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그림을 그린다고?

by 따스히

그렇다 제목 그대로 나는 그림을 그린다. 아니 그림 그리기로 마음 먹었다.


끄적끄적 낙서하기를 좋아 했던 나는 몰래 몰래 교과서 맨 모서리에 자그마한 그림을 그리기를 좋아했다. 반에선 귀여운 캐릭터 그리는 애로 통했고 간혹 친구들의 책 표지나 공책을 그림으로 꾸며 주곤 했다. 그래서 마음 속 한 켠에 어릴 적 꿈을 두고 또 아직 꿈 꾸며 살고 있다. 엄마의 말씀을 따라 잘하지도 못하던 공부를 열심히만 하던 때 격동의 사춘기를 보내며 고3 그 중요한 시기에 난 수시 전형으로 무작정 비실기 디자인과를 지원 했다. 그땐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으로 부모님께 내 의견을 강력히 이야기 했고 결국 부모님의 반대와 갈등이 있었다. 아마 부모님께서는 사춘기의 반항이라고 생각 하셨는지 철 없는 선택이라며 취업 해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공부를 하기를 원하셨다. 하지만 나는 갑자기 지금 내가 원하는 일을 선택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 무작정 지원해 버린 것이다.


사실 갑자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고등학교에 입학 하고 공부에 흥미가 없어졌고 공부를 해야 하는 의미를 찾지 못했다. 시험 날이 다가오면 친구들과 도대체 왜 시험을 보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토로하곤했다. 대충 보자며 성적이 행복순은 아니지 않냐며 호기롭게 의기 투합 했지만 결론은 나만 그 투쟁의 현장에 남아 있었고 씁쓸한 성적표를 받아보곤했다. 이상하게 같이 공부를 안 했는데 친구만 성적이 잘 나와 배신감이 들기도 했지만 다음 시험에도 받은 처참한 내 성적표를 보고는 난 공부엔 영 재능이 없다는 걸 인정 하고 말았다. 성적으로 등 수가 나뉘고 그 등 수로 국영수반이 나뉘었다. 난 항상 마지막 알파벳이 써있는 반으로 들어가 귀찮은 이동 수업을 하러 반을 이사를 다녔다. 집 없는 설움이 이런걸까 일주일에 몇 번씩 어색한 반에 들어가 이름 모를 친구의 책상 앞에 앉아 나는 내가 학생으로서 참 문제가 많은 아이라고 생각 했었다. 그러다 고2가 되던 해, 봉사 시간을 얻기 위해 도서관 사서로 봉사 활동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점심 시간에 잠깐 도서관 사서 일을 하며 전 보다는 책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그 당시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던 해리포터 시리즈를 엄청 읽고 싶었지만 항상 1,2권은 비어 있어 찾아 볼 수 없었기에 인기가 조금 덜 해 빼곡히 꽂아 있던 자기개발서칸에 있는 책을 몇 권 빼 읽곤 했었다. 그 때 읽었던 자기 개발서들의 문장들에서 나는 내 꿈에 대해 깊이 생각 해보게 되었다. 같은 반 미술 실기 친구들이 야자(야간 자율 실습 시간)를 하지 않고 폼 나게 화구통을 매고 가던 뒷 모습을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하지만 꿈에 대한 확신을 갖기에는 실기 준비를 하기에도 또 내 성적에도 문제가 많았다. 그렇게 어영부영 고3이 되었고 수시 원서 접수 날이 되자 정신이 번뜩 들었다.


어차피 이 성적으로 대단한 대학에 못 갈거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부모님 입장에선 너무나도 갑자기 제일 중요한 고3 수시 신청 기간에 내 의견을 내어 버린 것이다. 참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게 맞다고 생각 했었다. 그래서 나는 갑자기 비실기 디자인 학과에 수시 원서를 제출했고 고민했던 시간이 무색하게도 수시 1차에 합격 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내가 디자인 학과에 진학 했었고 지금은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려고 한다고 말 하면 하나 같이 '니가?' 하는 표정을 지으며 의아해 했다. 그럼 매번 나는 긴 부연 설명으로 친구를 이해시키곤 했다.


