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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포 Jan 22. 2021

사진 한 장의 위력, 대통령과 막걸리

술을 활용한 대통령 이미지 PR

대통령의 웃는 사진 한 장이 뭐 그렇게 효과가 있었을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진 한 장의 위력은 대단했다. 이미지를 바꾸는데 가장 효과적인 도구라고 할 수 있다.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 세력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박정희의 새로운 이미지 만들기에 고심했다. 경직된 군인의 이미지에서 서민적이고 소박한 성격의 인물로 바꿀 필요가 있었다. 아마 버네이즈 사례가 연구되지 않았나 싶다.


196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 주요 산업은 농업이었다. 농사일을 할 때는 새참과 함께 막걸리를 마신다. 이것을 활용했다. 최고회의 의장 시절인 1962년 6월 경기 김포에서 모심기를 하고 논두렁에서 농부와 막걸리를 마시는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직접 현장을 찾아 돈두렁에서 막걸리는 마시는 지도자, 얼마나 서민적이고 따뜻한 모습인가? 이러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펼쳤다.


<최고회의 의장 시절의  논두렁 막걸리 사진 (1962년) / 자료 : 중앙일보>


이렇게 이미지 변신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1963년 5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는 윤보선 후보를 득표율 1.5%, 표 차 15만 6,026표라는 초박빙 접전 끝에 꺾고 당선되었다.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적은 표 차이다.


서민적이고 소탈한 이미지를 주는데 막걸리만 한 것이 없다. 함께 막걸리를 마시는 장면은 누가 봐도 흐뭇하다. 이때 이후 박정희 대통령이 막걸리 마시는 사진은 자주 등장했다. 박정희가 좋아했던 막걸리가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1979년 궁정동 파티에서 마신 술이 시바스 리걸이라는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막걸리를 즐겼다. 특히 봉하마을에서 방문객과 격의 없이 막걸리는 나눠 마시는 장면은 평소 소탈한 성격을 잘 보여준다. 무릎을 꿇고 막걸리는 따라주는 장면은 쉽게 나올 수 있는 장면이 아니다.


<2008년 4월 봉하마을 / 자료 : 한겨레 2019-05-18>


명박 대통령은  "나는 막걸리 국제홍보팀 팀장"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때마침 막걸리 붐이 일어나 정부에서도 적극 지원하는 참이었다. 그는 막걸리뿐만 아니라 폭탄주도 자주 활용했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전통주를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주류는 통제의 대상이었지 육성은 대상은 아니었다.  이때부터 전통주 지원이 정책적으로 활발하게 이뤄졌다.  


<자료 : SBS 8시 뉴스(2009-10-15 )>


문재인 대통령도 술을  적절하게 활용했다. 퇴근길 맥주 미팅이 바로 그것이다.  전통의 막걸리에서 맥주로 이동한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2019년 11월 여야 지도자를 청와대로 초청해 '막걸리 곁들인 만찬'을 갖고 대화를 모색했다.  


<자료 : 한겨레 신문 :2018-07-26>
<자료 : /뉴스데스크/MBC 2019.11.10>





대통령을 웃겨라!


미국 30대 대통령 캘린 쿨리지(Calbin Coolidge)의 별명은 '침묵의 칼(Silent Cal)'이었다. 부통령으로 있다가 29대 대통령 워렌 하딩의 갑작스러운 유고로 잠자다가 대통령이 된 인물이다. 고향집에서 잠자다가 느닷없이 대통령 승계 통지를 받았다. 워렌 하딩은 깜냥이 안 되는 인물이었지만 “대통령처럼 생겼다”는 이유로 대통령에 당선된, 그야말로 문제 인물이었다. 이때부터 사람의 외모와 감성만 보고 판단할 때 발생하는 오류를 '워렌 하딩의 오류(Warren Harding Error)'라고 부른다.


침묵의 칼, 캘빈 쿨리지는 대통령이 됐어도 까다롭고 심술궂은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한 정치가는 “시큼한 피클을 이유식으로 먹고 크는 바람에 항상 시큼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무슨 질문을 해도 단답형이었다.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백악관 만찬장에 참석한 한 부인이 쿨리지에게 말을 건넸다.

