렵지 않게 ‘남의 잘못이나 결점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함’을 행할 수 있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게 비난이다. 무엇보다 비난은 문제 해결보다는 책임을 묻는 데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건설적인 대화와 협력을 저해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흠결을 지적하고 비난하는 것을 큰 발견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리더십 분야의 권위자인 마셜 골드스미스의 에피소드이다. 대학원 시절, 교수와 함께 한 대도시 정책에 관해 자문하는 일을 맡았는데 지적질을 마구 해대자 지도 교수가 이렇게 말했다. "그 정도는 나의 단골 이발사도 잘 알고 자주 말하는 것들이다." 이 때의 대화가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고 한다. 골드스미스의 말을 빌려 결론을 내고자 한다. “진정한 리더는 잘못을 지적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누구든 그 정도는 할 수 있다. 진정한 리더는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사람이다.”
; 광주일보 은펜칼럼(24.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