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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스히 Jun 23. 2022


어제보다 어두워진 하늘에서 내리는 빗소리가 창문에 부딪혀 오늘 날씨 만만치 않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내리는 비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우린 살다 보면 여러 계절을 겪으며 살아간다. 난 그 계절 중에서도 여름. 그 여름 안에서도 비 내리는 장마를 좋아하지 않았다. 축축한 우산과 신발 그리고 방 안을 가득 채우는 습기 그리고 그 습기에 반응하듯 거대해진 내 곱슬머리가 비를 좋아할 수 없게 만드는 이유였다. 매일 아침 공들여 반듯하게 내린 머릿결에 숨겨둔 내 진실된 모습은 비를 만나면 내 원래의 모습으로 다시 되돌아와 솔직해졌다. 살면서 여러 해의 비를 만난 덕에 결국 나는 자연에 순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비가 오면 언제나 그랬듯 단정히 묶은 머리스타일로 밖을 나섰다. 그 나름 나쁜 방법은 아니었지만 이런 경험 덕에 비에 대해 그다지 좋은 경험들을 갖고 있지는 못했다. 그래서 비 내리는 날씨는 내가 싫어하는 것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나름의 긴 직장생활 끝에 잠시 휴식기를 가지고 있던 그날.

그 해에는 비가 참 많이도 왔다. 퇴사도 했겠다. 나갈 일이 없으니 집 밖에는 절대 나서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며 컴퓨터 앞에 앉아 전원을 켜고는 차 한잔을 마셨다. 역시 재택근무는 이런 점이 좋다며 다시금 프리랜서의 삶에 만족하던 그때. 컴퓨터가 작동해 돌아가는 기계 소리와 함께 어딘가에 부딪혀 떨어지는 빗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왔다.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듣다 보니 그 빗소리와 함께 풍겨오는 바람 냄새가 평소와 달리 좋게 느껴졌다. 이래서 요즘 ASMR을 듣는 거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창문 밖에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다 보니 왜인지 모르게 나가고 싶어졌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선택이지만 그날은 비 오는 거리를 걷고 싶었다.

빠르게 나갈 채비를 하고 머리를 질끈 묶고는 큰 우산 하나를 챙겨 밖을 나가 하염없이 걸었다. 우산 위로 마구 떨어지는 빗소리와 우산 손잡이에 미세한 떨림 그리고 비에 흠뻑 젖어 나는 풀내음이 마음에 와닿았다. 

어느 순간부턴 빗소리를 귀로 듣기보다 마음으로 듣고 있는 것 같았다. 


평소에 내가 그저 비만 원망했지 내리는 빗소리에 귀귀 울 인적이 있던가? 오랜만에 흠뻑 물을 맞아 행복함을 뿜어내는 나무와 풀의 향기를 맡아본 적이 있던가? 등등 여러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 비어 젖은 우산을 털어내고 다시 활짝 펴 우산을 말리기 위해 베란다에 가져다 놓으며 문득 생각의 결론이 떠올랐다. 무슨 일이든 당장의 단점은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명 좋은 점도 있다. 눈앞의 단점들이 너무나 선명해서 더 알아볼 세도 없이 나는 이 날씨를 싫어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든 내가 동생을 붙잡고 오늘의 생각들을 이야기하니 동생은 내게 언니 마음이 편하니까 좋아진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 말도 맞다. 마음이 편해지니 단점이 있어도 좀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내가 싫다고 단정 지은 것들도 알고 보면 무조건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무언가라도 한 번쯤은 해 볼 마음이 생겼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좋고 싫음의 경계는 애매모호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오늘의 좋은 것이 내일 싫은 것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지금의 싫었던 부분이 다음엔 좋아질 수 있듯이 인생엔 반드시라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잘 들여다보고 온전히 받아들인다면 세상의 단점은 정말 없겠다 싶다. 그렇게 살다 보면 정말 행복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나는 요즘 비 오는 날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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