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한 내에 못 하는 거 아닌 가 싶었는데
7월 마지막 주부터 시작된 입덧은 9월 초쯤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 소진되어 버린 체력이 다시 돌아오는 데에는 또 한 달이 더 걸렸다. 겨우 임신 전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건 10월이 다 되어서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브런치북 프로젝트가 시작되어 있었다. 맙소사.
이번 공모 마감일인 10월 24일은 시어머님 생신이기도 했다. 사실 아무런 상관없는 우연이었지만 그냥 어쩐지 꼭 그전까지 응모를 완료해야 할 것만 같았다. 시어머님 생신 날에는 함께 식사를 하고 생일 케이크에 초를 꽂는 시간도 가져야 하니까. 다행인 건 마침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아이를 갖게 되면서 나는 고민이 많아졌다. 특히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TV 프로그램을 보면서 더욱 그랬다. 해당 프로그램은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겪는 문제행동을 보고 전문가인 오은영 박사가 양육자에게 해결방법을 조언해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일견 아이들의 문제 행동에 대해 초점을 맞추는 것 같지만 그 저변을 분석하면 아이의 양육자 내면에 깃든 문제가 드러나 보인다. 그래서인지 아이를 사랑하지만 사랑만으로는 올바른 양육을 하기 어렵다는 걸 보여주는 프로그램으로 느껴졌다.
중요한 건 아이에 대한 이해와 공감. 그런데 각각의 양육자들은 스스로도 잘 인식하지 못하는 내면의 상처나 문제로 인해 자신의 아이를 그대로 보지 못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틀에 맞추어 아이에 대해 생각하고 그렇게 바꾸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소통이 되지 않고 아이는 부모와의 소통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점차 극단적인 행동을 일삼게 된다.
모든 아이들이 문제 행동을 하게 되는 건 아니겠지만 해당 프로그램에 나오는 아이들의 경우 모든 양육자의 양육 방식이 그다지 난해한 것도 아니라는 게 조금 놀라웠다(지나친 경우도 있긴 했지만). 무뚝뚝하거나 성적에 집착하는 양육자, 외모에 예민하거나 오히려 아이에게 의지해서 여러 명의 다른 아이를 양육하는 양육자의 태도 등등. 나의 아빠도 엄마도 그리고 주변인들 중에도 그런 이들은 많고 흔했다.
그런 흔한 양육 방식이 때로 어떤 기질의 아이들을 만나면 극단적인 문제 행동을 일삼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프로그램을 통해서 알게 되었고 오은영 박사의 분석을 통해 아이 자체를 이해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것. 무엇보다 부모가 아이의 기질을 받아들이고 포용할만한 마음가짐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욱 걱정이 되었다. 나는 괜찮을까. 아이를 사랑하지만, 아이가 소중하지만 내가 자라왔던 방식에 갇혀 혹은 사회가 바라는 모습을 욕심내며 아이를 제대로 봐주지 못하면 어쩌지, 하면서.
나는 아이를 만나기 전에 나 자신에 대해 더 잘 알아야 할 것만 같았고 나의 불안에 대해서도 어떻게든 해결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태교일기였다. 아이에게 전하는 방식으로 나의 두려움이나 불안을 글로 적어 내려갔다. 지금 생각하면 좋은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정말 두려워하는 게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었고 아이가 찾아오면서 알게 된 여러 가지 감정들에 대해 잊지 않고 기록해 둘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나중에 그 글을 아이가 읽게 될지 어떨지 알 수 없었지만 그건 상관없을 것도 같았다. 일단의 글을 마친 후 든 생각이었는데 그 글은 태교일기라는 형식이었지만 결국 나 자신에게 보내는 위로 혹은 다짐의 글이었을지 모르겠다.
글의 얼개를 잡고 약 2주간 하루에 긴 글 하나, 짧은 글 하나 이런 식으로 2편씩 브런치에 올렸다. 간혹 한 편만 올리는 날도 있었고 10편만 어찌어찌 넘겨보자(10편 이상의 글만 브런치북으로 만들 수 있으니까) 하면서 계속 쓰다 보니 어느새 글은 15회 분량이 나왔다.
다행히 공모 마감일 전에 브런치북을 발행하고 응모를 완료했다(여유 있게 시어머님 생신도 치렀다). 결과는 내 손을 떠난 일이지만 이후에도 나는 발행하지 않은 채 '작가의 서랍'에 차곡차곡 글을 모으게 될 것 같다. 나를 위해서, 나를 만나게 될 아이를 위해서.
덧, 매년 하는 생각이지만 공모전 공지가 뜨기 전에 꾸준히 글을 써놓았으면 좋을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