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 속 수레바퀴

by 따스히

오랜 내 숙원 사업이었던 책장 정리를 해보려 마음먹고 두 팔을 걷어붙이고 온갖 물건과 책들을 내어 놓았다. 쌓여 있는 책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다 어찌해야 할 바 몰라 책들을 한편에 치워 두고 그 사이에 비집고 앉았다. 먼지 가득한 책들을 멍하니 바라보다 눈에 익는 한 공책을 집어 들었다. 아기자기 귀여운 그림이 그려진 표지에 대충 훑어보니 그것은 3년 전쯤 썼던 나의 일기장이었다. 어느 일기장과 다름없이 앞쪽엔 정성을 담은 글씨체로 빼곡히 적힌 글들이 있었고 뒷장으로 넘길수록 삐뚤빼뚤 성의 없는 짧은 글들이 나열되어 비루해 보였지만 그 날의 감정들은 한눈에 읽혔다.


그때 당시 힘들었던 상황과 고민들, 좋았던 일상, 그때 나를 힘들게 했던 인물들.

비슷한 듯한 나날들이었지만 하루를 살아 내며 배우고 느낀 것들이 나름의 고민과 나름의 철학으로 짧게 짧게 적혀 있었다. 언제든 무엇이든 나는 고민이 많았고 피곤할 만큼 생각이 많은 사람이구나 라는 것을 느꼈다. 맞다. 이때는 이런 고민을 하고 또 걱정했었지. 그땐 정말 그 사람 때문에 힘들었었어. 또 이런 추억도 있었지. 하며 글을 읽어 내려갔다. 글을 읽다 보니 내가 과거에 고민했던 것들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아 신기하기도 어쩐지 후회스럽기도 한 느낌이었다. 그때의 나는 어떤 이들과의 인간관계, 내 꿈, 앞으로의 계획 등 대상과 상황만이 바뀌었을 뿐 내 고민이 시간이 지나도 수레바퀴처럼 돌아오는구나 싶었다.


왜 나는 같은 고민을 하며 살고 있지?라는 생각을 했다. 분명 나는 원하는 삶이 있었다. 하고 싶었던 공부도 있었고 되고 싶은 것도 있었으며 여러 충돌 속에서 좀 더 성장한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도 똑같이 고민하며 반복된 삶을 살고 있었다. 일기 속 다짐들이 무색하게 나는 그저 그런 어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미래의 나를 위해 나에게 맞는 삶은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과 동시에 마음 한편 이상하게도 무엇인지 모를 의지가 피어올랐다.


"그래 고민의 수레바퀴 속에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나를 위한 삶을 살자."



어차피 고민할 거라면 미래의 일기를 읽을 내가 후회하지 않도록 살아 보자. 모든 결과와 고민은 잠시 뒤로 미뤄둔 채 나를 위해 오늘을 살아야지. 우연히 쌓여 있는 책들을 정리하며 보았던 그 옛 일기장은 나의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꿈의 언저리로 돌아 돌아 인생을 허비하느니 후회가 남지 않는 인생을 살아보고자 마음을 먹고 나는 아무 준비 없이 그렇게 퇴사를 해버렸다.


그렇게 퇴사를 하고 주변에선 많은 걱정을 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새로운 고민을 하며 살고 싶었다. 모두가 그랬듯 나 역시 월급쟁이로 살아보기도 했다. 다달이 받는 안정적인 월급에도 내 마음 한 켠의 의구심이 나도 모르게 안정적인 그 삶을 편히 누리지 못하게 했다. 빠른 수레바퀴 속에 나 자신을 굴려 가며 그렇게 몇 년이 지나갔지만 무언가 해결되지 않은 채 지구 밖을 도는 행성이 된 느낌이었다. 그런 내 마음을 나는 분명 알고 있었지만 나는 애써 모른 척하며 살았다. 모두 그렇게 사니까 그게 맞는 거다 라고 단정 지어 놓고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아니 그럴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던 때 우연히 보게 된 일기장은 내가 결심을 하는 것에 큰 매개체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갑자기 왜 책장은 정리하게 되었는지 박아 두었던 일기장은 왜 갑자기 보게 되었는지 참 의아스럽고 신기하기도 하지만 그 우연이 내 삶을 결정하는데 큰 역할을 해주었다. 퇴사를 하고 난 채워지지 않은 일기장의 뒤편을 이어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같은 고민들로 묻힌 채 사는 이야기 말고 새로운 이야기와 고민을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일기장을 채워 갈 것이다. 몇 년 뒤 나는 어떤 마음으로 이 글을 읽고 있을까? 잘하고 있는 것인지 옳은 선택 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제 했던 고민을 내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한번뿐인 인생인데 매일 새로운 고민을 하며 살고 싶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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