"맞아 나 디자인학과 졸업했고 지금은 그림 그려. 원래 좋아 했던 일이거든."


이렇게 당당하게 한 마디면 될 일을 나는 그 의아한 표정에 해명 아닌 해명을 늘어 놓았다. 그런 물음에 당당하지 못했던 것은 내 특기이자 꿈이라기엔 그때 당시 스스로도 부족함을 느껴서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비실기라는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그림을 참 열심히 그렸다. 취미 미술 학원을 뒤늦게 다니며 늦깍이 실기 학생이 된 나는 그림을 있어 보이게 사실대로 묘사하여 그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절실히 깨달았다. "이럴수가. 수채화의 물 농도가 어쩌구 저쩌구 아 가기 싫다." 그래서 나는 취미 미술 학원을 그만 뒀다. 그래서 아직까지 나는 스킬이 뛰어난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 그래서 가끔 친구들이 너 디자인과 나왔으니까 초상화 좀 그려줘 하는 부탁을 좋아 하지 않는다. 디자인과라면 모두 누가 봐도 잘 그린 그림을 당연히 잘 그리는 사람으로 단정 짓고 묻는 것 같아 거기에 부응하지 못할 실력과 자신이 없었기에 그 이후에는 디자인 전공자라는 이야기도 상대가 묻지 않는 이상 말하지 않게 된 것 같다. 열등감이 크게 자리 잡아 그것을 숨기기 바빴던 시간들이었다. 졸업을 하고 취업난을 겪으며 나는 어린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되었다. 그림을 그리지 않으며 꿈을 동경 하는 어른이 된 것이다.


나 스스로 그림에 대한 열망과 열등감이 자리해 있었지만 그것을 해결하지 못한 채 아이들에겐 즐거운 그림을 그리라며 미술을 그저 즐기라고 말하는 모순적인 선생님이었다.


어느 덧 월급의 달콤함에 벗어나지 못한 채 그림을 그리지 않은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그러던 때, 우연히 전시회를 보러 가자는 친구의 제안에 서울시립미술관에 가 미술 전시를 보게 되었다.

일러스트, 사진, 회화 등 다양한 작품들이 있었는데 나는 특히 일러스트 작품에 더 관심이 갔다. 내가 생각하는 미술이란 모두가 보기에 멋지고 동경할 수 밖에 없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진정한 재능이자 능력이라고 생각했는데 뛰어난 묘사력 없이도 그 그림의 이야기를 한 눈으로 볼 수 있었고 그 그림이 충분히 멋있어 보였다. 어떤 그림엔 따스함이 어떤 그림엔 외로움이 그리고 어떤 그림에는 분노가 담겼다. 아 그렇다. 그림에 마음이 담기면 되겠다. 내 이야기를 그리면 되겠다.


왜 나는 그동안 열등감에 쌓여 그림을 잘 그려야 한다고만 생각했을까?


어릴 적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그림그리기 라며 당당히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그리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평가와 생각이 들어 가지 않은 그저 그리는 그 행위가 좋았던 것이다.

난 초심을 잃은 것이었다. 버킷리스트에 담겨 있던 내 마음 속 언저리에 박아둔 꿈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너무 잘하고 싶은 욕심에 많은 사람의 눈과 내 비판이 담겨 내 마음을 깊이 보지 못했다는 생각을 했다. 반복된 고민과 꿈을 꾸느니 일단 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럴싸하다며 박수 받지 못해도 내가 행복한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마음의 제약이 없는 내가 오롯이 담긴 그림을 그리겠다. 그런 결론에 이르렀다.


박수 조금 덜 받으면 어때.

내가 좋아서 하는건데.

반복 된 고민을 하느니 오랜 꿈이었던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자.


그렇게 난 돌고 돌아 버킷리스트의 하나를 시작 하였다. 내 꿈에 당당 해지기 위해서.

P20211007_151448654_B4BD3F2C-35C8-454C-8B12-77350CFDAFDB.JPG


이전 02화도전 마주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