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슨 일이든 잘 참는다. 양보하고 참으면 결과는 항상 좋았다. 동생들과 친구들 뿐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내가 할 역할은 잘 참아 내는 사람이라 여겼다. 그래서 어릴 적 동생들에게 모두 양보하고도 엄마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었고 그런 착한 딸인 내가 스스로 대견하다고 생각했었다. 친구들과의 신경전에서도 내가 의견을 덧 붙이지 않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그게 맞다고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항상 괜찮아 라는 말을 자주 했다.
때로는 나 정말 괜찮은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버릇처럼 난 반사적으로 괜찮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곤 했다. 그렇게 내 마음도 스스로 잘 알아채지 못하고 알고 싶은 생각도 없이 사는 주인이 미웠던지 스트레스성 질환으로 내게 신호를 보내왔다. 미련하게도 나는 그걸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른이 되어도 그런 습관은 변함이 없었다. 힘들게 취업하게 된 회사에서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에 주어지는 일보다 많은 일을 떠안아도 괜찮다며 웃어 보이곤 나를 소모했다.
그런 내가 지쳐 보였던지 친구는 문득 "너 정말 괜찮아?"라고 내게 물었다. 언제나처럼 괜찮다고 대답하면 쉬울 일이었는데 왜인지 모르게 그날은 대답이 쉬이 나오지 않았다. 힘든 일 있으면 이야기하라는 친구의 말에 나는 지금 무엇 때문에 이런 감정이 드는지 알 수 없어 내 스스로도 마음을 정리해 이야기할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안 괜찮다. 지금 힘들다. 이렇게 인정을 하고 나를 돌아보니 그동안 보냈던 몸의 신호가 커져 내가 너무 지쳐 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너무 뒤늦게 내 마음을 알아준 것이다. 더 이상 괜찮다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 목소리를 내며 살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터라 모든 상황에서 내 목소리를 내긴 아직 어렵지만 적어도 내가 힘들 땐 힘들다고 주변 이 들에게 솔직히 이야기한다.
막상 이야기하다 보면 별일이 아닌 일도 있었고 이야기하다가 마음이 풀리기도 했었다.
내 마음이 힘들 땐 힘들다고 솔직히 말할 용기도 우린 필요하다. 난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사실 난 곤란한 상황과 불편한 내 마음을 괜찮다는 말로 회피해 온 것이다. 내 목소리를 내며 내 이야기를 하는 일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 용기는 때론 진정한 소통이 되고 그 소통은 끈끈한 우리가 된다. 마음이 힘들 땐 그 마음을 이야기할 용기도 때론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