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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미 Oct 17. 2021

4주 후에 만나는 거리두기

애가 탄다

나와 J는 한 집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프리랜서 생활을 하고 있다. 눈 뜨고 눈 감는 순간까지 정말 하루 종일 함께하는 생활이지. 나는 사실 이 생활이 전혀 불편하지 않아. 오히려 누군가가 항상 옆에 있다는 게 굉장히 안심이 된다. 너를 품고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내가 그런 사람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어(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 J와는 하루 종일 함께 있는 게 불편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피가 섞인 가족들과는 저녁 시간에 잠깐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불편하다고 느꼈었는데 아주 신기한 일이야.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와 J는 함께 생활하고 있지만 자신만의 작업실이라고 할 만한 공간이 각자 있고 그 안에 있을 때는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 생활방식에 답이 있는 걸까 싶기도 해. 게다가 우리는 가끔 잠을 잘 때도 각 방을 쓰기도 하거든. 둘 다 잠귀가 밝고 예민해서 생기는 해프닝이고 둘 다 그에 대해 서운하다거나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아(삶에서 수면의 질은 아주 중요하거든). 부부라고 잠자리를 항상 함께 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게 오히려 30년 이상을 다른 공간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너무 가혹한 일일 수도 있으니. 


그 외에도 잠깐 산책을 가고 싶으면 상대에게 산책 가겠다고 알리고 함께 갈 것 인지 아닌지 의사를 묻는다. 함께 갈 때도 있고 혼자 갈 때도 있어. 상대의 의사에 의해서 혹은 본인의 의사에 의해서. 


그런 시간들이 우리가 서로를 견딜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 나는 J가 게임을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거든. 내가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래서 만류할 생각이 없으며 방해하고 싶지도 않다. 간혹 함께 게임을 할 때도 있어. 구경하거나. 사실 나는 구경하는 쪽이 더 재밌어. 게임은 정말 젬병이거든.


각자의 독립된 시간이나 취향을 이해해주는 것이 결혼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나는 결혼하고 나서 알게 되었어. 그전에는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지만(어차피 각자 살고 있으니까 간섭할 기회도 별로 없었고) 함께 생활하면서 그 당연한 걸 인정하는 게 아주 힘들다는 걸 깨달았거든. 수많은 부부 싸움이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걸 알고 있니?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긴 해. 게임을 할 시간에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 더 좋지 않을까. 나와 있는 것보다 게임을 하는 게 더 재미있는 걸까? 나에 대한 애정이 식은 건가? 


하지만 곧 바보 같은 생각이라는 결론을 내리지. J와 함께 있는 시간이 좋은 것과는 별개로 나에게도 따로 드라마를 보거나 책을 읽을 시간이 필요하거든. 나에게 그건 아주 중요한 시간이고 그 시간을 통해 다른 종류의 안정감을 얻게 되니까. 그건 J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해. 오래도록 함께 있어야만 반드시 애정이 깊어지는 건 아니더라.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가 많아지면서 오히려 이혼하는 부부가 많아졌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어. 어쩌면 ‘거리두기’라는 건 인간관계에서 꼭 필요한 부분일지도 모른다. 부부도 마찬가지.


그렇지만


그래도


2주에 한 번 겨우 볼 수 있었던 너를(임신 초기 8주까지는 2주에 한 번 진료) 이제는 4주에 한 번 볼 수 있다니(8주 이후부터 28주까지는 4주에 한 번 진료). 이건 좀 너무하다고 생각해. 게다가 이번에는 무료 6주 후에 진료가 잡혔다. 물론 너와 나는 거리가 없는 거나 다름없다. 한 몸을 공유하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느껴지는 거리감이 있어.  나와 J가 너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병원의 도움이 필요하니 말이다. 초음파 기계를 통해서만 너의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 환장할 노릇이다. 갑자기 배가 아프다거나, 소변볼 때 피가 비치는 등의 문제가 없다면 너는 내 안에서 안락하게 잘 지내고 있는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눈으로 널 확인하고 싶어. 그래야만 안심이 되는 것을 어쩌겠니.


아주 잠시 복통이 있다는 거짓말이라도 해서 병원을 찾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말이 씨가 된다고 그러다 정말 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싶어 우린 그런 배짱도 부릴 수가 없어(부부가 쌍으로 쫄보라서). 너를 알게 되면서 가입한 맘 카페에도 비슷한 이야기들이 올라온다. 4-6주라니. 기다리기 힘들다고. 


네가 태어나게 되면 우리 사이에 ‘거리두기’는 어차피 불가능하겠지만(넌 수시로 우리의 손길이 필요할 테니까) 지금은 눈앞에서 너를 확인할 수 없는 이 거리감이 안타깝고 애가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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