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과 피
서울이 폭격된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붉은 오미자 에이드를 마시며 지난 일을 생각한다. 오전 6시 30분 비상 알람과, 전 국민의 분노와, 다시 돌아온 일상을. 그밖에 말할 수 없는 개인적인 일을. 하루는 노력하지 않아도 자꾸 쌓이니 지난 일들이 우습게 잊힌다. 자리에서 밀려나는 것들을 잘 적어두는 것이 내가 할 일. 잘 살펴보며 기록으로 옮기는 일.
일요일 오후다. 제일 좋아하는 카페에 왔다. 카페의 통유리 창으로 큰 개천이 보이고, 개천을 따라 난 5월의 장미들도 보인다. 달리는 러너들. 자전거 탄 연인들. 전동 휠체어로 마실 나온 어르신. 긴 나무 의자 두 개.
긴 나무 의자, 그곳에 앉은 사람들의 표정을 훔쳐보고는 한다.
젊은 사람들, 나이 든 사람들. 함께 있는 사람들. 홀로 있는 사람들.
평화로운 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며칠 전에는 하루가 멈춘 것 같은 불안감을 느꼈는데. 전쟁이 날 것을 알고도 대비하지 못함을 자책했다. 생필품을 사둘 걸. 현금화를 해둘걸. 우리가 휴전국이었지. 늘 반복하던 하루를 조금만 벗어나도 사람 마음은 참 불안해한다.
전쟁이 터진다면. 서울 폭격 경보가 뜬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대비법] 집에는 15-30일 동안 버틸 수 있는 생수와 실온 보관이 가능한 음식을 구비해야 한다. 사건이 터진 후에는 여분의 돈과 물품을 챙겨 최대한 빠르게 지하로 피신해야 한다. 북한의 최전방에 설치되어 있는 미사일은 8분 안에 서울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그 8분에는 짐을 싸거나 우왕좌왕할 시간이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니 개인의 짐은 평소에 미리 싸두어야 하고, 필요할 때 언제든 꺼내 쓸 수 있어야 한다.
이 정도만 해도 보통의 사람들보다 많은 대비를 하고 있다 싶겠지만, 이는 최소한의 조치이고 위급 상황이 되면 무엇이든 아쉽게 느껴질 것이다. 미사일을 만들어내는 뇌의 발달 속도만큼, 사람의 신체 방어 능력도 향상되면 좋았을 텐데. 우리 인체는 너무도 물렁물렁해서, 미사일 한 방에 폭사하고 말 것이다.
인체는 물,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미네랄, 비타민, 미생물로 이루어졌다. 이들은 오랜 진화를 통해 상호작용 하며 우리 신체를 유지해 주고, 우리가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적당한 에너지 연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렇게 구성된 인체를 사용해 러너들은 달리기를 하고, 연인들은 손을 잡고,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조이스틱을 움직이며 전동 휠체어로 마실을 나온다. 꽃향기를 맡고, 개천의 물고기를 본다.
그것들이 폭격된다면, 그리운 것들을 다시 볼 수 없게 된다면 슬프겠다. 실개천을 타고 흐르는 피와 살점들. 하나의 인체가 담고 있는 피의 양은 4.5리터에서 5.5리터 정도다. 우리는 물이 쏟아진 드럼통처럼 개천을 흘러가겠지. 청계천을 타고, 한강으로 흘러갈 것이다. 낙엽귀근. 그럼에도 가능하다면 자연사를 하고 싶다.