"친구들과 내기를 했는데 대통령님이 말을 세 마디 넘게 하는 쪽에 걸었거든요. 무슨 말씀을 해주실 거죠?"

쿨리지가 답했다.

"당신이 졌습니다(You lose)."

<자료 : oklahoman.com>


이렇게 무뚝뚝한 이미지로는 다음 선거에 문제가 있다. 대통령의 이미지를 바꿔야 했다. PR 전문가 에드워드 버네이즈에게 그 과제가 맡겨졌다. 버네이즈는 PR의 개척자, PR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하지만 '현대판 마키아벨리'라는 비난도 받았었다. 버네이즈는 이전과는 다른 독특한 방법으로 수많은 캠페인을 성공시켰으며 그가 펼친 캠페인은 지금도 PR 캠페인의 전범이 되고 있다. 버네이즈가 지은 프로퍼갠더는 독일 나치 제국의 선전상이었던 요세프 괴벨스도 즐겨봤던 책이기도 하다. 버네이즈는 대중의 심리를 파악하여 여론을 움직이게 하는데 탁월했다.


버네이즈는 쿨리지 대통령의 이미지를 차갑고 내성적인 인물에서 따뜻하고 동정적인 성격의 인물(warm, sympathetic personality)로 바꿔야 했다. 그 캠페인 중 대표적인 것이 공연 배우들을 초빙해서 백악관에서 만찬을 하는 것이었다. 인기 배우들과 담소를 나누며 아침 식사를 한 후 백악관 잔디밭에서 대통령을 위해 노래를 부르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기획 의도는 쿨리지가 배우들과 어울리며 웃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쿨리지는 이 행사에도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여러 사람의 노력의 결과 잠깐 웃는 모습을 보여줬다. 대통령을 웃게 하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이 행사를 주요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뉴욕타임즈는 “배우들, 쿨리지와 함께 케이크를 함께 들다, 대통령 거의 웃었다.(President Nearly Laughs).”로 보도했다. 뉴욕 리뷰는 “졸슨,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을 공식 석상에서 웃게 하다”로, 뉴욕 월드는 “상원에서 2년 반 동안 하지 못했던 일을 연기자들이 3분 만에 해냈다. 그들은 대통령이 이빨을 보이고 입을 열어서 웃게 만들었다.”라고 보도했다. 대통령의 웃는 모습이 이렇게 빅 뉴스가 되다니 지금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때가 1920년대였다. 대통령에 대한 관심과 권위가 대단할 때이다.


<앞 줄 네 사람 중 우측에서 두 번째가 쿨리지 대통령 / 자료 : www.whitehousehistory.org>



몇 년 후 버네이즈는 이렇게 회고했다. “전국적으로 언론은 놀라움을 표명했고, 의도한 바대로 쿨리지의 평판을 확실히 바꿔놓았다.”  쿨리지는 3주 뒤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의사 사건((pseudo-event) PR

뉴스를 만들기 위해서 이벤트를 열고, 이 사건을 매스미디어에 의해서 보도되도록 만든다.   이것을 의사 사건((pseudo-event)이라고 부르는데 버네이즈가 PR 수단으로 자주 사용했다. 의사 사건은 언론에 보도되기 위해 꾸며진 사건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가짜'는 아니다. 그래서   ‘의사(擬似: 실제와 비슷함) 사건’이다.  현대 PR의 핵심 활동에 해당한다.  정치인들이 행사장에 가서 기를 쓰고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버네이즈는 의사 사건에 대해 다음과 말했다.  “PR전문가는 뉴스가치가 무엇인지를 알 뿐만 아니라 뉴스가 일어나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는 이벤트의 창조자이다.”



위에 게시된 사진이 모두 의사 사건은 아니다. 다만 박정희 대통령의 논두렁 막걸리 사진은 철저하게 기획된 이벤트였고 매우 효과적이었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자료 ; 주제가 있는 미국사, 강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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